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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Aug 29. 2023

어차피 우린 모른다

러셀 로버츠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고

얼마 전 내게 무척 설레는 제안 메일이 왔다. 오디오 북 녹음 제안이었다. 메일을 읽은 직후는 설렘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빨리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5분도 채 가지 않았다. 설렘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에서 죽 낭독을 해왔지만 출판사에서 제안해 책 한 권을 통째로 읽는 것은 내 이름을 걸고 오디오 북이라는 큰 카테고리에 내던져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경험해 본 적 없는 환경, 나조차도 의심스러운, 아직 검증해보지 않은 내 실력이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분명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짧았고 결론은 ‘해보자!’였다.


내 결정의 시간이 길지 않았던 것은 지난 경험들 덕분이었다. 변화와 낯선 것을 두려워하던 나는 어느 날부터 ‘일단 해보자’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큰돈이 들거나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호기심이 가는 일은 일단 해보는 쪽으로 결정하자는 것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 고민을 크게 덜어줬다. 그리고 대부분 결과는 아주 좋거나 나쁘지 않았다.


오디오 북 녹음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일단 해보자’는 내 태도가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팟캐스트에서 책을 낭독하는 방송을 시작했기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도 나는 망설였지만 일단 해보자! 아님 말고! 의 정신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스마트폰 살 때 주는 이어 마이크로 내 방에 앉아 5분~10분 정도 책 낭독을 녹음해 팟캐스트에 업로드했다. 딱 한 명만 들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4년을 진행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이 방송을 통해 나는 내 예상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오디오 북 낭독 성우의 자격으로 한 출판사의 스튜디오에서 오디오 북 녹음을 하고 있었다.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전에 방송을 할지 말지 고민하던 그 순간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미래였다. 첫 오디오 북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인생 참 신기하고 재밌구나’ 했다. 인생에 어렵고 괴로운 순간들도 참 많지만 이런 재밌는 순간들도 선물처럼 찾아오는구나.


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은 내가 취해온 태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과 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단순히 인생을 살며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할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내 인생에 이득이 될지 알려주는 책일 거라 예상했다. 선택장애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많은 사람들은 선택, 결정을 어려워한다. 이 선택과 결정이 내게 혹은 내 인생에 손해를 가져다주는 건 아닐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진 않을지 고민하다 보면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심지어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조차 실패할까 두려워 남에게 미루거나 ‘아무거나’라는 답만 되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손해보지 않는 결정을 도와주는 그런 책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렇게 살아오다 ‘일단 해보자’의 태도로 살아보기로 한 나를 격려를 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며 살아가도 된다고 북돋아주는 책이었다.


결혼을 할까, 말까?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것이 이득일지 안 하는 것이 이득일지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의 시작은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안 하는 것이 좋을까’와 같은 답을 알 수 없는 아니 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듯하다가 결국 그런 생각은 어리석고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내심 아직 미혼인 내게 뭔가 그럴듯한 답을 내려주지 않을까? 기대한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결혼 문제뿐만 아니라 해보지 않고는 결코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을 손에 쥐고 오래 고민해 봤자 무엇이 득일지 실일지는 끝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에 우리가 뭘 좋아하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날그날의 경험이라는 협소한 일상을 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할 더 심오한 즐거움들은 절대로 일일이 다 미리 상상할 수가 없다. 이런 무지를 직시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라. 답이 없는 문제들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실은 정답이 없다는 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다.



러셀 로버츠는 모든 결정을 ‘어차피 우린 모른다’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말한다. 아무리 따져봐도 우리는 알 수 없으니 긍정, 부정으로 미리 규정짓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 혹은 내가 원하는 나를 향해 가라고 이야기한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내 마음이 끌리는 쪽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내가 하지 않은 그 결정이 훨씬 더 나은 쪽이 아니었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어차피 우린 알 수 없으니까!!



삶에도 이 아이디어를 적용해 보라. 가능하면 더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하라. 이것저것 시도해 보라. 당신한테 안 맞는 것은 그만두라. 당신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기회를 소중히 붙잡으라. 빠져나오는 데 큰 비용이 드는 일만 아니라면, 이게 어떤 걸까 미리 알아내려고 골몰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모험을 해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라. 헤매더라도 이것저것 해 보는 편이, 하나하나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결국 이 책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이 내게 득이 될지 따져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고민 조차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경험이 쌓이면 해보지 않고도 경험을 바탕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들도 생긴다. 그런 일들은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선 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일단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그 시도가 내게 어떤 선물을 가져다줄지 아무도 알지 못하니까.


어제 새로운 제안 메일이 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이 경험이 내게 또 어떤 선물을 가져다줄지 기대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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