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딥파인 Oct 02. 2023

회사가 내 세계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하라.

회사 적응하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지난 주, 대학시절 같이 대학생 IT 동아리 활동을 했던 개발자 커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결혼식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던 친구들의 간만의 모임 자리가 되었다. 식사 이후 카페에 가서 그동안의 근황을 이야기하니 너무나 반갑고 재밌었다.


나는 취업 이후, 회사에 적응하느라 거의 8개월 가량 어려움을 겪었다. 그 기간 동안 친구들과의 만남을 멀리했는데 그래서 친구들은 취업 이후 도통 알 수 없던 나의 소식을 궁금해 했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안부를 묻는 질문들에 "힘들었는데 이제는 좀 괜찮아졌어."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잘 지내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웃으면서 괜찮아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정확히 이 시점부터이다.



회사가 내 세계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하라.


나는 이 문장을 내 마음에 품으면서부터 회사 생활이 풀리기 시작했다.

팀장님께 혼나던 것이 줄어든 것도 이 생각을 할 때부터이고, 지금은 오히려 팀장님께 "잘하고 있다."는 칭찬도 듣는다.


이 말이 회사에 집중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을 텐데, 그 의미는 아니다.

더 정확히는 회사 이외의 다른 것을 많이 만들어 내 세계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서 나는 일에 허덕였고, 처음 접하며 전공과 다른 업무를 익히느라 고군분투했다.

정규근로시간 9시간 이외에 집에 와서도 일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내 시간의 전부를 회사 일로만 채웠다. 회사 업무를 배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사회의 규칙들과 조직생활의 복잡다단한 관계들도 어려웠다. 일, 제품, 산업, 관계, 조직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애쓰느라 시간이 훌쩍 흘렀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문제를 파고드는 방법만 있는 줄 알았다. 자꾸만 문제 속으로 뛰어 들었다.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며 회사 생활에 시간을 더 쓰고, 끝내지 못한 일을 계속해 붙잡고 있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하며 나의 모든 하루를 회사로 채운 결과는 야속하게도 긍정적이지 않았다. 노력할수록 왠지 회사 일에 매몰되는 것만 같았다.



회사가 전부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나의 과거의 모습을 잠시간 드러내긴 했지만, 나는 왜 회사가 전부가 되면 안 된단 생각을 하게 된 걸까.

회사가 전부가 되면 어떻게 되길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회사의 스트레스가 일상의 전체를 마비시킨다.

회사가 전부가 되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회사가 전부이기 때문에 전부를 벗어나는 다른 돌파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회복탄력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숙취를 술로 푸는 '해장술'이란 개념이 있다. 나는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일'로 푸는 워커홀릭의 사람이었다. 일로 받은 스트레스는 다른 일을 벌여서 해소하곤 했고, 내가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 일을 잘 해내면 스트레스는 해소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이것이 결국,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단 것과 동의어임을 깨달았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딱히 없다"고 답변하곤 했다.

쉬는 때에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집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그냥 쉬었는데 이것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될 수는 있어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되지는 못했다. 친구들과 만날 에너지조차 없던 시기의 나는 그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나도 모르게 자꾸 회사에서의 일을 자동으로 리플레이했다.


일에 과몰입하는 사람이 일에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돌파구가 없으면, 그 스트레스에 매몰되어 무너질 수 있음을 자각한 시간이었다. '나는 일로 스트레스를 푸는 워커홀릭이야' 라는 믿음은 이렇게 깨졌다.



2. 시야가 좁아진다.

회사가 전부가 되면, 그 안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시야가 좁아지면, 문제가 생겼을 때 위험을 인지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낮아진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멀리서 보면서 관찰하고, 관리해줘야 한다.

'나'는 Player지만, 동시에 감독처럼 멀리서 스스로를 관찰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링 안과 밖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유능한 선수이자 감독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고, 열심히 선수로 뛸수록 링 안에 떨어져있는 먼지 같은 것만 잘 보이고, 링 바깥의 세상과 경기의 전체 흐름은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가지려면, 별개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그런 능력이 키워지지 않으며 내 시간을 내어 따로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내게 떨어지는 Task들을 쳐내기 바쁘고, 내가 속한 환경 속에만 있다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역량이 퇴화된다. 이 노력을 하려면 줌-인, 줌-아웃 하듯이 다각도에서 나의 상황을 뜯어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일과 나를 분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정의하는 워라밸


일련의 시간을 겪으며 맘속 깊이 공감하진 못했었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란 개념을 다시 살펴보게 됐다. 일에게는 '삶'이란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일하지 않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두된 이 단어에 워커홀릭으로서(?)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일관적으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일하기 위해서는 그 균형점에 대한 고민이 매우 중요하단 주장에 완벽하게 설득되었다.


'워라밸'을 부정하던 시기 이후, '내게 맞는 워라밸'을 정의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나는 내가 좌절했다가도 언제든지 회복할 수 있는 워라밸의 구체적인 균형점을 찾고 싶었다. (나의 워라밸을 정의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도 다른 에피소드로 풀어내봐야지!) 그리고 힘들었던 지난 사회생활 적응기를 어느정도 지난 지금, 나의 워라벨 최적점을 어느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


일과 삶의 비율은 3:10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우선 나는 일도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일에 대한 의미는 여전히 내게 크다. 다만, 일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을 전체로 둘 때, 3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그리고 일 이외에 여가, 가족, 친구, 취미, 운동 등 다양한 것을 7 비중으로 다채롭게 채워 놓을 때, 삶이 가장 적당히 풍족하고, 일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고 회복할 수 있는 것 같다.


처음 이 비율을 생각하고서는, 스스로 '아니, 일이 삶의 3/10 정도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니 일의 중요도가 너무 낮아진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이 3의 비중을 작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일에 의미부여를 너무 크게 두고 있단 걸 깨달았다.


나는 사실 일보다도 진실로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가족에게 삶의 비중 3/10을 할당하지 않았다. 가족은 나의 7/10의 비중을 취미, 친구, 운동 등과 함께 셰어하며 유동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일에 대해서만 고정적으로 3의 비중을 준다? 이미 너무 큰 중요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의 비중이 왜 3밖에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하며 이렇게 구구절절 변명(?)하고 있는 것도 나의 오랜 고정관념에 대한 설득이다.


나의 삶을 잘 영위하고, 내가 일에서도 늘 비슷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황금 비율은 3:10이다.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일은 다른 삶의 요소의 파이를 침범한다. 이 비중을 넘어가지 않도록 모니터링하고, 환기시키며 나의 일과 삶을 잘 영위해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