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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파인 Oct 17. 2023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걸 하기

지금의 환경에서 배울 수 있는 걸 마스터하겠단 마음으로

솔직히 말하면, 나는 원하던 1순위 회사에 입사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취준하던 시절, 신입을 잘 안 뽑기로 유명한 IT 빅테크 회사들이 서비스기획/PM 공고를 8개 연달아 냈다. 동시에 올라오는 모집공고에 하나하나 맞춤 작성을 하면서, 버거운 스케쥴이었지만 어떻게든 기간 내 지원을 했다. 그렇게 몇 군데는 면접을 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곳에서 떨어졌다.


1순위 지망 회사들에 일단은 지원해보고, 안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재고 따지기 보다는, 아무 곳이라도 들어가서 PM 경력을 먼저 쌓자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1.5순위 정도 되는 좋은 대기업 규모 회사에 취업하여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첫 경력을 갖는 게 정말 절실했다.

다만 예상치 못했던 회사에 급하게 합격하게 되면서 회사를 알아볼 시간이 적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좋은 점이 있는데 내가 생각했던 좋은 점은 아니었고, 아쉬운 점이 있는데 내가 예상했던 아쉬움은 아니었다.

뭐랄까 '예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장단점에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합격의 기쁨은 빠르게 사라졌고, 급 방황이 시작되었다.

큰 규모인 만큼, 내가 하는 일들은 단순 반복 업무였고, 생각했던 기획 일을 하기까지는 어려웠다.

원래 신입은 운영 업무 작은 일들부터 하는 것이라고 하나, 동료 분들도 몇몇 "원래 계약직이 하던 일이라, 계속 하시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는 말을 하는 업무였다.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단순 반복 업무를 계속하면서 점차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처음 입사하기 전에는 이 일을 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더 나은 것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단순 반복된 일을 하면서 첫 시작은 좋았으나, 점점 물경력이 되어 다른 곳으로 떠날 능력이 퇴화할까봐 두려웠다.


적응하고 싶었지만,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속도와 퀄리티가 나의 기준점이 되는 게 싫었다. 적응할까봐 무서운 마음이 커서 필사적으로 나를 막아섰다. 일을 못한 것도 있지만,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내가 아는 나는 타는 장작처럼 몰입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불타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내심 회사에 최선의 열심을 다하지 않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투덜거린다고 생각하며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런 모습이 된 것에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고, 또 내가 남들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판단했단 생각도 했다.


나의 최선의 열심을 '다하지 않기 위해서' 에너지를 썼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니 '회사에서의 나'가 싫어졌다.

일주일 중 5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며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데 그 시간이 맘에 들지 않으니, 삶의 만족도가 너무너무 낮아졌다. 특히나 나는 일이 내게 주는 영향이 큰 편이라서 더 그랬다. 그렇게 점점 '일상의 나' 자체가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되었다.


마음을 고쳐 먹기 위해 여러 번 다짐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주문처럼 적었던 문장이 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에 집중할 것.
내게 '있는' 걸로 배울 수 있는 것을 최대화할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는 부러워 할 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몇 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의 상황이 되고 싶어 했다. 나는 내게 없는 것들을 부러워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만을 바라보며 현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함만 쌓아갔다. 그러면서도 추가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고, 내게 없는 것들에만 시선을 집중하며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안한 것'에 집중하지 말고, '한 것'에 집중하면, 말할 것들이 충분히 많이 있었다.


야근도 계속 하고, 하루 휴가를 쓰면 다음날 메일 여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메일도 쌓인다.

근데도 나는 물경력이 될 것을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비하는 멈추고, 객관적으로 내가 '한 것'들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일들을 정리하고,

내게 있는 것들을 세세하게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남에게로, 다른 곳으로 쏠려 있는 관심을 '내 것'으로 돌려 놓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그렇게 정리하다보니 조금 더 내가 여기에 있으면서 배울 것들이 보이는 것도 같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내가 가진 것들에 좀 더 집중 할 것.

지금 내게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내가 가진 기회에 감사하자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내가 있는 지금의 환경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마스터하겠단 마음으로

있는 동안은 최선으로 모든 것을 뽑아내겠단 마음으로 스스로를 동기부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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