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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Nov 19. 2022

문해력 논란이 고까운 이유

문해력이 젊은 세대의 문제인가요?

평온한 토요일 저녁, 세끼 식사라는 오늘의 미션을 얼추 마치고 뒹굴거리면서 폰이나 만지고 있는데 어떤 게시물을 보다가 슬슬 화가 난다. '문해력'에 관한 것이다. 게시물 속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사흘, 나흘을 모른다고 하고 있고, 댓글은 난리다. "유튜브 자막이나 보니 그렇지..책을 안 읽은 거 아니냐..웃음이 나오냐.."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낮다는 '어른들'의 한탄이 많다. 특히 얼마 전 '심심한 사과'의 '심심한'을, 동음이의어인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로 받아들여 논란이 풀썩 일어난 이후로, 이러한 '걱정'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문해력도 최하위, 실질문맹률도 최하위디지털 문해력도 최하위 뭐 이런 것만 봐선 우리가 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긴 한가 싶다.


그런데 나는 문해력도 걱정이지만 점점 더 과해지는 문해력 저하 논란이 더 걱정이다. 갈수록 이 걱정의 목적이 뭐고,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서다. 마치 2000년 쯤 방영했던 뉴논스톱에서 김효진이 맨날 "이게 흉보는 거니? 내가 다 걱정돼하는 소리지"하는 그런 느낌인거다(이 말뜻 알아들으시는 분들 연령대가 대충 나올 듯).


'아이들'이라고 싸잡아서 문해력 저하 운운하는 게시물 보면 대부분 단어 몇 개 물어보고, 이거 몰라? 저것도 몰라? 어이쿠 난리났네. 이런 식이다. 문해력이 단순히 어휘력 뿐만은 아니지 않나? 어휘를 잘 몰라도 글 전체의 흐름을 읽는데 문제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문해력이 낮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매번 어린 애들 앉혀놓고 우리 말도 잘 모르는 모지리 취급하면서 도대체 얻는게 뭔지 모르겠다. 이 친구들보다 단어 좀 더 안다는 우월감? 라떼는 이런 건 다 알았다는 꼰대력?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만든, 내실 있는 콘텐츠도 물론 있다. 다만, 그것들 중 일부만 잘라서 '젊은 애들' 조리돌림하는데 쓰이는 것은 정말 속상한 일이다. 콘텐츠 다 안보고 편집해놓은 것만 보면서 조리돌림하는게 긴 글을 못읽는다는 '애들'과 뭐가 다른가.


'한국 젊은이들의 문해력이 낮아지고 있다', '애들이 문해력이 낮다'는 것도 정확한 사실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문해력이 그렇게 높았던 적은 별로 없다. 찾다보니 한국인 문해력 최하위 통계는 20년 전에도 나온 바 있다. 이게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지난 번 '심심한 사과' 논란에 신난 듯 '실질문맹률' 관련 기사가 쏟아지자 20대 문해력이 5060보다 높다는 지적을 한 신지영 교수의 인터뷰 등이 있었지만 '어린 애들 걱정'에 사실 따위는 별로 이슈가 되지 못했다.


문해력 저하는 어휘력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 문해력이 좋은 사람은, 어휘를 잘 몰라도 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어휘를 다 알아도 글의 맥락이나 전체적인 뜻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문제다. 이건 실제로 살아가는데 아주 불편하니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는 어쩌면 독서 부족의 문제 뿐 아니라, 사회성, 공감 능력의 부족에서 오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읽고 싶은대로 읽는다는 얘기다. 문학박사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정희진 님은 지난 해 5월 자신의 칼럼에서 "최근 나는 건설자본주의 비판과 빈집 재활용에 관한 글을 썼는데, 곧바로 돌아온 반응은 “그러니까 오세훈을 찍지 말라는 거죠?”였다"는 경험을 들려준 바 있다. 진영이 다르다고, 듣고 싶은대로 듣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문해력을 가르치나.


mz력테스트, 신조어테스트 시켜놓고 나이든 어른들을 "어이쿠, 이것도 모르다니 큰일이네. 젊은 사람들하고 어디 말이나 섞으시겠어요?"라고 모욕하면, 어휘력 높은 기성세대들은 과연 기분이 좋을까. 왜 우리는 아직 서툰 새 세대를 품어주는 너른 품을 갖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나는 요즘 이게 너무 슬프다.


문해력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이, 혹은 문해력이 낮은 것이 사실이라면,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그 방안을 만드는 것은 학력 수준이 높아짐에도 문해력이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더 긴 삶을 살아 온 기성세대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안을 새 세대가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도 기성세대의 몫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낮은 문해력이 아니라, 자기와 다르면, 혹은 자기가 아니면, 알아도 듣고, 이해할 생각이 없는 여유없음이 아닌가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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