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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Mar 11. 2023

참견과 조언, 그리고 꼰대

일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택시에 올랐다. 오랜만에 콜택시가 아닌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탔는데 연세 지긋한 기사님이 굉장히 점잖으시다. 목적지를 말씀드리니 길을 신중하게 떠올리신 후 원래 가던 길에 집회가 있으니 이 길로 가려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어주시고 정석이시다. 간혹 당황스럽게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출발이 좋았다.


요즘은 손님에게 사사로운 이야기를 건네지 않는 것이 매너라는 얘기가 많아선지, 기사님은 목적지 가는 길을 설명하신 이후론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기사님의 침묵 속에서 아이들과 새학기 학교 이야기가 시작됐고, 마침 아이의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다. 둘째의 친구가 "니네 선생님은 좀 꼰대같아"라고 했다는데 자기는 동의를 못하겠다는 얘기였다.


아이 말인즉, 꼰대라는 건, 자기는 그렇게 할 생각도 없으면서 자기 생각대로 남들에게 이래라 저래라하는 사람인데, 자기 선생님은 맞는 말씀을 하신다는 거였다. 이를테면, 노력해도 안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노력을 안하는 것은 안된다는, 우리가 어른들에게 들어온, 그런 소소하고, 당연하면서, 어쩌면 담아두어야 하는 이야기들. 아이는 "그건 맞는 말인데 왜 그런 말하면 꼰대야?"라며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럴 수도, 하지만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속으로 "니 친구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며 몰래 웃고 있었는데, 잠잠하시던 기사님이 "뒤에 있는 학생은 몇 학년인가요?"라고 물으셨다. 아이가 잠시 당황하다 6학년이라고 말씀드리니 "어유, 초등학생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참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셨다. 보통 친구들이 "니네 선생님 꼰대다" 하면 덩달아 "그러게, 아유 꼰대"하고 마는데, 생각이 깊다는 요지의 칭찬이셨다. 처음뵙고, 앞으로도 뵐 일이 없는 분에게 칭찬을 들으니 약간 당황했지만, 칭찬에, 그것도 자식 칭찬에 기분 나쁠 부모가 어디 있을까? 화기애애한 감사인사가 오가고, 묵묵하셨던 기사님은 지난 날 공부하셨던 이야기를 한참 하시다 목적지가 다가오자 아이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우릴 내려주고 떠나셨다.


집을 향해 걸으며 생각해보니 기사님이 아이를 추켜세우신 것은 어쩌면 아이가 뜻없이 건넨 위로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꼰대가 될까봐, 어쩌면 해주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을 그냥 다시 넣어두신 것은 아니었을까? 어른으로서 건네고 싶었던 조언은 요즘 꼰대라는 단어 속에서 얼마나 많이 스러져가는가. 나 역시 어쩌면 조언이었을 말들조차 고리타분하다며 무시해오지 않았나. 세월 속에 배워온 많은 말들을 해주고 싶다가도, 오히려 멀어질까 다시 욱여넣은 말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기사님에게 "맞는 말을 해주는게 왜 꼰대냐"는 아이의 말이 어쩌면 한줄기 위로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tv예능에서 한 어린 친구가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에 대해 "잔소리는 기분 나쁘고 충고는 더 기분 나쁘다"는 말에 일견 정곡을 찌르는 면이 있어 깔깔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잔소리와 조언의 경계라는 것이 참 줄타기가 어려운 일이다. 충고랍시고 아무렇게나 하는 말에 일침을 가하는 어린 친구의 날카로운 정의도 가치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갈수록 남들의 조언에 날이 서는 것이 나의 현실이기도 해서 오늘의 일이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라 느껴지는 것 같다. 


아이가 건넨 의도치 않은 위로 속에서, 주말을 마무리하는 우리의 여정이 기분 좋게 마무리됐다. 기사님의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처럼 넉넉하게 마무리되셨기를 바라본다. 역시, 칭찬은 참으로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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