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쓴 지 오래되었다. 별 이유는 없었다. 글이란 게 원래 그렇잖은가. 단어 하나 쓰기 시작하면 술술 쓰게 되기도 하는데 펜을 들기까지,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가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다시 왜 글을 쓰는가. 지난 여름,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 런던 여행기를 남기고 싶어서다. 이번 여름, 나는 런던에 다녀왔다.
8박 10일의 일정을, 다른 나라는 가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런던에서 보냈다. 대체로 저 정도 일정이면, 두 세 나라는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제목에 썼듯, 나는 게으른 여행자다. 우리의 게으른 2024년 런던 여행을 글로 남겨본다.
코츠월드 캐슬쿰 by 남편
"여행 또 가?"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아이들이 한 말이다. 우리는 보통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말하자면 우리의 루틴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미 짧긴 했지만, 1월에 오사카로 여행을 다녀온 터여서 애들은 왜 또? 싶었나보다. 사실 1월에 오사카를 갈 때까지만 해도, 나도 올해 다른 해외여행은 계획에 없었다.
그러면 왜?라고 묻는다면, 얘기를 들어보니 고등부터는 긴 여행이 어렵다고도 하고, 큰애 입시가 제때 끝난대도 둘째가 고등이라....등등의 이유를 댔지만, 사실 뭐, '그냥'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놓여지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친정 엄마는 "넌 좀 역마살이 낀 거 같아"라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웃곤 했다. 내가 내근이 많은 사무직이 아닌 기자를 택했을 때도 엄마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제는 뭐, 인정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오해를 사기도. 둘째가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아빠,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해서 왜냐고 물으셨더니 "살림도 잘하시고, 두 분이 사이도 좋으시고....재력도 좋으신거 같아요"라고 했다나. 이어진 대화에서 여행 얘길 나누다가 "아 재력이 좋으셔서 여행을 많이 가시는구나" 하셨대서 참 이 오해를 어떻게 바로잡아야하나..싶었다.
아무튼 그래서 올해 우리의 두 번째 여행 계획은 시작되었다. 시작은 비행기 티켓이었다. 역마살이 낀 나는 할일이 없을 때 비행기 티켓 검색을 하는 취미가 있다.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다보면 호텔 검색도 하게 되곤 한다. 요즘은 여행 날짜까지 무료 취소되는 옵션이 예전에 비해 많아져서 나의 취미활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던 3월 쯤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선언했다. "오빠, 우리 런던에 가자!"
남편이 말했다. "그래, 가자." 역시, 하나도 진지하게 듣지 않는군. 그럼 좀 더 진지하게. "오빠, 나 진짜로 좀 가고 싶은데. 안될까?" 남편이 나를 약간 당황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 얘 진짠가본데...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진짜로 가게될 거란 생각은 한 30%쯤이었는데, 말이 나오고보니 정말 어쩔 수 없어졌다. 남편은 정말 할 수 없는 친구군이란 표정으로 "가고 싶으면 가야지"라고 말해주었다. 얏호!
왜 런던인가? 라고 묻는다면 이 역시 별 생각 없이 정해진 것이다. 한 5년 정도 열흘 이상의 여행이 힘들다고 보았고, 그럼 가본 곳이 아닌 곳 중 먼 곳. 내 한몸이 아니기 때문에 치안이 좋고, 이제 아이들이 제법 커서 제 몸 건사는 할 수 있으니 관광으로 가자. 큰 아이는 "나는 더운 곳은 싫어"라고 했으니 동남아는 제외되는 와중, 6,7년 전 남편이 출장으로 다녀와서 참 좋더라며 나중에 같이 가자고 했던 런던 생각이 났다. 오, 런던.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서유럽. 좋아써!
이렇게 응낙인지, 체념인지 모를 합의 끝에 여행 계획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런 주제에 나는 7월 출발 때까지도 이 여행을 하는 것이 맞는지 여러 번 망설였다.
돈이 있다면, 무조건 국적기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티켓값 by 남편
첫 번째 문제는 물론 돈이었다. 서유럽은 일단 멀다. 비행기 표가 비쌀 것이라는 말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여행 기간은 7월 말 어쩌면 만국 공통 최성수기. 나의 여행친구 스카이스캐너를 여러 번 돌렸지만, 이제 4명 모두 성인인 우리는 비행기 티켓에만 최소 600만원 이상을 써야했다. 중국 항공사가 550만원 정도로 가장 저렴했는데,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던 나는 결국 국적기를 택했다. 그나마 가장 저렴했던 아시아나를 선택하니 티켓값만 700만원에 달했다.
다음 고비는 숙소. 아이들이 있다보니(라고 말하고 핑계라고 읽음) 너무 저렴한 숙소를 택하기는 힘들다. 특히 런던 호텔에는 에어컨이 없는 곳이 많다(가보니 이유를 알 수는 있었다).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최소 4성급 이상. 여행을 하면서 접근성은 여행의 성공을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는 걸 여러번 겪다보니 도심, 런던 1존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
4성급에 도심과 가까운 곳, 저 조건을 다 만족하는 곳은, 그냥 비싼 곳이었다. 서유럽이 대체로 그런 것 같긴 했지만, 런던 숙소는 알고보니 가성비가 떨어지기로 유명했다. 좁고 비싸다는 말이다. 어쨌든 비행기로 저녁에 떨어지니 이동하기 힘들지 않은 곳에 4박, 이후 4박은 도심에 더 가까운 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가보지도 않은 곳을 예약하려고 하다보니 이게 확정되기까진 수많은 무료 취소 호텔 예약과 취소가 반복됐다. 그래도 도의상 두 달 정도 전엔 예약을 확정짓긴 했다(미안합니다. 호텔리어 여러분). 그래봤자 숙소 비용이 400만원 안쪽으로 들어오기는 힘들었다. 동남아였다면, 최고급 리조트를 선택할 수 있는 금액. 그럼에도 그닥 만족스럽진 않아보이는 사람들의 후기는 걱정을 키웠다.
가서 쓸 비용도 생각해야 했다. 런던 물가가 워낙 비싸기로 유명한데, 2020년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화가 상당히 오른 상태(출국시 파운드당 1800원 전후)이기까지 해서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살펴보니 공산품이나 먹거리는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 같은데 서비스가 들어간 것들은 비용이 높은 것 같았다. 팁문화는 아니라고 하는데 셀프서비스가 많지 않고, 이에 따른 서비스 차지가 12퍼센트 정도 포함된다. 그닥 비싸지 않은 음식을 파는 식당들도 4식구 20만원 정도는 잡아야 했다. 밖에서 점심 정도만 제대로 먹는다고 해도 식비만 200만원 이상. 넉넉히 잡는다고 했지만, 갔다와보니 실제로 그 정도 들어주는 게 무시무시한 영국 물가였다. 파운드, 너님 진짜 대단하다.
대략적인 예산을 세우면서 내 입은 떡 벌어졌지만, 우리는, 나는 결국 가기로 했다. 고고고 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