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만원은 큰 돈이다. 이를 훌쩍 넘어가는 예산을 쓰는 여행을 준비하다보니 나는 점점 더 J가 되어갔다. 최대한 '멍청비'를 줄여야 그나마 헛돈은 안 쓸 수 있을테니까. 이번 글에서는 가기 전 준비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19년 동유럽 여행에서 도움을 받았던 네이버 카페를 들락거리며 동선과 숙소, 투어 등을 결정했다. 남편은 출장으로 한번 런던에 가봤지만, 6년 정도가 흐른데다, 현지 업무를 봐주는 분을 거의 따라다녀서 대중교통도 이용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초행이다 생각하고 준비하는 게 맞았다. 안 가본 곳이니 찾아야할 게 많았다. 인기있는 여행지인 만큼 정보는 무지 많았다. 조각조각이어서 그렇지. 하나가 괜찮아보이면 그에 따른 정보들을 또 캐야 하는 마치 줄줄이 감자같은 여행 준비. 하지만 괜찮다. 이건 마치 내 취미생활 같은 것이다.어떨 땐 이때가 더 흥분되고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떠나기 바로 며칠 전에는 진짜 너무 좋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사람 일이란게 다 그렇지 않나. 좋아서 하는 일은 밤을 새서라도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애들 교육에서 자기 주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공부하란 엄마 잔소리가 싫은 건 공부하는 게 싫은 게 아니...아니 공부하는 것도 싫지만, 하기도 싫은 걸 시켜서까지 하려니까 더 싫은 거 아닐까. 공부를 여행준비처럼 하면 참 재미있을텐데.
가장 먼저 결정한 것은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한대로 비행기 티켓. 날짜가 그렇다보니 가격 면은 1차 체념 후 확정.다음 결정할 것은 숙소였다. 대체로 숙소를 정하고 여행 동선을 짜는 게 내 나름의 습관이다.
일단 처음 가는 곳이기 때문에 초반 숙소는 접근성 좋은 곳으로 정했다. 히드로 익스프레스가 서는 패딩턴 스테이션 인근.
티켓 예약을 하고 런던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다보니, 어느 항공사로 런던에 가느냐도 제법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나는 히드로공항 2터미널로 들어가는데 이 경우 히드로 익스프레스가 좋은 선택지가 된다. 4, 5터미널에도 익스프레스가 서긴 하는데 이 경우 익스프레스를 타러 이동하는데만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일행이 여러 명인 경우 택시, 보통 우버 등 콜택시를 타기도 하는데 런던이 교통체증이 극심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린다. 그리고 우버 기다리는 곳을 찾는 절차 등이 초행인 여행자들에게는 약간의 도전이다. 그래도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국적기는 런던 시간 저녁 7시 전후로 도착하기 때문에 만약 여행 날짜가 겨울이고, 숙소를 찾는 길이 복잡하거나, 늘 체크인이 원활한 호텔이 아닌 경우 해가 진 뒤 헤매는 것보다는 택시가 나을 수도 있다.
공항 열차도 일반 기차도 확정했느냐 얼마나 일찍했냐에 따라 가격이 다양하다. 출처 히드로익스프레스 공식홈
하지만 우리는 익스프레스를 택했고, 익스프레스가 도착하는 패딩턴 주변에 숙소를 잡았다. 우리 여행은 한여름이었고, 한여름 런던의 낮은 정말 길다. 9시 넘어서야 해가 완전히 지니, 도심에서 도보 10분 정도는 나쁘지 않다.
익스프레스의 가장 큰 장점은 15분에서 20분이면 런던 도심이랄 수 있는 패딩턴 역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단점은 비싼 티켓값. 1인 싱글이 25파운드니 내가 예약할 당시 환율 1800원 정도를 적용하면 인당 4만 5천원이다. 4명이면 18만원, 왕복이면 36만원? 이 정도면 편하기라도 하게 한인택시 불러야지.
그런데 여기서 이런저런 할인이 있어 나에겐 이 선택지가 제일 나았다. 리턴으로 끊으면 50파운드가 아닌 36파운드고, 얼리버드 티켓은 편도 15파운드. 왕복 30파운드인데, 익스프레스는 만 15세 미만 '어린이'는 보호자를 동반할 경우 무려 무료다. 그러니까 만 14, 13세인 우리 애들은 어린이였고, 무료였다. 이 티켓은 환불 불가라는 점이 제한이 있긴 했지만, 결국 나는 과감하게 익스프레스를 택하고 확정했다(너무 싸잖아). 결과적으로 60파운드, 왕복 10만원 정도로 네 식구가 공항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올때 택시 문제로 땀을 좀 뺐지만).
런던 세인트폴대성당 예약사이트 티켓 종류들. 다양한 종류의 패밀리 티켓이 있다. 출처 세인트폴대성당 사이트
말 나온 김에 '어린이' 얘길 해보자면, 전에 오스트리아-체코 여행(이후부턴 동유럽 여행이라 칭할 예정)에서도 느꼈는데 유럽은 어린이 취급에 좀 관대한 것 같다. 익스프레스처럼 만 15세, 세인트폴대성당 같은 관광지 중에는 17세를 child로 분류해서 반값을 받거나 가족여행객을 상대로 할인이 된 family 티켓을 따로 파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패밀리 티켓은 아이가 두 명이어도 할인이 되지만, 세 명까지도 대체로 가격이 같아서 아이가 많을수록 이득이다! 최근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진 우리나라에서도 아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혜택을 마련하고 있지만, 체감이 잘 안된다는 반응이 많다. 우리나라에도 어린이 할인이 있지만 대부분 초등까지다. 우리나라 물가도 계속해서 비싸지고 있는데, 이런 가족티켓이나, 어린이 연령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 확대되면 좀 더 체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숙소 패딩턴 노보텔 런던은 패딩턴 역에서 도보로 7분 내외의 거리였다. 구글 지도 기준이었다. 노보텔이야 그럭저럭 깔끔한 수준의 4성급 호텔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초행으로 저녁에 도보로 가는데 너무 진을 빼지 않을까가 문제였다.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이 한국시간 꼭두새벽이다보니 다들 컨디션이 별로일테니까. 열흘 일정이니 트렁크 두 개 정도는 가져가야 한다는 것도 걱정. 게다가 런던의 역들이 오래돼다보니 에스컬레이터는 커녕, 엘리베이터도 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패딩턴 역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고 엄청 뒤졌는데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패딩턴 역 너무 크고 복잡해! 이런 글이 많아 겁만 더 많아졌다. 그래도 한 두 블로그 여행기를 통해 패딩턴 역은 아주 큰 역이라(진짜 컸다) 잘 찾으면 스텝 프리, 그러니까 계단을 많이 안 쓰고도 다닐 수 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막상 가니 way out만 천천히 따라가면 잘 찾을 수 있고, Grand union carnal이라는 우리가 찾아야할 출구도 잘 적혀 있었다. 나보다 훨씬 길을 잘 찾는 남편이 앞장서긴 했지만, 천천히 하면 다 갈 수 있는 곳이니 혹시 가는 분들은 너무 걱정마시길.
나중에 보니 패딩턴스테이션에서 바스처럼 기차로 갈 수 있는 근교가 제법 많으니 오래 묵을 분들은 이 근처로 잡으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듯하다.
히드로익스프레스가 도착하는 패딩턴스테이션 by 슬리피언이어서 사진 퀄이 떨어짐.
두 번째 숙소는 어디로 하지? 남편에게 런던 어디가 좋았냐고 했더니, 빅벤이니 런던아이니 하는 나도 아는 런던 관광지 말고는 '코벤트가든'이 기억난다고 했다. 찾아보니 인근에 마켓도 있는 도심지 한복판이었다. 그래서 이 단어를 기준으로 검색하다가 결국 코벤트가든이 들어간 시타딘 홀본-코벤트가든으로 정했다. 옛날에는 무조건 호텔 사이트 통해서 했는데 여행 카페를 통해 공식홈에서 예약하면 첫 예약 20퍼센트 할인 바우처를 준다는 정보를 봤다. 물론 호텔 사이트보다 20% 싸진 않은데 확실히 최저가 수준이긴 해서 여기서 예약. 여기도 환불 불가라서 최종, 최최종 확정이 난 이후에야 결제했다.
숙소를 검색하면서 알게 됐는데 런던도 우리나라처럼 템즈강 남북으로 분위기가 좀 다른데 남쪽으로 많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치안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처음에 타워브릿지 남쪽의 워털루역 부근의 신축 레지던스를 예약했다가 좀 더 도심으로 하고 싶기도 하고, 치안 얘기를 듣고 혹시나 싶어서 홀본으로 확정했는데 나중에 타워브릿지에 가보니 그냥 이쪽으로 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할수록 느끼는 게 숙소는 정말 핵심 명소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가격이 확 내려간다. 그런데 렌트 없이 뚜벅이로 여행하는 경우 도심 접근성을 포기하는 것이 참 어렵다. 초행인 나라를 자유여행으로 준비하면 뭔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참 많은데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취한다는 게 매번 쉽지 않다. 뭣보다 내 결정으로 가족들이 고생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제일 많은 것 같다.
우리 식구들은 대체로 '우와'해주는 성격이어서 그래도 내가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된다. 혹시 누군가와 여행할 때 여행준비를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의 실수가 있어도 좀 봐주면 좋겠다. 그 사람도 나름 겁이 나는 와중에 다양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을테니까. 우리집 여행 준비는 늘 관심도, 시간도 많은 내가 하는데 늘 이에 대해 믿고 존중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