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준비인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결정하고 나면 큰 일은 다 한 거다. 더군다나 이걸 한 3, 4개월 전에 마치고 나면 시간이 아주 많이 남는다. 나머지는 천천히 현지 정보를 찾아보면서 동선을 짜면 된다.
남편은 내 여행 준비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사실 어떤 일에도 그런 편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몇 가지 원하는 사항을 얘기했는데, 한 가지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가자"는 것과 가이드 투어를 몇 번 하자는 것이었다.
가이드 투어 중. 며칠에 한번 정도는 누가 태워주는 차에서 누가 하란대로 하는게 편하다 by 남편
가이드 투어 문제는 우리가 패키지는 안 맞는 것 같아 자유여행을 해왔는데, 이러다보니 조각 정보만 가지고 여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명소에 가긴 갔는데 아, 이런게 있군 하고 인증샷이나 남기고 오는 식이다. 그래서 이전 여행에서 데이투어를 몇 번 해봤는데 상당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여행 초반에 하면 현지 정보를 많이 알려주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해주신다. 신난 초반과 달리 여행 중반에는 우리끼리 이것저것 알아서 하느라 좀 지쳐있다가 가이드님이 하라는대로 하는 게 좀 편하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됐던 경험이 있다.
남편은 지난 번 런던 출장에 무려 DSLR을 들고 갔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이 카메라로 찍은 게 참 좋았는데 네 식구 건사에 카메라까지 건사할 생각을 하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남편은 캐논 5D 마크2를 쓰는데, 카메라 자체도 큰데다렌즈도 따로 들고 다녀야 해서 나 역시 저걸 따로 들고 가는게 싫었다. 결국 남편은 이 핑계로 FUJI의 X100F라는 카메라를 중고로 장만했다. 나는 여행에 돈도 많이 드는데 사심을 채운다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사진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여행기를 다 정리하고 나면, 셀프 사진집을 하나 만들 생각이다.
카메라를 새로 마련한 남편의 회심의 역작들.
가이드 투어도 선택해야 했는데 해리포터를 찍었다는 크라이스트 처치가 있기도 하고, 명문 대학이라면 빠지지 않는 옥스포트와 영국 전원마을 코츠월드 투어, 스톤헨지와 바스투어를 골랐다. 넷플릭스에서 재밌게 봤던 '삼채'에 나왔던 세븐 시스터즈도 방문하고 싶었으나, 9일 일정에 세 번 투어는 좀 과한 것 같아 포기했다. 런던 시내에도 볼 게 많은데 다 못 본 것 같아 여전히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여행 계획 짤 때, 특히 가족 여행에서 과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모자람만 못하다.
이번 여행에서 이전 여행의 짐과 다른 것을 얘기해본다면 음식 짐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현지 음식을 잘 먹는 편이어서 한식을 싸서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산 압박이 크다보니 한국에서 가져갈만 한 것은 가져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나 남편이나 우리 아이들 모두 맛집을 찾아가기보다는 편하게 집에서 배달해먹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 호텔에서 간단히 먹을만한 것들을 사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더구나 두 번째 숙소는 레지던스로 예약했기도 해서 전자렌지로 데워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좀 쌌고, 초반 숙소는 포트만 있어서 '전투식량'을 전투적으로 쌌다. 요즘엔 여행에 가져갈 수 있는 간편식들이 굉장히 잘 나와서 고르기만 하면 됐다. 사뒀던 솥반도 싸고, 볶음 김치와 튜브 고추장도 좀 사고, 여차하면 비벼먹으려고 소포장된 들기름도 샀다(우리 가족은 들기름을 사랑한다). 컵라면을 살까 하다가 부피가 좀 있길래 전투식량을 '라면밥'으로 샀다. 호텔 포트 위생 얘기가 있길래 만 얼마를 주고 전기 포트도 하나 샀는데 우리 숙소들은 다들 리모델링한지 얼마 안돼 포트가 새거라 그냥 썼다. 다만 첫 숙소는 포트가 더럽진 않은데 작아서 우리 포트를 같이 썼다.
런던에서의 트렁크 식탁 위 편의점 만찬. 웃기게도 우린 이걸 참 좋아했다 by 남편
현지에 가보니 즉석밥은 크게 나쁘지 않은 가격에 팔고 있었고, 런던 도심 한복판에 한국 식재료를 파는 마트도 있었다. 그러니 짐에 너무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한국 음식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현지 조달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현지 한국 마트에서 신라면 블랙을 4봉지 5파운드 정도에 사먹었는데 이 정도면 짐에 싸가는 것보다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음식은 적당히 싸가면 될 것 같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해외 여행 준비가 편해진다고 느끼는데 그 중 하나가 환전 문제다. 전에는 환전하려면 달러나 엔이 아니면 시중 은행 어디서 환전해야하는지 찾고, 방문하는게 일이였는데 요즘은 방에서 환전이 가능하니 참 편해졌다. 은행 앱을 잘 보고 있다가 현지 통화가 좀 떨어지는 날 환전 신청을 하고 공항에 방문해서 찾으면 끝.
영국의 경우 현금 쓸 일이 진짜 없다고 해서 이번엔 정말 적은 현금만 환전했다. 가이드 투어 때 가이드님 드려야 하는 입장료 80파운드 외에 예비비로는 단 30파운드만 환전했는데, 이것도 진짜 열흘 가까운 동안 한 푼도 안 써서 면세점에서 티 사는데 다 썼다.
대신 영국에서는 컨택리스 카드를 챙기면 좋다. 요즘 많이 쓰는 트래블로그, 트래블월렛은 다 컨택리스 카드여서 IC카드처럼 꽂지 않고, 우리나라 삼성페이처럼 터치하면 결제된다. 컨택리스 카드는 전에 한동안 문제가 됐던 카드 복제에서 좀 자유로운 모양이다. 무엇보다 영국은 우리나라 컨택리스 카드를 가져가면 현지 교통카드로 쓸 수 있어서 편하다. 안 그러면 가서 오이스터 카드를 따로 사야하는데 보증금도 있고 해서 좀 번거로우니 기념품으로 오이스터 카드를 가지고 오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있는 걸 가져가면 좋다. 집에 있는 카드를 뒤져보니 다섯 장이나 돼 이걸 가져가서 교통카드로 잘 썼다. 주의할 점은 한국에서 교통카드 신청이 돼있는 카드여야 한다는 점. 런던에서 아이들 오이스터 카드는 교통편 반값이라 살까 했는데 보증금 내고, 충전하면 로스 비용도 생기고, 그렇게 많이 쓸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가져간 컨택리스 카드를 주고 쓰라고 했는데 잘 작동하고 편했다. 버스를 탔다 작동이 안되면 당황하니까 지하철을 먼저 이용해보고 쓰면 좋다.
집에 이런거 찍혀있는 카드가 한 두장은 있을 거다. 후불교통카드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by 슬리피언
가기 전에 깔고 가니 좋았던 앱들이 있어서 추천한다. 요즘 여행 앱이 많이 생기는데 그 중 하나인 트리플은 여행 일정을 차곡차곡 써서 동반자와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수정을 하면 공유한 사람도 볼 수 있고, 동반자도 수정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요즘 여행 앱들이 많이 나와서 꼭 이 앱이 아니더라도 하나쯤 깔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앱을 통해 바로 환전할 수 있는 트래블로그, 트래블월렛 앱도 있으니 좋았다. 각 앱에 돈을 쓴 내역이 뜨는데 여기 간단한 메모를 할 수 있다. 돈 쓴 곳이 그대로 동선이 되니 계획을 짠대로 움직였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았다. 트래블로그는 특정 은행을 통해 충전해야 하는게 좀 불편했는데, 환율은 늘 다른 곳보다 싸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면은 제일 매력적이었다. 트래블월렛은 로그보다는 좀 비싼 환율이 적혀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은행에서 바로 돈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점이 편했다. 둘 다 있는게 절충되고 좋다.
구글 앱들 중에 여행에 쓸모 있는 것들이 많은데 전통의 강자인 구글 지도는 당연히 깔고 가고, 지난 일본 여행에서부터 쓴 렌즈도 큰 도움이 됐다. 특히 미술관 같은 곳 안내판, 설명문을 볼 수 있는게 정말 좋았다. 내 경우에는 사람이 많지 않은 테이트모던에서 참 좋았는데, 현대미술이 배경없이 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든데 렌즈를 통해 본 설명이 큰 도움이 됐다. 생각보다 번역된 문장이 알아볼 만해서 놀랐다. 갈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영어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제법 에너지를 쓰는 과정이 해석인데 얘는 진짜 빠르다.
구글 지도 외에 현지에서는 씨티맵퍼가 좋다고 해서 깔고 갔는데 확실히 그랬다. 씨티맵퍼가 현지 상황을 더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택시 앱도 우버 말고 볼트도 깔았는데 현지에서 한번 쓰고 나니 할인쿠폰을 다섯 장 줘서 잘 썼다. 잡히는 건 우버가 더 잘 잡히는 것 같았지만, 할인쿠폰은 역시 거부하기 힘들다.
그 외에 잘 쓴 것들은 경량 양우산과 장바구니 등이다. 런던이 비가 자주 온다는데 런더너들은 엥간한 비에 우산을 잘 안 쓴다지만 우린 또 코리안이니까. 사실 비가 하루 밖에 안와서 우산으로보다는 양산으로 잘 썼다. 맨날 들고다녀야 하니까 100g 안쪽의 경량이 좋다. 미니 크로스백에도 두개 넣어도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장바구니는 꼭 챙기시길. 비닐 하나에 0.7인가 0.8, 어디는 1파운드도 받던데 생각해보니 비닐 봉투 하나에 1000원이 넘는거다. 국내에서 장바구니 안가져갔을 때 100원, 50원도 살짝 아까운데 처음 두 번정도 안 가져갔다가 나중에는 꼭 챙기게 됐다. 역시 금융치료가 짱인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