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응원팀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
내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을 친구와 같은 존재로 여긴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해에 응원하던 야구팀 역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순위 경쟁에서 밀려났던 적이 겹치면서 스포츠 경기로 위안을 얻는 것보단 친구를 응원해주는 마음으로 보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
나와 야구팀, 동시에 슬럼프가 왔던 해는 2011년과 2014년이었다. 그리고 올해, 내가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최근 야구 경기 보는 것을 소홀히 했는데 오랜만에 경기를 지켜보다 보니 놀랍게도 그들의 순위가 한참 내려가 있었다.
응원하는 야구팀은 2000년대 들어 웬만하면 중간 이상의 퍼포먼스를 냈던 팀이다. 특히 2015년부터 작년까지 최근 5년간, 국내 10개 프로야구팀 중 우승팀을 가리는 한국시리즈에 매 해 진출했고 그중 3번의 우승, 2번의 준우승을 이루어냈다. 이 때문에 팬들은 행복한 5년을 보낼 수 있었고 코 끝이 시리는 초겨울까지 야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껴왔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과 기대감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 걸까? 요즘 응원팀의 팬들은 감독의 하차 또는 특정 선수들의 노쇠화와 재계약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쉴틈 없이 쏟아내고 있다. 지금의 야구팀 멤버는 작년에 있었던 (드라마 각본과도 같은) 우승 스토리의 멤버와 다를 게 없는데도 말이다.
프로야구팬들은 응원 팀의 성적으로 한 해를 평가하고자 한다. 주전 선수들은 보통 고액의 연봉을 받고 뛰기 때문에 개인 성적뿐만 아니라 팀 성적에 대한 결과 그리고 그에 대한 비난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아직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내 응원팀의 경기력을 보다 보니 더 높이 치고 올라갈만한 동력이 지금은 조금 부족해 보여 나 역시 실망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친구'와 같은 입장에서 내 상황을 대입해 들여다보니 야구 경기에 대한 스트레스는 조금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지간히 풀리지 않는 것들과의 밀고 당기기에서 그만 손을 놓고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나는 쉬는 것이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난 고액 연봉자도 아니고, 가업을 물려받는 사람도 아니고, 평범한 30대 직장인으로 살고 있지만 그동안 내 여정이 너무나도 숨이 찼던 것이 사실이다. 특정 나이 때가 되면 해야 하는 것들을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집중했고, 그렇게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를 위해 또 달려갔다. 인생의 목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단지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바라는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 '정상적'으로 보일 것만 같아 달려왔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또는 가정과 사회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에 대한 책임감, 또 나 스스로를 채근하기 위해 가져야만 했던 인위적인 자기 계발의 시간 등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것만 같았다. 자아와 목표가 명확했다면 올해 나는 이렇게까지 흔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내 삶에서 나는 그동안 많은 것을 이뤄왔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는 잠깐이지만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EPL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마저 12일 동안 진행된 4경기에 풀타임 출장하는 강행군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햄스트링 부상을 얻었다. 한 경기에 4골을 넣는 미친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그에게도 휴식이 필요했을 거다.
나의 야구 응원팀으로 돌아오자면, 지난 5년간 가장 긴 시간 동안 팬들에게 야구를 선사해준 선수들에게 그리고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에게도 쉼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살면서 1등 자리를 놓고 꾸준히 경쟁해 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학교 다닐 때에도, 남들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면 충분하다 생각했고, 사회에서도 특진이나 A고과를 위해 경쟁하지 않고 어느 정도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을 정도로 일만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나의 응원팀은 무려 5년이나 1등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을 상상하니 이제는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쉴 때도 되었다 싶다. 그리고 자신감이 하락하거나 혹시나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되지 않도록 올해는 적당히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공분을 살지도 모르는 얘기겠지만, 고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라도 쉼이 필요하고 다시 뛸 준비가 됐을 때 남들보다 더 열심히 뛰면 되지 않을까.
타석에서 공을 골라내고, 타격을 하고 1루, 2루, 3루 베이스를 지나 홈으로 들어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예단할 수 없으며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비난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1루까지 전력질주를 해 본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고, 1루에서 2루를 가기 위해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좋은 타이밍을 잡아 성공한 적도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가끔은 운이 좋아 홈런을 치고 남들보다 쉽게 홈에 들어온 적도 있지만 이 또한 확률로 따지면 매우 낮다. 야구선수들의 타율이 3할이 기본이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과정 중에서 10번 중에 3번은 늘 성공했다고 결코 단언할 수는 없다. 야구선수들에게도 매일 또는 매해 똑같은 경기력과 집중력, 그리고 체력을 요구하는 건 나의 욕심이었을 뿐.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기적적이고, 또는 더 잔인해지는 야구 경기와 우리의 하루하루. 잘 풀리지 않는다면, 기적을 바라는 것보단 잘 쉬고 잘 내려놓으면 어쩌면 우린 내년에 더 건강해질 수 있고 내년에 더 성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