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빵집의 폐업 소식에 혼란스러운 나
새로운 것을 마주하기에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완벽하게 그런 부류에 속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사람들, 물건이 바뀌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다. 무엇인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리숙한 모습을 보면 아직도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인 것만 같아 속상할 때도 많다. 어쩔 수 없이 바뀌는 상황에서도 나는 '나만 놔두고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다'는 허탈함을 느낄 때도 많다. 익숙해진 것들과 작별을 고해야 할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나씩 정리하고 접어두어야 할까.
주말 아침마다 갔었던 동네 빵집이 이번 주말까지만 영업 하고 문을 닫는다고 한다.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의 브런치를 책임져주는 고마운 곳이었고, 식빵과 바게트 그리고 소금빵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재택근무가 시작된 후엔 평일에도 수 차례 찾아가 좋아하는 빵을 담으며 설렘을 느끼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곳이 문을 닫으면 나는 이제 주말마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나 고민하고 쓸쓸해할 게 분명하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은 집에서 좀 더 멀고 맛도 내 입맛엔 별로였기 때문에.
동네 빵집의 영업 종료 소식은 예상치 못하게 나를 혼돈의 구덩이로 빠뜨렸다. 이제 토요일 오전, 이 골목에서 맡을 수 있었던 고소한 빵 냄새는 맡을 수 없겠지. 모퉁이를 돌아 스타벅스와 빵집이 있는 이 골목에 진입할 때 더 이상 설레지 않겠지. 어린 시절 추억의 감성도 아닌, 30대의 모호한 동네 빵집 감성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비웃을 수도 있는 이 익숙한 빵집에 대한 애틋한 감정. 사랑이라는 게 영원한 줄로만 알았던 20대의 어느 날 연인을 떠나보냈을 때의 그 감정과 비슷하면서도 오묘하게 다르다.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채로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아예 없었던 관계'로 바뀌는 그 혼란스러움과는 매우 닮아있다. 익숙한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과 편안함, 내가 언제든지 의지할 수 있다는 약간의 안도감을 갑자기 잃어버렸을 때 나는 상실감을 크게 느낀다. 이상하게도 동네 빵집의 폐업 소식에 나도 모르게 상실감이 찾아왔다고 볼 수 있다. 아무 이유 없이 들어갔던 빵집에서 우연히 맛있는 빵을 발견하고, 자주 찾아갔고, 주말 아침을 함께하는 친구처럼 의지했었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는 것을 싫어하고 '늘 먹던 것'이 존재한다는 안정감도 있었다. 그랬던 장소가 이제 사라진다는 점에서 상실감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연인을 떠나보냈을 때와 다른 점도 있다. 가끔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 자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러했고, 사람을 잃은 것보다 내가 누려야 마땅할 것 같은 '연인 관계' 그리고 '연인과의 데이트' 등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그리움 또는 아쉬움이 큰 적도 많았다. 어찌보면 사랑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감정이지만, 내겐 상대방 자체를 그리워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동네에서 빵을 사 먹는 행위야말로 얼마든지 다른 장소에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그리움과는 매우 다를 거다.
하루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풍경, 립스틱보다 손세정제를 챙기는 게 더 당연한 시기, 생각하지 못했던 배달앱 VIP 등극. 이 모든 것들은 작년 초만 해도 절대로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어느새 금방 적응했고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을 보면 곧 사라질 동네 빵집도 '그때 거기 참 맛있었는데' 정도의 기억으로 잘 남겨지겠지. 떠나가는 연인처럼 명치를 강하게 누르는 것 같은 아픔을 남겨주고 가진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