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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Feb 15. 2022

아저씨, 스킨십 좀 그만하세요

"아저씨 스킨십 좀 그만하세요"


이 말이 그렇게 어려웠나.

그땐 그랬다.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 원래 성격도 똑 부러지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려고만 했었던, 내 감정이나 커리어에 대한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던 그때.


나는 매우 별로인 조직과 조직장을 만났었다. 하지만 참아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아마도 매우 일해보고 싶던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유난히도 어리석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당시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속한 조직이 매우 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의견을 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옳고 그름을 따져보려는 노력은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내 위의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항상 조직 내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폭언과 욕설, 그리고 무자비한 어떤 폭력적인 행동들에 대해서 항상 조용했었다. 나는 그게 사회생활의 미덕이라고 아마 잘못 배우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별로인 조직에서 3년 차를 맞이했던 어느 날, 임원 한 명이 주최한 회식자리에 불려 갔던 나는 매우 불쾌한 손짓을 마주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임원의 두껍고 거친 손이 내 어깨에 닿더니 슬슬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이건 아닌데?'


찰나의 순간 나의 모든 생각의 회로가 정지된 것만 같았다. 내 다음 행동을 쉽게 예측할 수도 없었다. 이게 아닌 것 같다면 그에 맞는 말이나 행동이 이어졌어야 했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자기 주도적이지 않은 면모를 갖춘 사회초년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변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의 이유다.)


생각의 회로가 멈춘 그 시간 동안 스킨십은 지속됐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느낌인데 벌써 수년이 지났음에도 꽤 명확하게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그래서 나는 그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예상대로 나는 아무 말하지 않고 그날의 회식을 마무리했다. 


그 이후 회사에서 그 임원을 마주칠 때마다 온몸에 가시가 돋는 것처럼 여기저기 시리고 아파왔다. 어느 순간에는 급격하게 화가 치밀어 올라 나도 모르게 화장실로 달려가 파우치를 집어던진 날도 있었더랬다. 회식이 있었던 그날로부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어쩐지 기억은 더 선명해지고 기분은 점점 더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종종 뒤늦게 과거 성추행을 신고하거나 뒤늦게 미투 대열에 동참한 사람들에 대해 접할 때마다 항상 함께 보던 댓글이 있었다. 그땐 왜 가만히 있다가 한참이 지난 이제야 신고를 하고 고소를 하냐는 얘기였다. 아마도 그 댓글을 쓴 사람은 이런 일을 당해보지 않아서 몰랐겠지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또렷해지는 기억과 순간의 느낌, 그리고 상대방을 마주했을 때의 패배자적인 감정. 뭐 이런 것들로 인해 뒤늦게서야 용기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나처럼 좋게 말하면 순수했던, 나쁘게 말하면 정말 멍청했던 사회 초년생이라면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그게 잘못된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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