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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Mar 05. 2024

서점

놀이터

시간의 역설인가. 아니면 유행은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인가. 소비되지 않던 종이로 된 책이 다시 소비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유형의 책방들도 많이 늘어났다. 책을 읽는 분위기도 잘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책방에 관심이 많아지기도 했고, 거리도 있어 가지 못했던 교보문고를 오랜만에 들렀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지역에는 안타깝게도 서점이 몇 군데 없고, 책방조차 몇 군데 없다. 그리고 교보문고는 당연히 없기에 대구에 나오고서야 들를 수 있는 곳이라 고민 없이 발이 이쪽으로 나를 데려다 놨다. 정신없이 도착해 안경을 꺼내어 코 위에 얹고 아주 진지하고 빠르게 스캔을 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문장을 가진 새로운 책이 있는지. 금사빠인 나는 나를 끌리게 하는 문장이 있으면 고민 없이 일단 집으로 데려가기 때문에 열심히 반하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스캔했다.


사실, 긴 시간은 필요 없다. 오래 나를 고민케 하는 책이라면 내가 읽지 않을 확률은 높아지니까. 나는 나를 잘 안다. 금사빠인 대신 금방 그 마음이 식기도 하니까. 물론, 주체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문장을 발견하려고 한참을 스캔을 하고 다녔다. 그리고 찾지 못한 마음에 아쉬워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걸음을 멈춰 나가기 전 다시 돌아보다 괜히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생 때 나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교보문고였다. 때마다 책을 읽는 내가 참 지루하고 고루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사람이 늘 많지 않았다.


종이책의 열풍이 살짝 불고, 책과 서점에 대한 일상의 일과의 간극이 줄어들면서 사람이 늘더니 서점 안을 꽉 채웠다. 저마다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취향을 잔뜩 이고 지고서. 선택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저마다의 취향을 찾는 일. 신기하고도 흥미롭다.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이름으로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구매하는 마켓임에도 숨죽여야 했던 서점은 취향을 공감하는 공간이 되어있었고, 제대로 돌아온 것이다. 유효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


 신기하면서도 괜히 기쁜 마음. 사실 저들의 취향을 알고 싶지는 않다. 나는 배려가 가득한 도서관 같은 느낌의 서점을 꽤나 선호했으니까. 그러다 오늘 어쩌면 이게 더 맞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서점은 역시 책을 소비하는 곳이니까. 문장을 소비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보니까 왠지 더 놀이터 같게 느껴졌고, 그래서 가깝게 느껴졌다. 괜히 재밌었다. 살아오면서 겪은 것과 다른 분위기의 지금이. 원하는 문장도 원하는 책도 찾지 못했지만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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