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 송편

by 보리별


아직 덥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니 후덥지근하고 땀이 난다. 빨래도 돌리고 목욕을 한다. 정신이 좀 차려진다. 이제야 연휴가 끝난 것 같다.


이제 추석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좀 서운해서 방앗간에 가서 쌀을 빻아 왔다. 송편을 만들고 백설기를 쪄보려고 시작했다. 송편은 시집가서 큰 집에 앉아서 동서들이랑 같이 만들었다. 큰 어머니께서 준비해놓은 반죽을 가지고 동서들끼리 장난치면서 둘러앉아서 만들었다. 큰어머니 덕분에 즐거운 명절이었다. 4칸짜리 옛날 시골집은 좁았지만 넉넉하게 사람을 품었다. 호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 덕분에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명절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형님이랑 둘이서 명절을 지내야 하던 때부터였다. 형님은 명절마다 입이 댓 발 나와 옆 사람을 불편하게 했고 아버님은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서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며칠 전에 뜬금없이 찹쌀 새알 미역국이 먹고 싶어서 만들어 먹었다. 몇 년 전에 만들었을 때는 맛이 너무 없어서 버렸다. 이제 손맛이 늘었는지 먹을 만하게 되었다. 새알 반죽을 성공하고 나니 용기가 생겼는지 송편으로 일이 커졌다. 집에 깨도 있고 병아리콩도 많이 있어서 그걸로 소를 하기로 한다.


방앗간에 가서 물어보니 한 되에 8000원이라고 한다. 쌀값 포함이다. 2시간 있다가 오라고 하신다. 갈아온 멥쌀가루를 체에 친다. 체에 2번 쳤다. 고슬고슬하고 보드라운 가루가 만들어진다. 더운물로 익반죽을 한다. 딸아이랑 둘이서 송편을 만든다. 깨로 만드는 소는 쉬웠다. 깨랑 설탕을 동일하게 넣고 소금 약간, 물 약간을 넣으면 끝이었다. 병아리콩은 푹 삶아서 설탕 많이, 소금 조금 넣고 졸였다.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쌀 반죽을 20g씩 계량해서 동그란 원형으로 만들려고 했다. 실패했다. 자꾸 터진다. 포기하고 예전에 큰 집에서 하던 방식으로 만든다. 소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반죽을 접는다. 그리고 손안에 반죽을 통째로 넣고 손가락 모양이 나게 살짝 누른다. 몇 번 누르면 공기가 픽하고 빠져나간다. 공기가 빠져나가면 송편을 찔 때 잘 터지지 않는다. 이렇게 몇 번 손자국이 나게 눌러주면 송편이 완성된다. 20g은 작았다. 다음에는 35g 정도 해야겠다. 냄비에 물이 끓어오를 때 채반 위에 송편을 올리고 20분 정도 쪘다. 맛이 괜찮았다.


백설기는 물 주기를 해야 되는데 깜박하고 그냥 채반에 넣어버렸다. 할 수 없어서 그냥 찌는데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서 보니 물이 모자라서 냄비가 타고 있었다. 급하게 다시 물을 부었다. 냄비와 채반이 세트라서 다른 냄비로 바꿀 수 없었다. 20분 정도 찐 백설기는 부슬부슬 가루가 떨어졌다. 그래도 손으로 꼭꼭 눌러 먹었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살짝 탄 맛이 났지만 떡보인 나는 괜찮았다.


이러고 놀았다. 많이 놀아서 몸이 무겁다. 어제는 책방 모임을 다녀오고 퍼져서 드러누웠다. 오늘은 일어나서 밥을 억지로 입에 밀어 넣고 우체국에 다녀왔다. 딸아이에게 된장과 고추장을 부쳐주고 왔다. 자전거 바구니에 반찬통을 넣고 아이스박스는 검정 비닐에 넣고 자전거에 매달아서 다녀왔다. 강을 따라서 우체국으로 갔다. 택배를 보내고 근처 카페에 들렀다.


2층에서 내다보는 나뭇잎이 참 이뿌다.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햇살도 따뜻하다. 이렇게 2층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사랑스럽다. 아름답다. 내 모습도 아름다울까...


아직 더운 9월 둘째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