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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Oct 30. 2024

기차 여행



지난 19일 기차로 부산을 다녀왔다. 기차는 오랜만이었다. 내 집에서 동대구역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이다. 그날은 마구 쏟아진 비로 45분 정도 걸렸다. 치렁치렁한 치맛자락을 잡고 숨차게 역광장을 뛰었다. 간신히 올라탄 기차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비속을 헤쳐갔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철길 옆에 있었다. 늦봄 모내기가 끝난 논, 촘촘한 모 사이로 개구리가 신산하게 울었고 치이익 철컥 철컥 육중한 기차소리는 봄바람을 타고 마음으로 들어왔다. 멀리 떠나는 기차 같았다.


누가 탔을까?

어디로 갈까?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흩날리던 비는 그쳤다. 오초량은 지하철로 한 정거장이었고 도보로 1km 정도였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더 아담하고 정갈했다. 웰컴티로 녹차를 우린 물에 금목서꽃을 넣어 다시 우려 주었다. 금목서 향이 입안에서 넘실댔다. 몇 년 전 통영 박경리문학관 뒷산에서 금목서 향에 푹 빠진 적이 있다. 금목서는 키가 크고 우람했다. 통영시내를 다녀보니 집집마다 마당에서 한 그루씩 키우는 나무였다. 부산 가기 전 날 금목서 나무를 하나 주문했는데 소소한 우연이 재미났다.


정원에는 키가 하늘까지 치솟은 금목서 나무가 있었다. 파초도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층꽃이 예쁘게 피어있었고 만리향 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었다. 홍자단 열매가 빨갛게 맺혀 눈길을 끌었다. 오초량 하늘 삼면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차있었다. 100년 된 적산가옥, 오초량은 고층빌딩 사이 허파 같았다.



아파트 공사할 때 집이 주저앉아서 해체하고 다시 맞췄다고 한다. 땅속에 시멘트를 아주 많이 부어서 지반을 다졌는데 그 후 정원 나무 중 일부가 죽었다고 했다. 빌딩사이로 골바람이 세게 분다고 했다. 태풍이 오면 기와장이 무너져서 걱정이 많다고 하신다.


2층으로 옮겨서 예술가들의 편지글을 읽었다. 그네들은 가난에 시름했고 참척에 괴로워했고 예술에 고양되어 있었다. 그날 참가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한 줄씩 읽어가는 목소리는 예술인들과 같은 자리였다. 존 레넌의 아내 오노요코의 편지가 인상적이었다.


자리를 마치고 나오니 어둑해졌다. 초량역 근처 카페로 갔다. 돋아진 흥을 깨뜨리기 싫어 조용한 곳에 앉고 싶었다. 싸이폰으로 내린 커피를 반 마시고 남은 커피에 데운 우유를 부어 마셨다. 싸이폰으로 내린 커피는 필터추출도 아니고 에스프레소처럼 고압추출도 아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압력과 증기로 투박하지만 정다운 맛을 냈다. 자그마한 좌식 찻자리에 앉아서 오늘을 생각했다.


100년이 넘은 오래된 집 안, 검은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무계단이 떠올랐다. 나뭇잎무늬가 새겨진 반투명유리창이 생각났다. 삐걱대는 마룻바닥이 생각났다. 하얀 한지 바른 벽이 생각났다. 굵직하게 면을 가른 나무창살이 생각났다. 벽면에 박힌 나무들이 생각났다. 그 집의 모든 것에 잠겨 들었다.


일본인은 부산에서 오래오래 호사스럽게 살고 싶었나 보지... 그 집 지을 때 천년만년 살 줄 알았나 보다...


  




당신은 열여덟, 서른 혹은 쉰 살일 수도 있으나 당신 인생의 이때 예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당신은 젊습니다. 우선 당신의 선택을 축하해주고 싶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예술가로서의 끝없는 마술 같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것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작품을 위해 무한한 재료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은 갑자기 다른 곳, 너무도 흥미롭고, 너무도 아름답고 또 너무도 신비로운 곳이 됩니다.

즐기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즐거움을 우리와 함께 나누십시오.

당신은 예술가로서 삶의 무궁한 신비를 펼쳐 세상과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작업으로 소통할 사람이 딱 두 명뿐일 수도 있습니다.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자기 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속상해하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작업을 봤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리뷰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작업은 존재할 것이고 계속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떤 주목을 받게 되든지 혹은 받지 못하게 되든지 간에, 당신의 작업은 우리 세상의 윤곽을 계속 변화시킬 것입니다. 당신의 작업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세상에 작용하고, 그 답례로 당신이 나눠주는 것의 10배를 돌려줄 것입니다. 당신이 고물을 내놓으면 당신은 고물을 돌려받을 것입니다. 당신이 혼란을 내놓으면 당신의 자기 자신에게 혼란을 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뭔가 아름다운 것을 내놓으면 당신은 삶에서 10배로 더 큰 아름다움을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게 법칙입니다.

당신은 이제 공원 안에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도시가 잘 숨 쉴 수 있게 합니다. 그러니 긴장을 풀고 침착하십시오.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직관과 영감에 의지하십시오. 그것에 그냥 따르십시오!

말이 나온 김에, 예술가가 되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결정으로 인해 이로움을 얻는 아주 많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큰 성공을 빕니다.

사랑합니다!


                                                                                             뉴욕에서, 오노요코



#오초량#기차여행# 파초 #적산가옥# 오노요코#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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