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침공? 나는 반대일세!
400년 뒤에 보자
인간의 절망에서 시작된 우주적 파문
줄거리
중국 문화 대혁명의 광풍 속, 천문학자 예원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아버지가 대중의 폭력 속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본다.
그 순간, 그녀는 인간 사회 전체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이후 그녀는 비밀 군사시설 ‘홍안 기지’에서 은밀히 우주로 신호를 보내던 중,
불안정한 세 개의 태양 아래 끊임없는 멸망과 재건을 반복하는 외계 문명 ‘삼체’와 접촉하게 된다.
예원제는 삼체에서 날아온 "대답하지 말라"는 경고를 가볍게 무시하고 “지구로 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를 받은 삼체 문명은 지구 정복을 목표로 항해를 시작한다.
지구에서는 그들의 침공을 도와주는 비밀 조직까지 생겨나고,
이들과 삼체 문명의 계획 아래 과학자들은 실험이 모두 실패하고 물리 법칙이 무너지는 기묘한 현상을 겪으며 좌절한다.
"너희는 벌레다!"라는 메시지를 인류에게 보내고 지구로 향하고 있는 삼체 문명.
그들은 400년 뒤면 지구에 도착한다.
흥미롭지만 불편한 지점
삼체의 기술적 상상력은 뛰어나지만, 그때그때 어려운 과학적 개념들이 친절한 설명 없이 툭툭 등장해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런 과학 이론은 단순한 분위기 연출이 아니라 소설 서사의 핵심 장치로 사용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하지 못하면 흐름이 갑자기 멈춰버린다.
물론 나도 여러 번 멈췄다..
예를 들어, 양성자를 11차원으로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지구 물리학을 교란한다와 같은 설정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지?”라는 느낌만을 남긴다.
디테일한 이론은 삼체의 세계관 몰입도를 위해 필요한 장치이지만 줄거리를 따라가다 갑자기 난이도 99로 점프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그것도 매우 여러 번.
세계관의 장엄함과는 별개로, 과학의 장벽은 분명 삼체 1권의 약점 중 하나다.
주인공 예원제의 살인도 납득 불가하다.
예원제가 외계 문명을 지구로 부르는 선택도 충격적이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을 직접 죽이는 장면은 독자로서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녀가 가진 절망은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 세상 전체가 보여준 비인간성, 그녀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폭력들..
하지만 그 절망이 “인류 전체는 구제 불능이며, 외계 문명만이 구원자”라는 신념으로 비약하는 지점은 냉정히 보아 광신에 가깝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의 행동이 개연성 부족이라는 점도 삼체 1권의 큰 심리적 장벽이다.
외계 문명은 과연 적(敵)일까?
소설이 던지는 궁극의 질문, 그리고 나의 반대 의견
외계 침공? 나는 반대일세!
작가 류츠신은 이렇게 말한다.
“우주에서 외계 문명은 누구든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는 기술이 발전하면 감정과 도덕은 생존 경쟁에서 사라지고, 문명은 ‘살아남기 위한 알고리즘’만 남는다고 주장한다.
냉혹하고, 날카롭고, 압도적인 철학이다.
하지만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본 인간의 모습은 그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1. 고도 기술은 더 많은 여유를 낳고, 여유는 도덕을 만든다
인류는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폭력의 시대에서 멀어졌다.
잉여가 생기면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가졌고, 서로를 파괴하는 대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왔다.
기술은 감정을 제거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더 섬세하게 느끼게 하는 도구였다.
나는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 있다면 그들의 철학적 사유도 그와 비례해서 성장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수준은 감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경지에 있을 거라 기대한다.
2. 복잡한 문명은 협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류츠신의 말대로 진화의 목적이 오직 생존만이라면 문명은 단세포 생물처럼 단순해지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문명은 점점 더 복잡해졌고, 다양해졌고, 서로 얽혔다. 결정적으로 서로 협력했다.
협력은 생존의 반대가 아니라 가장 수준 높고 고급스러운 생존 전략이다.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이에 무지할리 없다.
3. 힘이 생기면 잔혹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그러워진다
이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강한 문명은 타인을 지배하는 대신 타인을 포용하는 법을 배워야만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더 강해질수록 우리는 더 넓은 관용을 배웠다.
그것은 생존의 여유가 만들어낸 인류 문명의 아름다운 역설이다.
나는 고도 문명일수록 그 복잡한 관용의 철학을 더 깊이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외계 문명과의 조우는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이다.
이미 수많은 영화와 소설이 이 이야기를 다양하게 변주했지만, 그럼에도 [삼체]의 스케일과 철학은 충분히 압도적이다.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러나 위에 말했듯이 1권에는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몇 가지 약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점은 내가 2,3권을 읽을지 말지 주저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넷플릭스 시리즈로 나머지를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워낙 변화무쌍한 그림들이 머릿속에 펼쳐졌었는데, 이를 시즌1 영상으로 확인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다행이다.
어쩌면 삼체라는 세계는 활자와 영상 모두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