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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서 서평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의 순간,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by 채PD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은 죽음’인가.


이반 일리치의 삶은 남들이 보기에는 꽤 성공적인 인생처럼 보인다.

판사로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아내와 아이들과도 크게 파국 없이 평범한 가정을 꾸렸다.

젊은 시절에는 다른 남자들처럼 성공을 위해 부단히 애쓰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는 장면에서 그는 지금까지 이뤘거나 이루고 싶어 했던 모든 것들이 실은 ‘행복’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한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생생한 행복의 기억들은 살면서 점점 흐릿해졌고, 인생의 최고 순간이라 믿었던 장면들은 이제 돌아보니 모두 하찮은 것처럼 느껴진다.


기함할 노릇이었다.
유쾌한 인생의 모든 최고의 순간들을
이제 와서 돌아보니 전혀 다르게 여겨졌다.
9장


문득, 예전에 가장 좋아하는 친구 중 한 명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젊을 때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쌓아야 하는 이유는,

언젠가 죽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때 과거를 돌아보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기억이

정말로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_ 나의 영국인 친구 Finn


정말 멋진 말이고, 나 역시 깊이 동의한다.

그렇다면 행복한 추억이란 대체 무엇일까?


당연히 넓은 평수의 아파트도 아니고, 값비싼 외제차 따위도 아니다.

더구나 그런 것을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은 더욱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이 웃고 울었던 순간들.

아마 그런 기억들이야말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행복의 재료’ 일 것이다.


물론 그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달려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혹시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때때로 뒤돌아볼 필요가 분명 있다.


질병 서사의 위엄


치료 불가한 병에 걸린 환자들은 대체로 네 가지 감정을 거친다고 한다.

의심, 분노, 좌절, 수용.


처음에는 ‘설마 내가?’라며 의심하고, 그다음에는 ‘왜 하필 나냐?’라는 분노를 지나,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깊은 좌절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이반 일리치의 질병 서사는 이 전 과정을 매우 집약적이고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그는 병마와 싸우며 동시에 희망과 좌절, 분노와 포기, 그리고 용서와 체념 사이를 오가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어낸다.

소설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가 겪는 질병 서사의 굴곡과 그가 회상하는 인생의 희로애락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작가 톨스토이만큼 죽음이라는 주제에 깊이 천착한 작가도 드물다고 한다.

그는 두 돌 무렵 어머니를 잃고, 아홉 살에는 아버지를, 열 살에는 할머니를 여의었다. 가장 의지했던 고모마저 그가 열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19세기라고 해도, 이렇게 어린 나이에 연달아 죽음을 겪는 일은 흔치 않았을 것이다.

그가 죽음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했는지, 다른 작품들까지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나의 아버지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나는 마지막 순간, 서로에게 짧게 "미안하다"라는 말만 주고받았다. 그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효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마음에 미안하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아마도 나에게 충분한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느끼셨을 것이다.

비록 말로 다 풀어놓지는 않았지만, 그 한마디에 서로의 마음이 다 담겨 있었다고 기억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만들어 주는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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