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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베트 Apr 02. 2020

화장지

[Quaranta Storie]  화장지 사태로 읽는 미국인들의 마음

요즘 미국 인터넷은 여기저기 휴지 농담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미국에 허리케인이나 폭설 소식이 올 때마다 화장지는 빵, 우유와 함께 가장 먼저 품절되는 품목 중 하나다. 덩달아 여기에 일본과 일부 아시아 국가에 마스크 원료와 화장지 원료가 겹친다는 잘못된 루머가 돌면서 화장지 품절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퍼지고 있다. 그나마 한국의 화장지 시장은 아직까진 평화로운 모양이다.


한국에서 50년 이상을 살았으며, 2년 전까지 미국에서 살아본 적도,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지만 나는 이 화장지를 사재기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물론 화장지 자체는 생존에 필수적인 품목이 아니다.대체제를 찾으려면 못 찾는 것도 아니다. 휴지 없다고 죽지 않는다는 거다. 인류가 연보라빛이나 하늘색 꽃무늬가 새겨진 보들보들한 3겹 향수 화장지로 밑을 닦은 지는, 글쎄, 잘 해야 3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아니 그냥 일반 공중화장실에 비치된 수준의 싸구려 화장지 같은 걸 대한민국에서 보편적으로 쓰기 시작한 게 언제 같은가? 기억에 의존해 추정하건데 90% 이상의 국민들이 화장지를 쓰기 시작한 지 채 50년도 되지 않았다.


60년대에 태어난 내 세대 중 상당수는 재래식 변소에 쪼그려 앉아 괄약근에 힘을 주면서 뻣뻣한 종이를 손에 쥐고 보들보들해질 때까지 구기던 기억을 갖고 있다. 때로는 그럴 종이조차 없어서 변소 옆에 무성히 자라는 호박잎을 사용한 이야기가 이따금 무용담처럼 전해져온다.


"나 땐 말야, 어? 클리넥스 그런 게 어딨어? 야.. 그거 알아 변소? 어? 몰라? 푸세식, 몰라? 햐... 서울 촌놈하곤. 그 푸세식 변소 옆엔 말야, 어? 꼭 호박을 심는단 말야. 호박 그게 참, 비료를 엄청 먹어대거든.  그래가지고 하... 장마철 지나면 변소 옆은 완전 호박 정글이야, 정글. 우리 땐 말야, 신문지는 고급 화장지였다, 이거야. 그러니 신문도 없고 종이도 없는데, 어떡해. 열매는 먹고, 이파리는 뒤 닦고..."


이렇듯 가족들을 걱정하고 소비계획을 세우는 4-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어린 시절에는 화장지가 생활필수품이 아니었다.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화장지 따위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생존력 강한 세대였다. 


반면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현대문명의 풍요로움을 누려온 미국인들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삶의 질은 전쟁과 기아를 상대적으로 최근까지 겪어온 우리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이 없어도 죽지 않는 화장지에 집착하는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나는 또 한 가지 매우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인들의 독립적 기질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인들 상당수는 사회와 정부에게 맡길 일은 맡기되 의지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일차적인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일반 가정에서도 비상식량이나 발전기, 비상식수 등을 갖추는 건 흔한 일이다. 아무리 총기사고가 빈번해도 총기규제가 어려운 게 꼭 총기협회의 로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사무직 직장인, 교사 같은 평범한 시민들조차 자기 휴지, 아니 자기 가정은 자기가 일차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라, '설마 내게 무슨 일이 생기겠어?' 랄지, '설마 휴지 유통이 중단되겠어?'라는 식의 편안한 생각은 여간해서 하지 않는 것 같다. 언제나 미소를 짓고 여유 있는 태도로 움직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언제 무슨 일이 닥칠 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호세 사라마구의 '눈먼 자의 도시'라는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사방천지에 배설물이 널려 밟고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어떻게 묘사됐는지 기억할 것이다. 설사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둔부에 배설물을 묻히고 살아가는 삶은 그 누구도 상상하고 싶지 않다. 미국인에게나 한국인에게나, 화장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문명화'된 상태를 유지시켜줄 최소한의 물품 중 하나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임계점은 다르다. 한국인들은 굶어죽을 때부터, 미국인들은 문명인의 모습을 갖추지 못할 때부터 위기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은 9.11테러를 제외하면 한 번도 북미대륙 본토로 침입당한 적이 없다. 대공황시대는 겪었지만 아일랜드 대기근 같은 건 겪은 적이 없다.


그러니 미국인들이 태평하게 화장지 걱정이나 하고 있는 걸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미국인들에겐 최악의 상황이라는 개념이 우리와 매우 다른 것뿐이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론 마스크 외엔 별다른 물자 수급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 마스크마저도 민간에 위임하고 정부에서 가만히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큰 문제는 없었을 지 모른다.


북한 미사일 위기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외신기자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리만큼 한국인들은 이럴 때 침착하다. 고층아파트와 고층빌딩이 가득한 대도시에서 한 가구가 차지하는 면적은 자동차 한 대가 차지하는 공간정도밖에 안 된다. 수도와 전기만 끊겨도 당장 생지옥이 될 것이다. 화장지는 커녕 당장 야외 화장실로 쓸 구덩이를 팔  자리조차 확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태평해 보인다.  


이게 과연 건국이래 끊임없이 거듭된 위기에 내성이 생겨서인지, 정부나 사회 시스템을 신뢰해서인지, 아니면 설마 최악의 상황이 오진 않으리라 생각하는 순진하고 어린애 같은 태도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다. 


처음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매장'을 시작해 시체를 감추기 시작했다. 옛 문명 중에서 이따금 예외가 있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산업혁명시대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분변을 감추고 처리하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분변을 감추고 처리하는 건 현대문명의 특징이라고 해도 좋다. 감추지 못하는 걸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건, 결국 한국인들이 아직 현대문명에 서구인들만큼 강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건 아닐까. 


사족)
6.25 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 책 '얼어붙은 시간(Frozen Hours)'에서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던 미군이 '온 천지에 가득한 똥냄새'를 증언한다. 70년대말 월남한 한 북한출신 인사는 '뿌리깊은 나무'라는 진보잡지에 '아까운 남한의 똥'이라는 환경론적 관점의 글을 쓴 적이 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 변두리 길가엔 이따금 누구 것인지 모를 똥들이 굴러다녔다. 한국인들의 똥 놈담을 통역해주면 미국인 남편은 질색한다. 결국 한국인들은 아직 똥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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