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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베트 Feb 06. 2022

난민과 구원자

[시네마뒷북] The White Countess 


나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 무슨 기준으로 결정하는지 모르겠다. 이따금 편집이나 스크립트 같은 게 진짜 뜨억할 정도로 별로인 영화도  많긴 하지만, 그런 건 여기서 논외로 한다. 일단 그런 건 최대한 피해다니려고 노력하니 말이다. 


영화도 예술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이상, 영화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영화를 보고 내가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할 수 있다. 2005년 제임스 아이보리와 랄프 파인즈가 만든 이 영화 The White Countess도 바로 남들의 평가와 무관하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할 당시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의 일종이다. 그러나 단순히 어느 특정 시대 특정 지역의 단면을 무작위로 잘라서 보여주는 스케치만은 아니다. 각 인물들은 스토리 속에서 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당시 주요 국가들의 모습을 '은유'한다. 눈이 멀어 디테일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지만 여전히 꿈을 좇는 미국인이나, 백작가문의 품위를 지키고 싶지만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창녀와 다를 게 없이 다른 이들의 자선에 생존을 의지해야만 하는 구 러시아 왕족들처럼. 


이 영화는 2005년 개봉 당시 흥행에 참패했다고 한다. 당시 유행하던 할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해 오락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금세기 들어 사람들은 영화에서 더 이상 스토리텔링 자체의 매력을 찾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오락성이나 단순하되 강렬한 메시지를 추구하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해 현대인들은 세로토닌보다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주는 영화를 원한다. 


하지만 오락성이라는 걸 어떻게 하나로 정의한단 말인가? 사람마다 다 각각 추구하는 오락성이 다르다. 박력 있는 스펙터클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러브스토리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하고, 또 누구는 퀴즈 푸는 걸 더 즐긴다. 


나처럼 퀴즈 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주인공들의 행동이 무얼 은유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분석하는 것도 일종의 퀴즈다. 중일전쟁 당시 세계정세의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염두에 두고 보기만 해도 각 주인공들의 운명과 선택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특히나 이번 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국지적 분쟁이 끊이지 않으며 난민이 속출하며 정책결정자들이 난민을 개인으로 보는 것이 옳은지 집단으로 보는 것이 옳은지 결정하기 힘들 지금에도 의미 있는 이야기다. 


시나리오 작가가 일본출신(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사실도 매우 흥미롭고 또 한편으로는 부럽다. 자기 '진영'이 집단 '피해자' 의식을 갖고 있을 때는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반대 진영의 입장, 혹은 '객관적' 입장에서 무언가 서술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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