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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베트 Feb 06. 2022

감정과 기억의 아이덴티티

[시네마뒷북] Pain and Glory 


모든 예술가들에게는 다 그런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특히나 글을 쓰고 읽는 행위는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감정을 내보이고 심지어 그 감정을 사고 판다는 점에서 매매춘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것을 읽었다. 이 영화가 그런 영화라는 얘기가 아니다. 


작가들을 모욕하려는 것도 매매춘을 합리화하려는 것도 아니다. 종교나 윤리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단순히 현상만 생각해보면 매매춘은 가장 오래 되고 원초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매매춘이나 도박, 스포츠, 심지어 마약까지 따지고 보면 뇌에서 일어나는 긍정적 화학작용을 편법으로 일어나게 해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섹스나 포르노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온갖 불편과 때로는 부당을 감수하고 연애해서 섹스 하고 후손을 보아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면서 성취감을 느끼기에 인생은 너무 복잡하고 세상은 너무 정신없이 돌아간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저 섹스를 통해 얻을 도파민의 분출만을 신속하게 구매하려 한다. 


주인공은 어린 소년일 때 가난한 어머니의 카타콤 부엌을 수리해준 청년의 그림 모델이 되어준다. 그 지역의 카타콤은 본래 태양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하 동굴 같은 곳이다. 그리고 햇빛 아래 오래 앉아 있었던 탓에 일사병에 걸렸다. 


어린 소년의 일사병은 정말 일어났을까, 아니면 환상이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드러내서는 안 될 욕망을 숨기고 살도록 훈련된다. 소년의 작고 예쁜 모습이 태양 아래 밝혀져서는 안 됐던 건지도 모른다.) 


건장하고 잘생긴 젊은 문맹 청년은 장차 소년의 자기애와 동성애를 구축하는데 영향을 끼친 걸까? (소년은 청년의 모델이 되던 그 날 어쩌면 타인에게 밝은 빛 아래 자신을 보이는 상황이 얼마나 에로틱할 수 있는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왜 그렇게 신학교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을까? (신학교라고 하면 비카톨릭신자들은 이따금 소아성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학교에서 소년은 어째서 배우고 싶은 걸 배우는 대신 노래를 해야만 했을까? (소년은 분명 이성 혹은 합리성 혹은 로고스와 관련된 것을 배우고 싶어했지만, 그저 자신의 아름다움 -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 을 드러내는데 헌신해야만 했다.)  


어째서 어머니는 청년의 그림을 전해주지 않고 내다버렸을까? (어머니는 어쩌면 그 드로잉의 에로틱함을 느끼고 매우 당황했었는지도 모른다.) 


시나리오가 오리지널인 작품이지만, 어쩐지 소설이 원작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영화에 분명 명시적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감춰져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가진 도구는 이따금 그렇게 언어보다 더 막강하다. 


작가란 어떻게 보면 이름을 감추고 모습만 보이는 핍쇼걸 같은 직업이다. 관객들에게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조절하면서 그들을 애태웠다가 만족시켰다가 하는 그런 핍쇼걸. 핍쇼걸들이 결코 자신의 진짜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드러내지 않기에 더 유혹적인 것처럼, 작가의 사회적 아이덴티티는 거짓이어도 괜찮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작가의 언어를 매개체나 촉매로 이용해, 작가가 느꼈던 바로 그 절망과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뇌에서 재현하는 것이지 사실이나 팩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핍쇼걸을 보고 성적인 충동이나 만족을 느끼는 것과 흡사하다. 


수십 년 후 유명 영화감독이 된 소년은 이런저런 병을 앓으며 극심한 통증에 빠진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헤로인까지 시험해봤던 작가는 자기 자신을 오브제로 한 연극각본을 익명으로 내보이면서 마침내 슬럼프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리 익명이어도 그를 알아본 사람은 있었다. 이름은 감출 수 있어도 감독의 사랑과 절망 같은 기억은 고스란히 고유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익명을 사용해 글을 쓰는 건, 자기 이야기가 아닌 척 하면서 소설을 쓰는 건, 자신을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름이 아닌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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