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뒷북] District 9
오늘 본 영화 District 9. 스포일러 주의.
PC주의자들이 언뜻 보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보일 수도 있는데, 조금만 눈을 열고 보면 상당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다.
뇌가 아무리 '청순'해도 외계인들이 난민이고,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한 이들의 난민촌 District 9은 분명 아파트하이트 시절에 흑인들을 분리했던 District 6라는 건 알 수 있다. 외계인들의 혐오스러운 모습과 기괴한 식생활, 그들의 엽기적이고 반문명적으로 보이는 행태의 묘사가 언뜻 난민이나 유색인종 등의 차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함정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들이 혐오스럽게 보이는 건 그들이 정말로 혐오스러워서가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이 이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 장편영화의 모태가 된 단편영화 Alive처럼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형식을 고수한 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 특히나 CCTV에 찍힌 듯한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큰 역할을 했다. CCTV에는 카메라맨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카메라맨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관객은 카메라맨의 시선이라는 또 하나의 필터를 끼고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막상 외계인 입장에 처하게 되어 그들과 조금씩 교감하게 되면서, 관객은 징그럽고 기괴한 외계인들은 실상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이슬람 난민들이 유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정치적인 올바름에 가슴이 벅차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는 전혀 다른 거다. 시리아 난민들을 사람들이 백안시하는 것은 인류가 근대화라는 이름 하에 암묵적으로 합의한 여러 공동의 가치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외계인들과 지구의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서로 전혀 다르다. 따라서 윤리도 다르고 도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류끼리 이 좁아터진 지구 상에서 살려면 최소한 기본적인 사항들 몇 가지는 합의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세 개의 뇌가 있다고 한다. 삼위일체뇌라고도 한다. 이 영화는 내 세 가지 뇌를 두루 자극했다.
공포나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반응을 일으키는 가장 원시적인 뇌, 흔히 파충류 뇌라 불리는 뇌간은 외계인에게 침범당한 느낌과 토막시체와 징그러운 외계인의 사체에 느끼는 즉각적인 공포에 매우 불쾌했다.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는 아버지와 아들 외계인이나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기를 키우고자 하는 외계인들, 그리고 외톨이가 된 주인공을 보고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뇌피질에서는 외계인과 난민들이 어떻게 다른지, 이 영화가 어째서 위험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고 논증하는 까닭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세 가지 뇌가 두루 바쁜 영화라는 건, 결국 재미있는 영화라는 얘기가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