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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Apr 26. 2023

나는 왜 너를

 


 오랫동안 기억 속에만 있던 너를 보러 나는 마음의 단장을 했다. 구태여 말 한마디, 마음 한 가닥을 다듬었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면 당최 내가 뭘 하는 건지, 얼마나 잘 보이려고 이만큼의 분을 바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동해안을 달리는 와중에도 너는 나지막이 뜨거운 여름이 아니라 추운 겨울이 더 아름다울 거라며, 얼른 너에게 달려가 풍덩 빠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눈이 내린다고 해도 너에게 쌓이는 눈은 없을 테니, 너로 말미암아 녹게 되는 눈은 그저 요동치는 파도가 여전하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네 앞에 도착했을 때, 어디선가 짠내가 강하게 났다. 나는 비릿한 것들을 싫어했는데 네가 그걸 의식한 건지 아니면 우연이었던 건지, 갑자기 불었던 바람이 그 비릿한 모든 걸 삼켰다. 순수하고 청백한 물결. 너의 파도소리는 여전히 고요했다. 파도가 치면 그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고, 다시 바닷물 사이에 갇히면서 생기는 게 거품이라는데, 비릿하지 않은 파도는 거품이 없다. 그건 오랫동안 너로 잠식시키게 만든, 그러니까 느닷없이 바다에 들어가 첨벙거리게 만들고 숨을 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죽어버리는 것과 같았다. 살아숨 쉬는 건 내 의지였으나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너를 받아들인 후엔 마치 내 몸을 너에게 바친 것과 같았으니. 내 모든 걸 씻고 씻겨 고작 무(無)로 만들며 내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거대한 바위가 너에게 깎여가는 걸 보며, 영원할 거라 여겼던 내 마음도 갉아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네 옆에 있으면 언젠가 너를 잃을 수도, 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났다. 너를 그리워하기 위해 떠났다. 멀찍이 떨어져 밀물과 썰물의 시간을 빗대어 네가 나에게 들어오는 시간과 빠져나가는 시간이라 중얼거리며, 네가 생각날 때마다 너를 생각했다. 바람. 그래.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돛을 펴고 바람 부는 대로 너에게 갔다가 다시 바람 부는 대로 너에게 돌아오고 싶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당분간 꼼짝없이 너에게 묶여있는 것도 좋을 거다. 경화수월이라 불리며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처럼 너를 잡을 수 없어도 좋을 거고, 떠나버린 내가 야속해서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거다. 그럼 나는 왜 너를 그리워하는가. '나'는 왜 너를 그리워하고, 나는 '왜' 너를 그리워하고, 나는 왜 '너'를 그리워하며 나는 왜 너를 '그리워'하는가. 그건 단지 너라서. 이유 없이 내리던 비가 그치질 않아서. 오히려 범람이 되어 내 몸을 뒤덮였음에도 그 파도가 단지 너라서.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너를 보면 괜히 더 살고 싶어져서. 그래야 그리워할 수 있을테니까. 죽게 되면 너와 함께겠지만, 너를 그리워할 수는 없을 테니까.


너에게 물었던 안부는 되려 나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나의 바다는 안녕한지. 그리고 너도 나를 그리워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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