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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미세뷰 May 31. 2024

수박 덕분에 뜨거웠던(?) 신혼 밤

아니 땐 굴뚝에 급체하랴.

나는 요 며칠 동안 속이 더부룩했다. 서비스 기획자랍시고 코딩 공부를 깔짝거린 탓이다.


본질적으로는 심연의 불안감을 건드려서겠지만.


코딩이 어렵다는 걸 알고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롭게 덤볐다. 세상에 안 어려운 일이 어딨 다고.

그러나 역시 문과쟁이에겐 어려운 건 당연지사였다. 이미 예정된 결론이었지만, 한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짜증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개발자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 이유를 넌지시 알았다면 몸으로 터득한 셈이다.


머리에 스팀 받는 일이 허다했다. 열심히 코드를 짜고 실행시키고, 무탈하게 지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사소한 에러 메시지에 공든 탑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알아먹지 못하는 기계 언어를 치면서도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오류에 속이 쓰렸다.


똑똑, 남편이 문을 두드렸다.


"왜?"

"수박 먹고 해."


똑똑, 문 앞에 그가 서있다. 항상 과일을 챙겨주는 개발자 남편, 그가 권유해서 시작한 공부였다.  나도 새로운 걸 배우길 좋아한다며 흔쾌히 받아들인 일이 이리도 스트레스가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코딩 늦깎이 아내를 위해 그는 과일을 준비했다. 접시 위에 소박하게 담아준 수박을 먹었다. 참 시원했다. 입 안이 상쾌해지고 머릿 속도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시야가 흐려지는 걸 느꼈지만, 일시적일 거라 치부했다.


물론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때만 해도 정상은 아니었다. 머리는 뜨거웠고, 계속 뜨는 에러 메시지에 복창이 터질 노릇이었다.


헉.

꾸역꾸역 수박을 밀어 넣던 순간 눈이 멀 것 같았다. 갑자기 관자놀이가 띵 하게 저려왔다. 이내 칼로 쑤시듯 측두엽이 날카롭게 아파왔다.


주변의 모든 빛과 소리가 날 공격했다. 눈을 뜨면 형광등의 빛이 유리 날의 파편처럼 찔렀고, 소리는 극대화돼서 들렸다. 고통이 극대화된 와중 난 눈과 귀를 두 손으로 막고 바닥에서 굴렀다.


샤워를 끝내고 온 남편을 작업실로 급하게 불렀다. 그는 놀란 듯 진통제와 뜨거운 물을 갖다 주었고, 난 연신 괜찮다고 했다.


"좀 나가 있어 줘."


약을 갖다 준 걸로 그의 책무는 다했다 여겼다. 난 현실적인 성향이라 옆에 누가 있어도 날 도와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타이레놀, 탁센을 아무리 먹어도 울렁거리는 느낌과 측두옆이 찢어지는 고통은 어찌할 수 없었다.


좀 나아졌지만, 죽을 것 같은 두통은 지속됐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안방 침대에 들어갔다. 아파서 몸이 너무 오그라들었다. 남편이 체한 것 같다며, 꽈악, 엄지랑 검지 중앙 쪽을 눌렀다. 그 밖에 소화 잘 되게 한다는 곳은 다 눌렀다. 따스한 살 온도가 그대로 전해졌다.


"너무 굳었는데?"


남편도 정성을 다해 굳은 곳을 마사지해줬다. 오므린 어깨와 날개죽지구석구석 온정의 손길이 닿았다. 뜨거워야 할 신혼이지만 이런 식의 로맨틱하지 않은 스킨십이라니. 미안했다. 나도 나지만 새벽 3시에 이 난리에 동참한 남편한테 미안함이 지속될 무렵, 참을 수 없는 울렁거림이 확 솟구쳤다.


"잠깐만, 나 화장실 좀."


꾸역꾸역 잘 참아왔다만 메슥거림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남편 덕분에 잘 게워낼 수(?) 있었다.


아마 내 체질에 찬 음식이 맞지 않은 듯했고, 늦은 저녁 아니 거의 새벽에 수박만 단독으로 식도에 보낸 탓에 위가 화들짝 놀란 모양이었다.


속을 비운 후, 침대에 앉았다. 난 다시 주물러 달라고 등판을 들이댔고, 침대에 걸쳐 앉았다. 당연하단 듯 남편은 내 목과 등을 주물렀다.


하나 웬걸.


단단하게 굳어 있던 곳이 잘 풀어졌는지, 남편이 놀라 했다.


"오, 많이 풀어졌다."


그는 유레카를 외치는 사람처럼 문제해결을 해서 한결 밝아진 톤이었다. 확실히 체해서 몸이 굳었던 것이 맞았다.


편두통은 덤이었을 뿐.


진짜 원인은 급체였던 것이다.


"젊은 사람도 급체하면 위험해."


그는 위험한 상황이었음을 상기시켰다.


남편은 참 뭐랄까, 다정했다.


나와는 참 다른 성품이었다. 한밤 중, 그것도 새벽에 너무 힘들고 아파서 기댔는데 짜증 난 기색 하나 없이 받아준 게 너무 고마웠다.


정성스레 굳은 곳을 제 몸처럼 살뜰히 돌 봐준 것도, 날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투도, 모든 것에서 따스한 온정을 느꼈다.


수박 덕분에 '결혼'의 진가를 확인한 셈이다. 막상 체했을 땐 정말 괴로웠지만, 뜨거운(?) 신혼에 일조해 준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ps. 우리 싸우지 말고,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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