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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토끼 Aug 06. 2022

<비상선언> ★★☆

성공적인 이륙을 무색게 하는 위태로운 비행, 그리고 가파른 추락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난 2~3년 동안은 블록버스터급 한국 영화를 만나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도 한해를 통틀어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를 제외하면 한국 영화 중에서는 이렇다 할 대작을 찾아볼 수가 없었죠. 과거엔 여름 성수기 시즌에 수많은 대작들이 줄지어 개봉했던 것을 생각하면 영화팬으로서 굉장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올여름은 다릅니다. <외계+인 1부>를 시작으로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그리고 <헌트>까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한국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을 하면서 다시 심해지고 있는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떼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죠. 특히나 <비상선언>은 네 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고 있는 만큼 더욱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영화의 초반부는 기대에 걸맞게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면 우선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비추며 그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비행기에 탑승하는지를 최대한 간결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한 이후부터는 비행기 테러로 인해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비행기 내부와 테러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는 지상의 상황들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죠. 일반적으로 비행기 테러라는 소재를 사용한 영화에서는 폭발물이나 총 같은 무기를 활용한 테러 상황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비상선언>은 바이러스를 활용한 생화학 테러라는 소재를 활용했다는 점도 나름 참신했고 빠른 속도로 비행기가 추락하는 장면에서의 360º 촬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제로 비행기에 함께 탑승한 듯한 체험감을 선사합니다.



연기력으로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작품답게 배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아주 탄탄합니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등의 스타 배우들은 물론이고 김소진, 박해준 등 여러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조연 배우들도 안정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죠. 무엇보다도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임시완 배우는 생각보다 빠른 퇴장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선한 인상과는 정반대로 속 모습은 사이코패스 그 자체인 광기 어린 테러범 연기를 아주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누구 하나 부족함 없는 연기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캐릭터들은 다른 재난 영화 속 캐릭터들과 비교해 특별한 점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평범했고 그렇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가 않았습니다. 또한 '재혁'과 '현수' 사이에 있었던 과거 이야기 등 캐릭터들의 서사도 극 중 상황 속에 흥미롭게 녹여냈다고 보기 힘들었고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분명 영화의 초반부는 테러범을 중심으로 재난 영화다운 팽팽한 긴장감을 잘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아쉬움을 토로한 부분은 바로 중·후반부입니다. 중반부부터는 바이러스와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탑승객들과 필사적으로 백신을 찾아내려는 지상의 인물들을 그려내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안전하게 착륙하도록 둘 것인지, 아니면 바이러스가 더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의 착륙을 불허할 것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 상황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깊이 있게 잘 다뤄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펼쳐지는 상황들이 시종일관 급박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초반부만큼의 긴장감을 안겨주기는커녕 도가 지나칠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극을 끌고 가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여 오히려 몰입도와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테러범 '진석'이 다녔던 제약회사가 테러와 연루되어있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상황들도 너무 평범하고 싱겁게 그려내고 있고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과도한 신파 역시 눈물 대신 한숨이 나오게 만들고 있죠.



가히 역대급이라 불러도 될 만큼 굉장한 라인업의 배우들을 데리고 만든 항공 재난 영화라는 점에서 <비상선언>은 시작부터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간 셈이나 다름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실제로도 출발은 상당히 눈부셨죠. 하지만 성공적인 이륙에도 불구하고 위태로운 비행이 지속되더니 끝내 안정적인 착륙 대신 가파른 추락을 하고만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해 여름 대작 네 편중 아직 개봉하지 않은 <헌트>를 제외한 나머지 세 편은 모두 보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평할만한 작품은 <한산: 용의 출현>뿐이네요. <헌트>가 승률 5할은 맞춰줄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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