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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한 숲길 Mar 07. 2024

애잔한 내 어머니

더는 미안해하지 마요. 엄마.

  평소에는 이른 시간에 주무시는 친정 엄마가 어쩐 일로 밤 10시에 전화를 하셨다. 처음 있는 일이다. 무슨 일이시냐고 여쭈었더니 뜬금 없이 당뇨약 얘기를 꺼내신다. 방송을 보다가 혹하여 당뇨에 좋다는 약을 주문했는데 가격이 398,000원이며 그 약이 오늘 도착했다는 얘기. 내용에 비해 장황하고 긴 설명이었다. 의논도 없이 덜컥 사면 어떡하냐고 아버지께 엄청 구박받았으며 다른 당뇨약 광고를 오늘 보셨는데 훨씬 싸고 좋아보여서 괜히 속은 느낌이 든다고 하셨다. 마음이 불안하고 속상하여 딸한테 하소연하려고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40대 중반에 당뇨와 친구가 된 이후, 엄마는 당뇨를 살살 달래면서 그럭저럭 잘 지내오셨다. 처음 당뇨 판정을 받았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지만  음식을 절제하면서 잘 지내오셨고 그 점을 자랑스러워하셨었다. 하지만 칠순 중반 나이를 지나면서 마음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먹고 싶은것도 못 먹냐, 그냥 마음껏 먹다가 때 돼서 가면 그만이지."

옆에서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귀를 닫고 하고 싶은대로 하셨다. 그동안 참느라 못 드셨던 음식들을 한풀이 하듯 마구 드셨다. 그러니 당 수치가 미친듯이 춤추는 건 당연한 일, 한번 리듬이 깨지니 절제는 안되고 진찰가서 의사의 걱정을 들으면 불안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약 이름을 불러달라고 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온라인 가격만 부풀려 놓고 저렴하게 산듯한 착각을 유도하는 제품이었다. 사기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사기에 가까운 마케팅에 당하신 상황. 


   "엄마 걱정마세요. 제가 내일 집에 가서 확인해보고 반품처리할게요."

일단은 엄마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드린후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래, 고맙고 미안하다. 미안해." 

엄마는 여러번 미안하다고 하셨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미안한 일이 생기면 미안하다는 표현을 반복하시는데 나는 그게 짠하고 마음 아프다. 세월 따라 체구도 작아지셨는데 마음까지 위축되신듯하여 마음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럴 때면 젊은 시절 엄마의 억척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의 엄마도 슬프고 지금의 엄마도 애잔하다. 엄마라는 존재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저 꽃 같이 아름답고 화사하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욕심일 뿐이다. 

  "엄마, 미안해 하지 마요. 그럴수도 있지 뭘. 걱정 말고 꿀잠 주무세요."

  "그래, 우리 딸도 잘자. 사랑해."

수화기 너머 엄마 손을 가만히 잡아드리고 싶다.


  #친정엄마 #당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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