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5분짜리 영상 하나를 4시간 내내 돌려본 적이 있었다. 내가 무대 위에서 공연했던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나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방 안에 틀어박혀 4시간 내내 5분짜리 영상을 돌려봤다. 그 짧은 영상을 수십 번도 더 반복 재생해 댄 이유를, 나는 아직도 분명히 기억한다. 떨쳐낼 수 없는 공허함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5분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5분을 가득 채우기 위해 하루하루 공들여 아주 큰 나만의 탑을 쌓아 올렸었다.
그렇게 끊은 결승점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내 손으로 내가 만든 탑을 다 부숴버린 기분이었다. 사라진 함성소리, 화려한 조명, 꿈꿔왔던 모든 순간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제 영화촬영을 끝마쳤다. 여태껏 참여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고 시나리오였었다. 그래서 잘 해내고 싶었다. 연출부, 그리고 상대배우님과 함께 모여 대본리딩도 가장 많이 했었다. 함께 호흡했던 순간이 겹겹이 쌓인 만큼, 캐스팅된 순간부터 촬영이 끝마칠 때까지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밖에 없었다.‘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꼭 욕심을 부른다. 그 욕심에 촬영 전 날까지 스스로를 들들 볶아대며 늦은 시간까지 혼자 연습실에서 수없이 연습하곤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역량이 여기까지 밖에 되지 않는구나, 스스로를 의심했던 순간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끝나면 마냥 후련할 줄 알았는데, 나에게 밀려온 건 다시 공허함이다.
이번에 맡게 된캐릭터 ‘수연’은 나 자체였다. 그래서 유난히 애착이 갔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자신의 장애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수연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었다. 큰 수술을 하고 건강을 잃어버리며 하고 싶은 일을 눈앞에 두고도 포기했었던, 그 앞에서 수없이 울었던 내 모습이 자꾸 보였다. 그래서 ‘나’를 버리고 ‘수연’이 되는 일이 어렵지 않았었다.
나는 수연이 자신의 장애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유난히 좋아했다. ‘수연’이 아니라 꼭 내가 ‘나’의 아픔을 고백하는 것만 같아서 그랬을까, 그 장면을 연습할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 감정을 잘 살리고 싶어서 촬영 전부터 일부러 기분을 가라앉혔다. 거울을 보고 나 자신에게 나의 결핍을 고백하며 하염없이 울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촬영을 할 땐 ‘컷’ 소리가 나고도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아직도 수연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길을 걷다가도 눈에 눈물이 고이고, 혼자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찡해진다. 수시로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앉아 애를 먹는다. 언제쯤 수연을 완전히 보내줄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는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분장실에서 분장을 지우는 광대가 세상에서 제일 비참하다고. 나는 지금, 불 꺼진 곳에서 분장을 지우는 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