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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Jul 07. 2023

인간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우리는 무엇을 ‘인간’이라고 정의할까. ‘인간다운 형체’를 갖춘다는 것. 혹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누군가는, ‘살아 숨 쉰다는 것’ 등등을 기준으로 삼아 ‘인간’을 정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운 사고를 하지 못하는 인간’을 보고 우리는, 그를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의 예시를 가져왔다.

지미는 세계 2차 대전에 참가한 유능한 군인이었다. 지금 지미는 머리가 희끗한 백발의 노인이 되어있지만 지미의 기억은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1945년 이후로 남아있지 않다. 기억이 1945년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그렇다. 지미는 심각한 기억력 장애인 ‘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앓고 있다. 지미는 질병에 의해, 기억이 과거에서 멈춰 버린 것은 물론, 자신이 2분 전에 행했던 행위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한다. 즉, 지미는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가도 침착성을 잃고는 복도를 걸어 다닌다거나, 갑자기 화를 벌컥 내는 행위를 한다. 해군에서 근무했을 시절, 특기라고 말했던 자판 치기를 시켜 보았으나, 그 또한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더 이상의 행위를 영위하지 못했다. 의사는 이러한 지미를 보고 사람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지미는 분명, 멀쩡한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명확히 심장이 뛰고 있고, 숨도 쉴 수 있으며 언어도 구사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러나, 지미의 행위를 토대로 보았을 때 뇌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지미는 정말 ‘인간’일까?
 

인간의 정서 및 감정 표현은 경이롭다. 악한 정서를 가진 이가, 상대를 죽일 만큼 큰 파국을 일으킬 수 있으며, 사랑에 빠진 인간이 가슴 시린 음악 한 곡을 순식간에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루리야에 의하면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임을 거듭 언급한다. 따라서 심리학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도, 그러한 감정과 의지, 감수성이 인간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루리야의 주장에 따르면, 지미는 기억, 혹은 뇌의 기능 따위로 구분 지을 수 없는 명백한 인간인 존재였다.

 지미는 정원 가꾸기를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 좁은 공간에서 조차 뇌의 비정상적인 기능으로 인해 곧장 길을 잃곤 했으나 지미의 손에 맡겨진 정원은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한다’는 정서와 ‘안락함’을 느꼈던 집 뒤의 정원처럼 변했다. 지미는, 그곳에서 이전의 불완전함과 달리 예술적, 정서적 관점에서 보아 완전함을 갖추었다. 이어 성당에서 지미를 보았을 때, 지미가 완벽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미는 무릎을 꿇은 채 성스러운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었고, 역시나 그의 뇌 안의 신경계가 일으키는 장애와는 상관없이 키르케고르가 설명한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가 되어 있었다.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그는 실존하는 인간, 그 자체였던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또 다른 무엇인가가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영역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의 산업 혁명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인간만이 가능하다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감정 혹은 정서로 환원시켜야만 할 수 있는 모든 일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오늘도 감정과 정서를 분출한다. 갓난아이가 배가 고파 울음을 터뜨리는 일부터, 고차원적으로는 사랑, 분노, 슬픔과 같은 정서를 선율, 몸짓으로 담아 표현하는 일까지, 그 감정과 정서로 인간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흄이 말하는 주정주의는 그렇게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의사는 오로지, 증명된 논리적인 사실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과학자이다. 그러나, 지미의 사례처럼 주정주의에 담긴 인간의 고유한 정서는 논리적으로 증명된 이성적, 과학적 영역 그 이상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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