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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선 Sep 25. 2021

로웬펠드의 '보는 토끼'와 '만지는 토끼'

세 번째 편지(To. Viktor Lowenfeld)

2021년 9월 26일

독립문공원 앞에서


친애하는 로웬펠드 님


로웬펠드 님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로웬펠드 님이 미술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책을 써 내려간 1947년과 비교해보면 1947년의 한국과 2021년의 한국은 세계 속에서도 손꼽힐 만큼 변화가 많은 나라입니다. 특히 오늘은 딸아이와 홍대 앞에 거닐었는데 발레아쥬(머리 염색방법)를 하고, 화려한 티셔츠, 곳곳에 흐르는 힙한 음악과 고깃집 고기 냄새 등 한꺼번에 정말로 많은 자극이 저를 통과했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호불호 의견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2021년 홍대입구역 스타벅스 앞 횡단보도에서 녹색불을 기다리며 로웬펠드 님의 제1장 <미술을 통한 인간교육의 의미>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시간을 할애해서 당신의 책에 대한 문답을 할 예정이지만 이러한 문답의 끝은 아무런 목적도 뜻하는 바도 없으나 공들인시간의 결과가 0일리는 없다는 생각도 그 짧은 순간 했고요. 2021년 홍대입구역 앞 흔들선 작가의 시도와 1947년 미국에서 집필된 미술을 통한 인간교육의 의미가 모여 나에게 또는 이러한 자료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목적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과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목적으로 남습니다.


참, 저는 로웬펠드 님께 보내는 편지 그 외에 정확한 목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동미술 발달단계를 녹여낸 그림책인데요. 제목은 ‘안녕! 나는 흔들리는 손이야'입니다.

똑바로 선을 못 긋는 '흔들리는 손(남녀노소)'이 '얼굴이 탄 사람(큐레이터)'을 만나 자신의 선을 존중하게 되는 내용

이 그림책의 분량은 1편(4세-8세), 2편(9세-12세)으로 나누어도 60페이지를 넘지 않을 예정인데요. 그 뒤에 당신과 나눈 편지의 내용을 넣어 볼까도 싶고요. 어린이의 그림을 재해석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제 대부분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가이지만 매번 '아동 드로잉'이 함정으로 작용되어 고민스럽기도 하고요. 요즘 유행하는 단어로 '안물 안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면 죄송합니다.


그럼 세 번째 편지의 문 답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제1장 ㅣ 미술을 통한 인간교육의 의미

1. 창의성을 위한 미술의 중요성

2. 미술을 통한 교육에의 접근방법

3. 미술을 통한 사고의 확장


제1장 ㅣ 미술을 통한 인간교육의 의미


흔들선 문:

어린이가 6살쯤부터 20년 정도를 유치원 및 학교에서 보내게 되는데 '20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로웰펠드님이 제1장에서 제게 잔잔한 해소의 기쁨을 주었답니다. "학교교육에서 훌륭하고 창의적인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인류가 구원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다"라는 부분 말입니다.


로웬펠드 답 :

제가 그렇게 말을 했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미술교육 프로그램의 중요 가치는 새로운 이미지와 새로운 철학, 나아가 전반적으로 새로운 구조의 교육체계를 개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잊지 마십시오.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식과 질서를 발견하는 것, 재사 고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관련성을 발견하는 능력은 일반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자질이 아닙니다. 어린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도록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토끼(RABBIT)라는 철자를 적당한 순서로 배열할 수 있다고 해서 토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어린이가 토끼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실제로 토끼를 직접 만져서 털의 감촉을 느끼고, 코가 실룩거리는 것을 관찰하며, 풀을 먹여서 토끼의 습성을 경험해야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토끼'라는 개념과 어린이 자신, 그리고 외부환경과의 상호작용입니다.


흔들선 답:

너무 공감 가는 답변입니다. 제가 얼마 전 만난 드로잉 아티스트 이건용 작가님(1942-)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작가님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오랜 세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학교 수업 중 선생님들이 하는 기타 이야기들이 더 흥미롭고 상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정규과정도 중요하지만 융통성 없이 규칙에만 매몰된 수업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어 보여요.

로웬펠드 님이 책에서 말씀하셨듯, 우리가 배우고 기억한 지식을 자유롭고 융통성 있게 활용하지 못하게 되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억에 남네요.


1. 창의성을 위한 미술의 중요성


흔들선 문:

어떤 어린이도 '비창의적(uncreative)'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라 말씀하셨고 마찬가지로 태어나면서 '창의적(creative)'인 어린이도 없다고 하셨잖아요. 이 문장에 대해 저는 며칠 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구글에서 단어 창의적(creative)가 자주 사용되기 시작한 사용빈도 분석을 따라가 보면 190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단어 자체는 원래 존재했으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한 것은 100여 년이 안 된 단어라는 것이 흥미로웠죠. 그 이전에는 창조(creation)라는 단어가 훨씬 자주 사용되었는데 이는 신(god)과 관련이 있어 보이고요. 아무튼 사용빈도로 100여 년 밖에 안된 이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는 교육, 사회 등 세상 모든 분야에서 언급되었고 오늘날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빈도가 더 급격해진 것 같아요.

저는 로웬펠드 님이 예술과 과학의 여러 연구에서 창의성의 여덟 가지 기본 특성을 끌어낸 것을 여러 번 참고자료로 사용한 바 있습니다. 특히, 창의성이라는 단어 하나만이 아닌 서로 관련된 요소 감수성, 유창성, 융통성, 독창성, 재구성, 추상하는 능력, 종합하는 능력, 조직하는 능력 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것에 흥미를 느낀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창의적에 대한 정의'야 말로 가장 창의성을 잘 표현하는 정의라 생각됩니다.

로웬펠드 님이 생각하는 창의적(creative)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로웬펠드 답:

창의적인 활동에 대해 설명하기 전 창의성의 요소들은 서로 분리된 구성요소가 아니며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창의적(creative) = 감수성(sensitivity)+유창성(fluency)+융통성(fliexibility)+독창성(originality)+재정의(redefine)+추상하는(abstract) 능력+종합하는(synthesize) 능력+조직하는(orginize) 능력

* 8가지 창의적 요소들이 따로 또 같이 연결되는 것이 창의적(creative)의 정의다.


창의적인 활동에서 확인되는 첫 번째 특성은 '감수성'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태도와 느낌에 대한 그리고 생활 경험에 대한 감수성으로 예를 들면 유치원 아이는 털에 대한 촉감을 아주 잘 인식할 수 있으며 5학년 어린이는 도화지 위에 물감을 섞으면서 색에 대한 감수성을 발달시킬 수 있죠. 고등학생은 다듬어 놓은 나뭇결에서 재미있는 재료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고요. 다시 말해 감수성은 주어진 재료나 상황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독특하고 적절한 고도의 인식을 말합니다.


창의적인 활동에서 확인되는 첫 번째 특성은 '유창성'입니다. 유창성을 가진 사람은 하나의 문제에 대해 창의적이고 다양한 해결책과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지요. 이러한 능력은 미취학 어린이가 그린 다양한 형태의 난화에서도 볼 수 있고, 고등학생이 디자인한 탁자 표면의 모자이크에서도 관찰할 수 있어요.


창의적인 활동에서 확인되는 첫 번째 특성은 '융통성'입니다. 융통성 있는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사항들을 계속 발견하고 이용하여 응용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반응을 발전시켜나갑니다. <아빠>라는 작품을 만들고 나서 똑같은 재료를 다시 사용하여 다른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사고를 발달시키죠.


창의적인 활동에서 확인되는 첫 번째 특성은 '독창성'입니다. 미술활동에서 각자의 독특한 반응을 중시해야 하며 다른 이의 참고작품이나 책에 나와 있는 작품들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독창성이야말로 전혀 새롭게 또는 색다르게 반응하는 사고 능력이니까요.


창의적인 활동에서 확인되는 첫 번째 특성은 '재정의' '재구성' 하는 능력입니다. 아이디어를 재정리하고, 대상의 용도와 기능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관점으로 대상을 보는 능력이죠. 새로운 재료에 대한 실험은 새로운 발견을 낳습니다.


이외에 추상하는 능력, 종합하는 능력, 조직하는 능력을 더 말할 수 있습니다. 추상하는 능력은 어떤 문제에 내재한 다양한 요소를 분석하거나 특정한 관계를 찾아내는 능력이고, 종합하는 능력은 각 부분들을 의미 있는 방법으로 종합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조직하고 구성하는 능력은 의미 있는 방법으로 서로 결합시키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면 "원색이란 무엇인가?" "보색을 대비시켜 그려보아라"라고 하는 대신 "슬프게 느껴지는 색은 어떤 색인가? 보라색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좋아하는 색은 어떤 색인가?라고 하는 것이 확산적 사고를 돕습니다.


로웬펠드 답: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미술교육에서 말하는 기본 철학은 흔히 말하는 순수미술(fine art)에서의 기본 철학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미술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창작이 인간 각자에게 미치는 자연스러운 효과지만 순수미술에서 강조하는 것은 완성작품의 미적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교육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창의적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흔들선 답:

로웬펠드 님이 직접 창의적(creative)에 대한 정의를 설명해 주시니 잘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처음 드로잉 안내서를 쓰기 시작할 무렵 스스로 선언문을 작성했었는데요. 지금 로웬펠드 님의 창의적에 대한 정의를 듣고 문득 첫 작업글이 생각이나요.

그 당시는 로웬펠드 님의 책을 만나지 못했는데 비슷한 부분이 보여서 기쁘네요. 읽어봐주십시오.



드로잉 안내서 <의자와 낙서>의 시작과 끝


백 명의 아이가 나무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모두 서로 다른 나무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중 재능이 엿보이는 특별한 나무가 존재하는지 궁금해하고, 실제로 아주 특별해 보이는 나무들도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백 그루의 나무 모두 저마다 개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개성은 재능과는 별개로, 공유하는 대상일 뿐 그 우열을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표현방법이 다채로운 현대미술 안에서는 개성을 반드시 그림의 주제인 ‘나무’에만 한정하여 찾지 않아도 됩니다. 개성 있는 아이들의 표현은 나무를 에워싼 공기와 빛에서도, 나무 아래 흙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시 나무 토대의 건축물이나 나무를 재료로 한 인테리어 의자로, 나무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에게 소재로, 심지어 그저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취향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모든 분야의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게 완성된 아이들의 개성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모두 흩어져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을 것입니다.


존경과 진심을 담아

흔들리는 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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