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편지(To. Viktor Lowenfeld)
2021년 9월 28일
시청에서
친애하는 로웬펠드 님
어린이들이 외부세계로부터 아무런 간섭 없이도 성장할 수 있다면 그들의 창의적인 작업을 위해서는 어떠한 자극도 필요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이러한 창의적 자신감은 문명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광고와 만화 그리고 교육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분명히 나타난다고 하셨고요.
로웬펠드 님이 1947년 광고와 만화, 그리고 교육 등 '문명세계'라고 표현한 부분이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2021년 오늘날은 유튜브, 메타버스, Ar, Vr, 블록체인, 전기차 등 불과 74년 후 우리는 이렇게 엄청나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최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데 1946년 모습을 간직한 조상님들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사진을 보며 아버님이 자신의 부모님 세대는 너무 배가 고팠다고 하셨어요. 완벽한 차례상이 아니라도 좋으니 떡과 과일, 고기 등을 풍성하게 놓고 절만 하자고 하는 거다 구구절절 설명하셨습니다. 제가 혹여 불편할까 하는 배려였던 것 같아요. 우리는 문명의 홍수뿐만 아니라 먹거리 천국에 살고 있습니다. 창의성과 자신감은 문명의 발전과 반비례일까요? 엄청난 발전은 창의성과 함께 이루어진 것 같은데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은지 창의성 교육에 대한 열의는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모순이 많은 세상은 1947년이나 2021년이나 똑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새 bird'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칠하기 그림책의 새를 접해본 어린이의 63%가 그들 자신이 처음으로 느꼈던 새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새에 대한 그들의 개념을 교재에 제시된 양식과 비슷하게 바꾸었다는 것은 러셀(Russell)과 와그만(Waugman)의 실험 결과로 알 수 있죠.
로웬 펠트님 저는 사실 도식적인 새로 바뀌는 것도 상관없고, 처음 그린 고유한 새가 유지되는 것도 괜찮고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는 의견을 내려고 새들(birds)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2021년까지 만들어진 교재들과 미술교육법 그리고 문명의 발달은 세상의 모든 새들을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식적인 새는 '디자인'에 많이 활용됩니다. 고유한 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미술작품 속 새'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요.
단지, 단 하나의 틀에 갇혀있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 뿐입니다.
제2장 ㅣ 초등교육에서 창의적인 활동의 중요성
1. 틀에 박힌 교재의 영향
2. 어린이의 자기표현
3. 어린이의 자기 적응
4. 미술을 통한 자아 동일화의 중요성
5. 미술교육에서 통합의 의미
흔들선 문:
어린이의 미술은 어른의 미술과 차이가 있고 어린이에게 있어서 미술은 단지 표현의 수단일 뿐이다라고 강조하셨죠. 어린이의 생각은 어른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인데 미술교육의 어려움과 장애가 어른의 생각과 자신을 표현하는 어린이의 방법 사이의 모순 때문에 발생한다는 말에 공감됩니다.
로웬펠드 답:
제가 느낌표! 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42p에 한 번 사용했습니다.
어린이의 정신을 지배하려 들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가! 하고요. 모방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므로 결코 모방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어린이들이 칠하기 그림책의 개를 칠할 때 선 안쪽으로 칠하도록 교사들이 유도하곤 합니다. 그런데 칠하기 그림책의 개를 칠할 때 보다 자신이 직접 정성스레 그린 개의 모양 안을 칠할 때 색이 튀어나오지 않게 주의를 더 많이 기울인다는 사실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로웬펠드 답:
난화기의 아이에게 사실적으로 그리도록 요구한다면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들 자신을 표현하게 될 것이며, 그런 방법은 그들을 억압할 뿐 아니라 성장에도 장애가 될 것입니다.
로웬펠드 답:
어린이의 기준으로는 자기표현이고 어른의 기준은 모방인 것입니다!!
이를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흔들선 답:
로웬펠드 님이!! 를 자꾸 사용하시는군요. 정말 잘 기억하겠습니다.
의자와 낙서 책에 나오는 사진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아이의 시점으로 휴대전화에 마구 찍어놓은 사진들인데 구도가 무척 재미있어서 책 맨 끝에 실어두었어요. 그걸 알아채는 어른들은 잘 없을 것입니다. 설명해 두지 않았으니까요. 이스터에그(숨겨둔 재미) 같은 것입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저는 아이의 시점으로 앉아보았습니다. 싱크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장면이 보였고, 김치가 들어있는 반찬통이 정말 거대해 보였습니다. 그 외에 거실에 있는 작은 나무를 아마존 크기만 하게 찍어두었더군요.
어린이의 기준은 자기가 본 것에 대한 자기표현이었다면, 제가(어른) 본 기준은 싱크대, 김치통, 수도꼭지, 거실 화분 이렇게 제 지식과 삶이 묻어나는 모방의 시점인 거죠. 이제 속이 좀 시원하시죠?
흔들선 문:
'자아 동일화'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들어야 문 답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로웬 펠트 답: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 낯설게 여기는 것들과 동일화할 수 있는 능력은 이념과 인종, 그리고 문화 전통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결합시켜 평화스러운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아 동일화'는 '협동'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웃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아야 창의적 표현의 본질적인 요소를 충족시킨다는 말입니다.
1) 가르침에서의 자아 동일화
로웬 펠트 답:
교사는 자신과 자신의 욕구보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욕구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교사 자신이 어린이의 신체적, 심리적 욕구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요.
흔들선 답:
말로 하면 굉장히 쉬운 말 같지만 정말 저런 선생님이 되긴 어려워요. 어린이의 신체적, 심리적 욕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쌓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자꾸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이런 단어를 성찰이라 표현할 수 있겠군요.
2) 미술 경험과 자아 동일화
로웬 펠트 답:
"그래 넌 그릴 수 있어" "얼마나 예쁘게 그렸나 보자"라 말하는 것은 그 어린이의 무능함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뿐입니다.
"꽃을 꺾는 모습을 그릴 수 있겠니?" "너는 꽃을 어떻게 꺾니? 그 모습을 내게 그려서 보여줄 수 있겠니?"라고 말을 하며 자신의 경험과 먼저 동일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3) 미술매체와의 자아 동일화
4) 제작기법과 제작 순서와의 자아 동일화
로웬 펠트 답:
미술매체는 표현하고자 하는 어린이의 욕구에 알맞아야 합니다. 미술매체와 미술표현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되어야 하며, 제작 순서와 재료는 어떤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흔들선 답:
로웬펠드 님 드디어 제가 로웬펠드 님의 의견에 조금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하게 될 것 같습니다.
로웬펠드 님은 화가이기도 한데 왜 재료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엄격한 의견을 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글 쓰는 작가이자 큐레이터, 그리고 그림을 좀 다뤄본 학부시절을 보낸 사람인데요. 저는 연령과 큰 상관없이 매체에는 좀 더 자유롭게 열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6세 이하의 어린이가 수채물감을 다루기 어려워 사람을 표현할 때 움직임 분간이 어렵게 되고 적응하지 못한 재료 때문에 표현력의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뛰어가는 밑그림을 멋지게 그렸지만 다루기 어려운 수채물감을 사용해서 엉망이 되어버린 그림을 보고 어린이가 울게 될 경우(성인의 경우도 공들인 밑그림이 채색으로 망쳤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수채물감이 다 마른 후 더 진한 색 크래용으로 덧칠할 경우 작업의 밀도와 완성도가 훨씬 좋아지기도 하니까요. 기법을 몰라서 작업이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 '사고의 폭'을 넓힐 기회가 더 많아집니다. 특히 예술은 실패했을 때가 가장 성공할 수 있는 타이밍이잖습니까?
로웬 펠트 답:
저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가 자신이 하고자 원했던 것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 자아 동일화를 위한 그의 욕구가 크게 좌절됩니다. 수채화물감은 난화기 어린이의 욕구를 크게 방행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수채화도 구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만 형태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것에는 방해 요소입니다.
흔들선 답:
로웬 펠트님은 미술재료와 그것을 다루는 솜씨는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 올바른 시기에 사용되어 자아 동일화하려는 어린이의 욕구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지점은 양보할 수가 없네요. 재료는 모든 경우의 수를 막론하고 열어두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5) 감상과 자아 동일화
6) 사회 적응을 위한 자아 동일화
로웬펠드 답:
좁힐 수 없는 견해 차이는 그대로 둡시다. 다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감상자의 수준과 표현 주제, 표현방법은 감상과 자아 동일화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을 생각나게 하는지, 왜 그것이 좋은지, 왜 좋아하지 않는가 등 지각적이고 정서적이며 지적인 관계로 감상의 출발점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표현 주제 또한 참여자가 전혀 관심이 없는 주제를 선택한다면 그것과 동일화될 수 없습니다. 표현방법도 나무를 그릴 때 나무의 성질을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보이도록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나무에 페인트 칠을 하거나 나무를 마치 대리석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흔들선 답:
오늘은 의견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1947년과 2021년의 차이가 더 많이 보였으면 합니다.
이는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로웬펠드 님과 제가 의견 차이가 많을수록 이 작업이 훨씬 의미 깊은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나면 미술교육에 저명한 생존 교육자님을 한 번 찾아뵐 예정입니다.
그때 이 문답 여정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테지요.
어떤 분이 적합한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제가 오늘 몹시 피곤합니다.
이것으로 편지 문답을 마치겠습니다.
존경과 진심을 담아
흔들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