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도 Jan 08. 2022

1.9% | PhD 리젝 이메일에 답하기

또 기회를 줄 수 있냐고 물어봐도 되는지 몰랐지 난 

어떤 대학들은 지원할 때, 만약 phd가 안되면 석사과정에 관심이 있는지 사전에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나야 뭐 일단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게 1순위이기 때문에 석사를 지원할 것인지, 박사를 지원할 것인지 치열하게 속으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무 쓸데없는 고민이었지만 그래도 깨달은 건 일단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속으로 아무리 재봐야 답은 절대 안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다시 석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냥 단순히 "석사 2개"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매몰되서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 고민을 한 덩어리 했는데 역시나 이것도 찾아보면 답이 나왔다. 그 석사에서 내가 뭘 얻을 수 있나, 이걸 찾아보니 분명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질문을 본질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나는 "박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연히 석사 다음에 박사를 해야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꼭 그래도 되지 않는다는 걸 미리 유학 가신 분을 통해 알게 되었고, 나도 내 목표는 박사가 아니라 이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석사를 또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또 내가 감히 박사 지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에 대해서도 또 눈물 뚝뚝..이며 고민했는데 이것도 자소서 쓰다 보면 답이 나온다. 쓰다 보니 내가 생각보다 뭘 많이 해서 충분히 써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미리 유학 가신 분을 alumni 프로필에서 보고, 지인 수소문해서 연락을 드렸더니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줌 미팅을 해주시겠다고 해서 이와 관련해서 물어봤다. 그분께서 충분히 지원 가능하다고, 입시는 정말 모른다고 말해주셔서 힘이 나기도 했다. 어쨌든 혼자 머릿속으로 고민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분명 낫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자동으로 석사를 고려해주지 않는 대학 입학처에 직접 나 너네 대학에 너무 가고 싶은데, 혹시 박사과정에 떨어지면 석사로 고려해주기도 하느냐라고 물어봤다. 그런 경우가 확실히 있지만, 장담할 수 없다는 답이 왔다. 입학처가 말해줄 수 있는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 군데만 물어보고 지레짐작해서 다른 학교도 그러겠지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다른 phd 지원학교에도 다 물어봤다. 


그러다 신선한 답변을 받았다. 자동으로 입학위원회가 고려해주기도 하고, 지원자가 고려해달라고 요청하면 고려해주기도 한다는 말이었다.


진짜 한국의 아주 경직적인 입시만 겪어본 나로서는 한 전형에 지원하면, 다른 전형으로의 이동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또 지원자가 요청한다고 뭘 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예 상상을 못 해봤기 때문에 굉장히 놀랐다. 아.. 원하면 부탁하면 되는구나? 단순한 논리이지만 전혀 생각도 못해봤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12월 말 처음으로 phd 리젝 메일이 왔다. 사실 이곳은 지원 마감 하루 전에 안 곳이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은 곳인데, 또 쓰다 보니 너무 가고 싶어져 버린 곳이었다. 그래서 석사로 고려해줄 수 있냐는 요청 메일을 보냈다. 또 리젝 이메일에 대해서 답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글에 다 쳐보고.. 최대한 공손하게 보냈다. 


나를 고려해줘서 고맙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너네 학교에서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너네 학교에서 나는 꼭 공부하고 싶다. 왜냐면 너네 학교는 ~~~ 인데 나는 정말 ~~~ 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너희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 따라서, 만약 가능하다면, 나를 석사에 고려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 자는 동안 두 개의 답이 와 있었다. 첫 번째 메일은 우리 학교에 계속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너의 이메일을 포워드 해서 물어본 후 답을 주겠다는 답장, 두 번째 메일은 입학위원회에 확인받았으니 새로운 SOP를 2월까지 써서 보내라는 답장. 


신기했다. 그냥 똑똑 두드린 것뿐인데 이렇게 두 번째 찬스가 생겼다는 게 신기하다. 정말 계속 깨닫는 건 이건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어놓은 한계는 어쩌면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계속 생각한다. 


지원서를 쓰면서 정말 많이 배운다. 내가 해왔던 것들이 한 번에 쫙 정리가 되고, 내 머릿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분명해진다. 사소하게는 학교 홈페이지를 가입절차를 해보면서,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이 중으로 보안을 하는 것을 보고 와 로그인 보안을 이렇게도 하는구나 알게 되고, 아 이 학교는 홈페이지를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깨닫고, 와 이 학교가 바로 이 논문의 커미티가 있는 학교였구나 하고 깨닫고, 또 장학금은 이 학교는 이런 식으로 모집하네. 아니 심지어 장학금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어디 출신인지(유대교인지, 아랍인지)까지 묻는구나. 기본 신상을 물어보는 란에 성별이 단순히 여/남이 아니라 여/남/others를 물어보거나, 태어났을 때의 성별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질문이라던지. 하여튼 이 과정에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아서 재미있다. 


휴.. 할일도 많으면서 안하고 그냥 합격 통지만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쉬어도 되나 싶을정도로 뭘 안하고 있다. 담주부터는 열심히 해보리라 하고 주말을 넘기려는 수작을 부린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