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을 꿈꾸는 전업주부
고대하고 고대하던 운전면허를 딴지 두달 정도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 등하원도 하고, 교회도 다녀오고 하며 어느정도 자신감이 쌓여가고 있었다. 수요일 저녁 외출을 위해 자신감으로 무장한체 주차장을 나서는데,
어라... 톽! 덜거럭커캬다규ㅓㄷ 하는 소리가 ...
나의 오만함에 자동차 보조석 전, 후문이 주차장 기둥에 갈리고 있었다. 뒤에 앉아있던 첫째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때부터 맨탈이 흔들리더니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하면서 몇번 더 긁어주고 빠져 나오다가 뒤에 있던 벽 비스무리한 턱을 보지 못하고 쿵 하고 범퍼가 부딪혔다. 첫째는 기어이 울고 말았다. 우는 아이를 달래랴 차 상태 보랴... 멘탈이 바사삭, 심장이 쿵쾅쿵쾅 ... 차문이 다 찌그러졌고 범퍼는 갈렸고.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기둥 안부서지고 다친 사람없으면 된거라고, 집에 다시 들어가 안정을 취하라신다... 외출을 취소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휴 쌩돈이 날라갈 것 생각하니 왜이리 속이 미식거리는지. 남편은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는데 왜 나는 훌훌 털리지 않는걸까. 초보인데 사고 날 수 있는 건데, 사람 안다친거만으로 다행인건데 말이다.
설거지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알바라도 뛰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구멍난 돈을 빨리 메꿔야할 것 같은 불편한 마음... 곰곰히 생각해봤다. 분명 그동안 사고는 남편이 훨씬 많이 냈는데, 수리비가 나와도 그동안 남편이 낸 수리비 보단 적을 텐데 이상하게도 남편의 얼굴을 볼 면목이 서지 않았다.
얼마전 지인이 운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됬을때 나처럼 골목에서 차를 긁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자신은 남편한테 당당하게 고개 들고 “차 좀 긁었어” 그랬다고 한다. 그랬더니 남편이 “미안한 구색이 하나 없이 너무 당당한거 아니냐” 그랬단다. 지인은 “당신도 사고 그동안 냈는데, 난 처음 차 좀 긁은건데 뭐가 그렇게 미안해해야 하는 일이야?” 그랬단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미안하고 죄 지은 마음이 들었을까. 왜 알바를 당장 구해서 날라간 쌩돈을 채워넣어야하나 생각했을까. 그 마음의 근원은 바로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이었다. 뭔가 나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 듯한 찝찝한 기분이랄까.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가져오는 돈을 날려먹은 것 같은 죄책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을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일 특성상 내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또 육아하면서 일을 다시 시작하기 어려워서 무직인건데 ... 내가 낸 사고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한다는 강박이 나를 사로잡았다.
처음 운전면허를 취득했을 때, 나에게 주어진 권리가 생기는 만큼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도 커질 것에 대해 생각했었다. 내가 그 책임을 져야하는데 그 책임의 형태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몰라 사실 약간 늘 부담스럽고 불안하기도 했었다. 바로 그 부담과 불안의 실체가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내 마음 밑바닥에 자리해 있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에 대한 바람은 경제적인 부분도 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편의 사례로 생계를 꾸리면서 부족하게 생각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적은 별로 없었다. 물론 넉넉한 형편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사례로 미래를 계획하는 것에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공급하여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가정으로써 우리는 주어진 재정에 매일 자족하며 살고자 노력한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경제적인 독립을 꿈꾸는 걸까. 그건 어쩌면 너무 단순하다. 바로 나의 ‘자아 실현’을 위해서이다. 나의 자아실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포함된다. 남편의 사례로 우리 가정의 생계를 꾸리면서 가족의 식비, 공과금, 보험 등 가족들을 위한 재정 외에 나의 필요를 위한 부분도 있어야한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그걸 하지 못했다. 남편 옷은 사면서 내 옷은 사지 못했고, 남편이 헤어샵을 10번 가면 나는 한 두번 갈까 말까였다. 화장품은 커녕 로션도 아이들 로션을 발랐다.
그렇게 내꺼 안 사고, 내꺼 아껴쓰면서 절약하는 마음 깊은 이면에는 그런식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에 일조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의 필요를 채우면 채울수록 나의 장바구니 목록은 점점 비워졌다. 물론 남편은 오늘 아침에도 나를 불러서는 당근마켓에서 예쁜 화장대가 새것 같은게 있는데 필요하지 않냐고 사주겠다고 했다. 난 단박에 거절했다. 결혼 후 한번도 화장대를 가저본적 없지만 ‘차 사고 낸거 수리비 날렸는데 그걸 어떻게 사...’ 하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진짜 감사하게 서울시에서 ‘청년 수당’ 이라는 것을 받았다. 한 달에 50만원씩 6개월간 취업을 위한 자기계발과 주거, 식비를 지원해주는 취지의 제도였다. 지인은 이 취업수당을 고대로 가정의 생활비로 사용했지만, 나는 드디어 내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쓰게 되었기에 나만을 위해 써보자 계획했다. 그래서 운전면허학원비, 시험응시비, 그림책심리지도사 과정 2급, 1급, 성경학교 수강비, 도서구매 등등 나의 필요를 꽉꽉 채워 지출했다.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돈을 사용할 때는 늘 목적이 있다. 그래서 돈을 쓰기 위해 목적을 생각하다 보니, 내가 진짜 하고 싶은게 뭘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하나씩 이루어갈 수 있었다. 이런 경험하고 나니 더욱 경제적 독립을 꿈꾸게 되는 것 같다. 계속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내 성격대로 자동차사고가 나도 떳떳하게 수리비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독립을 하고 싶다. 올 해는 그 기반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 시작은 가장 먼저 나 스스로 온전히 서는 것에서 부터 출발할 예정이다. 첫째가 곧 초등학생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얼마나 기대하고 설레하는지 ... 나 또한 올 해 문예창작과에 편입학하게 되었다.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에 박차를 가하고 싶다. 글쓰기의 여정이 나를 스스로 온전히 서게 하고, 성장하게 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