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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 Jun 08. 2023

거북목 교정기를 차고 앉아서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겨두고 친구들과 2박 3일 오사카 여행을 떠났다. 결혼 전에는 평생을 세계를 누비며 살 것 같더니, 결혼 후 정 반대의 삶을 살다가 난생처음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게된 것이다. 어찌나 설레던지. 출국날 새벽까지 설레는 마음에 잠들지 못하다가 겨우 1시간 선잠을 자고 공항버스를 타러가는 길에 가슴이 심각하게 콩닥거렸다. 이게 잠을 못 잔 부작용인지, 10년만에 떠나는 여행에 설레여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오사카에 도착해서 종일 2만 5천보 이상을 걷고 내 다리가 내 다리처럼 느껴지지 않는 첫 날을 보내고 깨닫았다. 10년 전 내 몸이 아니구나. 그때의 체력이 아니구나. 10년 전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역마살이 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쉬지 않고 움직이며 에너지 넘치던 그때의 내가 더 이상 아니었다. 발이 터질 것 같아도 하루 종일 걸으며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는 것이 지치지 않던 내가 10분 이상 걸으면 숨을 헉헉 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는 모습을 발견했다. 


둘째날은 교토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익히 알고 있었다. 교토 여행에서는 엄청나게 걸어야한다는 걸. 그래도 자신만만했다. 남들 다 하는 여행인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왠걸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나는 훨씬 더 지쳤고 힘들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 파스모 교통카드를 쓸 수 없고 구글맵까지 켤 수 없어서 길지는 않았지만 길까지 헤메는 바람에 더 힘들었다. 교토는 아름다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씁쓸했다. 


셋째날 커피 수다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 씁쓸한 마음의 원인이 뭘까 생각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건 나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간 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여행을 즐겁게 느낄 수 없을 만큼 저질 체력으로 변해있었다. 누가 그랬다. 젊을 땐 돈과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돈과 시간이 있어도 건강하지 못해 여행을 못한다고.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우리 딸들 다 키워 놓으면 유럽 여행가려고 계모임도 시작했는데 건강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나이 37에 일본 여행도 힘든데 어떻게 나이 들어서 유럽여행을 갈려고 했는지. 르부르 박물관도 다시 가서 하루종일 찬찬히 작품들을 관람해야하는데, 그 때 못갔던 오르세 박물관과 런던에서 못간 대영 박물관에 가게 될 날 만 손꼽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 저질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뼈져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20대의 나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처참하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나의 체력도 관절도 기억력도 집중력도 모두 그때와 같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동안 나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는 것도. 이대로 나이들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몇일 그렇게 운동 하고 나니 확실히 몸이 개운하고 자신감도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그랬듯이 변수가 발생했다. 아이들이 고열에 시달려 병수발하면서 텐션이 확 떨어졌다. 의욕이 확 사라지면서 먹기만 했다. 근데 마음이 어찌나 찝찝한지. 


오늘 아이들 열이 다 떨어져 일상에 한 발짝 가까워지면서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보상심리로 그저 습관대로 몸이 가는대로 편하게 시간들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떨어진 텐션을 잡아 끌어올릴 것인가. 하루 종일 이 두 생각 사이에서 씨름했다. 이도 저도 아닌 채 지칠 대로 지친 하루를 거의 마무리할 즘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오사카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는데 그 날의 감정들이 다시 확 느껴졌다. 사진 속의 나는 더더욱 나를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사진마다 보이는 두개의 턱과 꾸겨진 뱃살, 그리고 거북목. 10년만의 여행에서 남겨진 사진들이 이런것이라니 넘나 씁쓸한 것이다. 


서글픔이 밀려올 때 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앉았다. 뭐가 문제인걸까. 다시 돌아갈 수 는 있는 건가.  경계를 넘어선 내 뱃살들과 근육을 잃어 늘어난 팔뚝살들을 외면했던 나를 직면했다. 굽어버린 등과 목을 바로 세우고 허리를 곧추세워 앉으려 애를 쓰니 숨도 잘 안 쉬어졌다. 굽어지고 틀어진 내 몸을 다시 균형있는 몸으로 바꾸면서 나의 삶을 더욱 규모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확 바뀔 것을 기대하지 말자는 생각도 든다. 10년동안 방치한 내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한 두달안에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기억하며 천천히 차근차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고 한다. 


근데 참 이상하게 그 일의 시작이 거의 일년을 방치한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면서 부터라니. 글은 언제나 나에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다. 거북목 교정기를 차고 앉아서 쓰고 있는 내내 느껴진 이 불편함이 사라지는 그날 까지 계속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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