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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Jan 18. 2021

내인생의 황금기

추억

"예전에 말이야 ~

그때는 진짜 잘 나갔었어."


'예전에 잘 나간 게 뭐가 그리 대단한가, 지금 잘 나가야 좋은 거지.' 라며 심드렁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 문득 내게도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는지 찾아보고 싶어 졌다.


인자하신 부모님 밑에서 첫째로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없지만, 엄마 말씀에 의하면 가르쳐 준 적도 없는 한글을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읽어대서 엄청 공부를 잘할 줄 알았단다. 푸흐흡!!


황금기를 생각해야 하는데 암흑기가 먼저 떠오른다. 학창 시절이라 불리는 중, 고등학교 6년을 내리 울고 다녔다. 중학교 3년은 왕따 아닌 왕따처럼 보내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이상한 담임선생님(예의를 차려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을 만났다. 전학 갈 수 없냐며 일 년 내내 울고 다녔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잠시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왔으나 고3, 그 인간을 다시 만났다. 가장 중요한 시간을 폭싹 망해버렸다. 신의 저주가 내렸다고 생각할 만큼 나의 학창 시절의 추억은 기억조차 하기 싫다.





내 인생의 황금기.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은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수십 장씩 쓰고 있을 때 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했던 아르바이트가 그냥 직업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매개체로 경제활동을 하니 괜찮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른 사회에 합류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늘 머릿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왠지 회사를 가야 진짜 어른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하던 학원의 원장님이 입주 아파트 상가에 작은 공간 하나를 더 마련하시고는 나에게 그쪽으로 가라고 하신다. 사원에서 월급 원장으로 승진을 한 격이었다. 회사를 가려던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1년 정도만 도와드리고 나와야겠다고 했는데 6개월 만에 월급 원장이 아니라 진짜 원장이 되어버렸다.


일찍이 내 사업을 한 덕에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가졌다. 인수받을 당시 대출을 받았지만 한참 혈기왕성한 20대,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다.  음악회, 공연 관람 등 문화생활 즐기는 것이 취미였기에 주말마다 열심히 공연장을 쫓아다녔다.

일 년에 한두 번 비행기를 타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지금에 비하면 정말 화려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비단 놀고먹는데만 젊음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테크닉은 기본이고,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방통대 교육학과에 편입을 했다. 말로만 듣던 주경야독을 경험해 봤다. 수업은 물론, 학우들과 스터디까지 병행하면서 장학금도 받아봤다. 학교의 특성상 재교육을 위한 만학도들이  많았기에 20대 중반의 나는 싱그러운 젊음을 뽐내며 선배 같은 학우들 사이에서 싹싹한 막내 역할을 해 냈다.


아이들하고만 있어서 생각의 폭이 좁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내가  어른들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배우러 가는 일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과 관련된 각종 세미나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시내의 어학원 새벽반에 들어가 여느 직장인처럼 출근 전에 공부하고 일과를 시작하는 생활도 해봤다. 어쩌면 그때가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졸업을 하니 또 뭔가 허전하다.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붙여줘도 입학을 고민해야 했을 것 같았던 대학원 입시는 낙방을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혼자서 조용하게 레슨만 받던 바이올린을 들고 호기롭게 취미 오케스트라단에 입단을 하며 나의 20대를 열정 넘치게 보냈다.




결혼을 하니 모든 것이 중단되어 버렸다. 공연 티켓 한 장이 아이의 한 달 분유값이 되어 버리니 선뜻 갈 수가 없었다. 설사 갈 수 있다고 해도 평일 내내 엄마한테 아이를 맡겨 놨는데 주말까지 맡겨놓고 내 자유를 누릴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 시절 남편은 하숙생이었다.)  시간적, 물질적 자원을 오롯이 나에게만 투자할 수 있었던 그 옛날이 내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32살 때까지 사람이 없으면 혼자 살겠노라 마음먹었으나 32살 봄에 결혼을 했다.) 이렇게 꽁꽁 묶여서 내 생활을 저당 잡혀있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30대는 20대의 싱글라이프를 그리워하며 속상해했다.


40대가 중반이 된 지금,  더 이상의 속상함은 없다.  이렇게 글로 적어보니 화려했던 지난날의 내 젊음이 소중하고, 여태 별 고생 모르고 산 내 인생에 감사함이 더해질 뿐이다.


두 번째 사춘기도 겪고 있는데 두 번째 황금기를 넘보면 욕심일까? 지금보다 생활이 조금 더 여유로웠으면 좋겠고,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주변도 돌아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도 가져보리라 다짐해 본다.

왕년의 금송아지가 아니라 앞으로 가질 미래의 금송아지를 위해 단단한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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