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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Jan 19. 2021

있는 그대로의 너희들을 인정하기로 했다.

일상의 더하기 빼기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다. 아빠 곰, 엄마곰, 아기곰!

엄마 곰은 성질 급하고, 아빠 곰은 느긋하다.

아기 곰은 느긋하다 못해 느려 터졌다. 어떤 상황이

그려지겠는가?


신혼 초, 남편은 아침에 잠에서 깨더니 늦었다고 하면서도 느긋하게 할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보통 늦었다고 하면 허둥지둥 준비를 할 텐데 내 눈엔 평상시랑 별 다른 게 없어 보였다. 늦었다면서 왜 이리 느긋하냐 물었더니 '어차피 늦었는데 뭐!'라는 말로 기함하게 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말이 되냐며 따져 묻고 싶었지만 늦었으니 일단 빨리 내보내는 게 급 선무였다.  그 뒤로도 나와 남편의 다른 관점으로 내겐 이해 안 되는 일이, 남편에겐 별거 아닌 게 되는 이견 차이를 보였다. 서로 30년을 넘게 모르던 사람이 만나서 고작 몇 달 같이 산 것뿐이니 다를 수 있다고 나 자신을 달랬다. 큰소리가 나가도 골백번도 더 나갔을 상황이지만 싸우기 싫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 후 아침이면 남편을 깨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커가면서 무섭도록 제 아빠의 성격이 나오는 것이었다. 한 술 더 떠서 애는 느긋하다 못해 느려 터지기까지 했다. 그동안 남편에게 못 했던 말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인지 나는 애를 무섭게 잡기 시작했다.


"엄마 바쁜 거 안 보여?  그렇게 느려가지고, 바쁜 세상에 너는 네 밥이라도 제대로 찾아 먹을 수 있겠니? 누가 다 너 할 때까지 마냥 기다려 준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제대로 모를 7살 때부터 아이는 엄마한테 느려 터졌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다.

남편은 그런 내게 아이한테 왜 자꾸 그런 말을 해서 프레임을 속에 자신을 가두게 만드냐며 못마땅해했다.

내 눈엔 야무지지도 않고, 누가 뭐라고 하면 말도 못 하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게 뻔한 아이가 혹여나 남에게 얕잡아 보이지나 않을지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갈수록 아이의 행동은 나를 더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말 안 들려서 그러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2~3번 불러야 대답을 하고, 뭘 하라고 시켜 놓으면 딴 거 하느라 잊어버리기 일쑤고, 무슨 일을 하나 말하려면 하나에서 열까지 장황하게 다 늘어놓으니 진짜 미치고 팔딱 뛰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못마땅한 거 투성인 아이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뒤집기, 걷기, 말하기 등등 다른 애들은 다 빨리, 아니 제 때에 하는데 너는 남들보다 늦어도 한참을 늦게 한 아이니까, 뭐 하나 빠른 게 없었던 아이니까 그래! 기다려 줄게! ‘라고 하다가도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진다.

어떻게 같이 낳은 자식인데 유전가가 남편에게 몰빵인지, 혹시 둘째를 낳으면 그 아이는 나랑 좀 맞는 구석이 있을지,  있지도 않는 둘째까지 거들먹거리며 나와 너무 다른 아이를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났다.


크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차지 않았다. 열 살 후반쯤의 어느 날, 아이가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듣지 않겠다는 투쟁인지,  분노에 찬 얼굴로 나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네가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라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랬더니 아이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을 기세다. 지금 들어가면 한 발자국도 못 나올 줄 알라며 아이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어댔다. 그래도 아직은 엄마 말이 무서운지 들어가다가 멈짓하는 아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천성이 느린 아이,

내가 화내고 잔소리한다고 얼마나 바뀔까?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남보다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닐까?, 평상시 남편의 행동에 불만이 있었는데  그걸 아이가 똑같이 하고 있으니 아이에게 더 화를 내는 건 아닐까?


너는 왜 그 모양 이냐며 비난하는 말투를 이제는 아이가 느낀다고 생각하니 다가올 사춘기가 덜컥 겁이 났다. 아이가 보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그리고 그냥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되뇌었다.


아이한테 모진 말을 하게 되는 원인부터 찾았다.

무엇 때문에 아이의 느린 행동이 거슬리는 것일까?

나는 아이 교육에 욕심이 많은 엄마다. 주변에  보낼만한 학원도 없지만 간다고 한들 애 성향에 그저

들러리 하고 오기 십상이라 생각했다.

‘남들은 그렇게 하는 게 많다는데 너는 엄마가 하라는 것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의 심산이 늘 깔려 있었다. 하루 1~2가지 느긋하게 해야 하는 아이에게 처음부터 많은 걸 요구했나 보다.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멀티가 안 되는 아이에게 융통성까지  발휘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엄마의 기대를 어긋나는 아이는 늘 야단을 맞아야 했다.


“그게 뭐가 많다고 여태 못하고 있었어!”


퇴근하고 오면 따뜻하게 안아주기는 커녕 못해 놓은 문제집을 손에 집어 들고 흔들었다.






과감하게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매일 숙제를 내주던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아이는 기쁨보다 어리둥절함을 표한다. 정말 그래도 되냐는 의심의 눈빛이다.

내가 아이한테 모진 말을 하지 않으려면 그것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는 아이, 고작 10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완벽하게 공부를 끝내 놓으라는 것 자체가 무리한 설정이었다.

왜 그게 안되냐며 아이를 인정하지 않고 내 방식에 끼워 맞추려 했던 게 잘못 이었다고 판단했다.


"엄마가 정해주는 스케줄이 아닌 너만의 스케줄을 만들어 봐! 스스로 하다 보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지 네가 알게 될 거야."


처음엔 아무것도 안 하다가 그다음은 책을 읽고, 또 다음은 수학 문제집 하나를 풀고...

아이는 하나씩 천천히 자기만의 속도를 낸다.

그 모습이 흐뭇하지만은 않았다. 저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다 할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그냥 그대로 인정해 주기로 했으니까...


남편에게도 불만이 있으면 쌓아 놓고 있기보다는 적절한 타이밍을 골라 나의 생각을 전하기로 했다.

나는 불만이 있으면 참고 있다가 한 번에 터트린 것뿐인데  남편은 늘 내가 갑자기  버럭 한다고 한다.

그 말에 또 섭섭하고 화가 나서 본질에서 벗어난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끝없는 언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인정하기로 한 것처럼 남편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탈 없이 순조롭게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너희들의 성향을 인정할 테니 당신들도 네 성향을 인정해 달라! 어느 한쪽만 물러나는 건 폭탄 터지는 시간만 지연시킬 뿐 결국에 터진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면 이상한 거라고,  때때로 나의 다짐을 잊고 화산이 분출할 때도 있지만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나의 생각을 전해 놓았기에

가끔 나의 폭발이 일어나면 부녀가 나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를 쓴다.

나 역시 남편과 아이의 행동을 보고 ‘그려려니’ 하고

지나칠 때가 많으니  우리의 평화협정은 크게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본다.

가화만사성은 그냥 그렇게 상대를 인정하면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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