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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Jan 27. 2021

그녀를 떠나 보냈다.

일상의 더하기 빼기

내 인생에 친구와 절교라는 말은 평생 없을 줄 알았다.  내 의도가 아닌 왕따의 시절에도 끝까지 남아준 친구가 있었기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람 일 장담하는 거 아니라고 했던가? 절교의 대상은 이제 막 친해진 친구도 아닌 언제부터 친구였는지도 모를 그런 막역한 관계의 친구였다.


그 아이는 나 보다 한 학년 위였다.

코 흘리개 시절부터 한동네 살고, 언니라 부르며 따라다녔다.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함께 했으니 부모님들도 동네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며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드나들었다. 물론 아이들이니 어느 날은 티격태격하면서 안 놀겠다고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로 손가락을 걸며 어린 시절을 함께했다.

커서 알았다. 그 아이가 생일이 빠른 관계로 학교에 먼저 갔다는 사실을. 하지만 문제 될 것 없었다.

나에게는 언제나 언니였으니까... 어느 순간 본인이 언니이길 원치 않길래 친구처럼 때론 언니처럼 그렇게 보냈다.




그녀에게 섭섭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 건 우리가

대학생이 되고부터였다. 그녀의 집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며 놀고 있는데 그녀의 엄마가 갑자기 부르신다.


“OO 아~ 00 대학교에서 너를 왜 찾아?”


내막은 그녀가 부모님도 모르게 편입시험을 쳤고, 합격했으니 등록하라는 전화였다.

둘 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둘의 의미는 달랐다.

그녀는 당황이었고, 나는 왠지 모를 섭섭함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축하의 인사만 전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다음 해였던가? 우리는 동네가 아닌 시내에 나가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하는 말은 내일 호주로 어학연수를 간다는 것이었다.

너는 도대체 뭐냐며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게 맞냐며 섭섭함을 표시했다. 내가 만일 그녀의 상황이었다면 편입의 결정, 유학 결정을 하기까지 했을 고민을 털어놨을 것이다.

지금이야 친구라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란 걸 이해했겠지만 그 당시는 나만 바보처럼 미주알고주알 떠벌리며 제일 친한 친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 뒤로도 크고 작은 섭섭함을 내게 안겨 준 그녀에게 어느 날 내 감정을 털어놨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자기는 원래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일방적으로 나 혼자 짝사랑하면서 왜 내게는 사랑을 주지 않냐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대화였다.

내막을 아는 나의 동생들은 내가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더러운 게 정이라고 했던가, 나는 늘 그녀에게 섭섭함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녀를 떠나지 못했다.





 그녀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몇 년 먼저 결혼을 했고, 그녀의 남편은 금융맨으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나의 남편이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던 날, 기쁨 마음에 그녀에게 소식을 알렸다. 당연히 축하한다고 잘 됐다고 할 줄 알았던 그녀가 던진 한마디는

"정직원이야? " 였다. 그러면서 요즘 대기업으로 가도 계약직이 먼저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나에게 축한다는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녀는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늘 자신보다 한 발짝 뒤처진 나를 옆에 두고 본인이 잘났음을 확인하며 거기서 우월감을 느낀다고 밖에 생각 되질 않았다. 대충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났다기보다 서글펐다. 나의 마음이 그녀에게는 하찮은 것이라 생각하니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보였다. 이제 다시는 내게 마음을 주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그리고 두어 달 뒤, 그녀는 남편이 회사에서 보내주는 6개월짜리 연수를 가야 해서 아이들 데리고 잠시 다녀오겠다고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음 주에!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잘 다녀오라는 말이 아닌 '왜 그 말을 나한테 하냐’였다.

너희 남편 잘 나가서 외국 간다는 자랑이 나한테 하고 싶었냐고, 그렇게 네가 나보다 잘났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냐고, 늘 그런 식의 통보를 할 거면 안 해도  된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다시 전화가 올 줄 알았다. 그런 거 아니라고 그냥 본인의 성격이 그래서 그런 거니 오해하지 말라고..

하지만 기다리던 전화는 끝끝내 오지 않았다.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난 30여 년의 짝사랑을 끝내리라 마음먹었다. 그 후 그녀가 다녀와서 내게 전화를 했지만 마음이 떠 버린 나는 그녀의 전화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를 대하는 그녀가 참으로 대단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 마음이 떠나니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었고, 어쩌다 먼저 걸려온 그녀의 전화엔 전처럼 애정이 없으니 우리의 연락은 차츰 멀어져 이제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언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주 가끔 그녀가 생각날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옹졸했던 건 아닌지,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열등의식이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될 때도 있었지만 먼저 연락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관계를 회복한 후 또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 나만 또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관계라는 게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 번의 일화로 틀어지는 건 아니지만 말 한마디로 서로의 친밀도가 극과 극을 달리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친한 친구라 여겼던 그녀를 나 스스로 떠나보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칠지도 모른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런 일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제는 서로 사는 지역도 다르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뒤로 사람에게 마음을 내주는 일은 하지 말자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밑 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다행히 아직까지 나의 순수함(?)을 크게 이용해 먹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소소한 감정들은 대수롭지 않게 처낼 줄 아는 지혜도 지니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날아들지 모르는 돌멩이에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것을 다 빼줄 듯 바보처럼 굴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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