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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탄 Aug 26. 2022

<서울대작전> 레이싱보다 감성 튜닝이 먼저

시점은 1980년대, 감성은 2020년대


문현성 감독의 <서울대작전>은 코미디 케이퍼 무비의 전형을 착실하게 따라간다. 유아인, 고경표, 이규형, 박주현 등 젊은 대세 배우진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비주얼부터 말투까지 왠지 일본 만화에 나올 것만 같다. 어설퍼 보이는 지점, 유치해 보이는 지점, 자연스러운 지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피를 가득 수혈한 영화의 분위기 덕에 '좀 유치하면 어때'라며 눈감아 줄 수 있게 한다.


이들이 움직이며 만드는 이야기도 '선수입장'만 나오지 않았을 뿐 시작부터 끝의 반전까지 모두 예상이 가능하다. 전두환 정권의 비자금 추격이라는 소재는 얼핏 신선해 보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과 인물의 갈등 관계는 클리셰로 가득하다(클리셰라 느낀다는 건 돋보이는 점이 딱히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최소한 그 안에서도 인물의 대사들은 말맛이 느껴지고, 각자의 개성을 살리고자 노력한 감이 있다. 또한 영화는 믹스테이프를 자주 화면에 비추면서 힙합 감성이 물씬 담긴 오디오를 강조하는데, 전반부까지는 이 음악이 상당히 잘 먹힌다.

  


그렇다고 이 모두가 1980년대 시절의 감성 그대로인가 하면 그건 당연히 아니다. 당장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준다면 '우리가 저때 저랬었다고?' 하고 기막혀 웃으실지도 모른다. 옷차림부터 인테리어, 주인공들의 자유분방한 행동까지, 한국의 청년들보다 80년대 미국 감성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88올림픽, 그러니까 장준환 감독의 <1987>에서 1년 후다. 주인공이 외국 물을 먹었고 민주화의 성공 이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보다 대대적인 문화 개방이 이루어졌다 해도,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게서는 당대 사람들에게서 보일법한 특유의 문화적 괴리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배우들의 비주얼이 좋아서일 뿐 아니라, 패션부터가 화려하고 원색적인 아메리칸 힙합 스타일을 노린 탓이다. 이를 담은 화면은 광고나 뮤직비디오 감독이 찍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색감이 넘치며, 일부 옷들은 요즘 입고 돌아다녀도 먹힐 거 같다. 즉 <서울대작전>은 완벽한 레트로의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2020년대 현대인의 관점에서 재생산한 레트로, 즉 '뉴트로' 감성을 영상 한가득 추구한 영화라고 봐야 하겠다. 비슷한 감각을 추구하는 젊은층에게 이 영화의 패션과 비주얼은 어필할 구석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가장 크게 문제삼고 싶은 것은 패션이나 시대 재현도, 캐릭터나 플롯이 아니라 기술적인 완성도다. 우선 이 영화는 코미디를 지향해서인지 몰라도 지략을 활용할 생각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인물의 서사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플롯도 너무 쉽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케이퍼 무비, 그것도 차량이 주요 범죄수단이 되는 영화다. 그렇다면 <이탈리안 잡>처럼 액션이라도 통쾌해야 했는데, 영화가 예고편부터 줄기차게 강조했던 올드카들을 이용한 레이싱이나 카 체이스는 정작 영화 안에서는 거의 돋보이지 못한다.


한편으로 영화가 레이싱만큼이나 자주 보여주는 것은 튜닝 장면인데, 이 점은 <분노의 질주> 초기작이 많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역시나 어설프다. 포니의 차체에 그랜저의 엔진을 결합하는 장면은 당시 차를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도 '굳이?'라고 생각할 만큼 일부러 끼워넣은 것 같아 보인다. 최소한 '저걸 어떻게 만지느냐 보자' 하는 기대감을 형성시키지만, 딱 거기까지다. 마이클 베이의 <앰뷸런스>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화끈함을 보여주어야 했는데, <서울대작전>은 겉멋을 부린 정도에 비해 액션의 내실이 그리 좋지 않다. 오죽하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던 <도쿄 드리프트>조차도 CG와 실제 드리프트를 통해 도심 카체이스를 잘 살려줬었다(솔직히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편이다).


또한 스케일이 엄청나게 큰 영화도 아니고 분위기는 가볍기 그지없는데도 2시간 2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너무 길다. 이 중에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젊음을 만끽하여 축제를 벌이거나 기세등등해하는 모습이 작전을 수행하는 시간만큼이나 많다. 전반부에는 이러한 감성이 통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보여줘야 할 것을 보여주지 못한 채 있는다면 결국 관객들은 이 또한 시간 깎아먹기라고 생각하게 될 공산이 크다.


(*이하 결말 약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러한 불길한 느낌은 88올림픽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후반부에서 결국 현실이 되고 만다. 카체이스의 배경을 퍼레이드로 삼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패착이다. 무엇보다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건 비현실적일 만큼 텅텅 비어 있는 도로다. 지금부터 아무리 30여 년 전의 시대고 퍼레이드를 위해 통제했다지만, 액션을 펼치는 차들 외에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색함의 극치다. 드리프트와 곡예주행, 드론 촬영을 동원해 가며 아무리 '노빠꾸'로 달려 봤자, 텅 빈 도로 위 소수의 차량들만으로는 붐비는 도심을 엉망진창으로 휘저어 놓는 스트리트 레이싱의 쾌감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스트리트 레이싱을 하는 초반부가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 영화의 화면 질감은 지나치게 쨍하고, 카메라가 차량보다 드라이버를 비추는 데 집중하다 보니, 코미디나 캐릭터의 허세를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이게 된다. 속도감이 중시되는 장르치고 차를 너무 조심스럽게 굴린다는 느낌은 덤이다.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갈수록 편집이 잦아지고, 인물들은 점점 연기가 과포화된 개그, 혹은 있어 보이는 대사들을 남발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초반의 혈기왕성한 이미지는 어디 가고 영화는 점점 촌스러워진다. 그리고 2시간 가까이 기다려온 시청자의 갈증을 직선주행으로 풀어주기보다 도리어 무리수를 던져 버림으로서 실망을 안겨 준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들은 카체이스 씬에 있어 혁명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던 <본 시리즈>의 리얼한 카 체이스를 쫓아가기 바빠 보였다. 비록 당대에는 카피캣이란 평을 받았을지 몰라도, 지금 보면 그 나름대로 걸출한 카 체이스 장면들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플롯을 처음 살펴보았을 땐 각진 80년대 차로도 화끈한 액션을 선보였던 애니메이션 <이니셜 D>의 한국형 실사판이 나와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서울대작전>의 결과물은 이전의 한국영화들과 비교해도 한참 못 미친다.


물론 코미디가 가미된 영화라고 하지만, 차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상 기존 영화들보다 퀄리티 높은 영상미를 기대했다. 아무리 올드카라 속도감이 지금과 떨어진다 해도, 카메라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현장감과 쾌감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레퍼런스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포텐셜이 폭발할  있는 지점에서 오히려  많이 갸우뚱하면서 범작의 수준에 머무른다. <서울대작전> 차량을 주요 소재로 삼았음에도 차를 다루는 방식보다는 1980년대 배경을 2020년대의 감성으로 튜닝하는    관심이 있었던  같다. 만약 그렇다면  작품은 이야기도 액션도 아닌, 철저히 분위기에 기대는 킬링타임용 영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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