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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

by 아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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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크게 가지면 조각나도 크게 남는다는 말이 있다.

한때 거창한 꿈을 읊다가 현실을 깨달은 나는 그 조각들이 생혈을 빨아먹는 병마인 것처럼, 혹은 우스꽝스러운 내 꼴을 대변하는 그림자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찌어찌 작은 도돌이표 속에 살게 된 이후에도 부끄러움을 숨겼다. 다 그렇게 사는 거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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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의 희비가 요동칠 때마다 나는 늘 한구석에 파탄난 채 멈춰 있는 조각들을 되돌아보았다. 짓눌리는 것에 대한 저항심인지, 이룰 수도 있었으리라는 미련인지, 아니면 그냥 현실도피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 파편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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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금씩 파편들을 그러모으다 보니, 실패감을 넘어서 내 존재에 대한 결핍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단순한 열망이나 이걸 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린다는 답답함을 넘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유치한 소명 비슷한 의식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하기 직전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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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개월 동안 불확실성이라는 개념이 어느 때보다 삶 곳곳에 깊이 퍼졌다. 하지만 내가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오히려 뚜렷해진 것 같다. 모아둔 양식도 있고, 밥벌이할 힘도 있고,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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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걱정과 설렘, 행운과 감사함을 안고, 이렇게 첫 번째 전환점을 돈다. 분명 나는 또 어느 지점에선가 심하게 좌절할 것이다. 하지만 허투루 현실을 성토하거나 쉽사리 다짐을 바꾸기보다, 그 돌부리를 넘어야 길이 이어진다는 걸 뒷날의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즐거운 고생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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