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실존 인물 비교분석
1. 박해일 배우가 맡은 이순신은 작중 시점으로도 배우와 나이가 비슷하다. 1592년 당시 이순신의 나이는 47세, 개봉을 7일 앞둔 현재 박해일은 45세다. 또한 이순신의 오랜 친구인 서애 류성룡이 남긴 <징비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아했으며, 항상 몸과 마음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고 하는데, 박해일 배우는 아마 이 구절을 토대로 캐스팅되었고 연기한 듯하다. 참고로 <명량>의 시점인 1597년 정유재란 당시의 이순신은 52세,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명량 개봉 당시 이순신을 맡은 최민식 배우의 나이도 52세였다.
2. 김성규 배우가 분한 항왜장 준사의 비중이 <명량>보다 높아졌는데, 그가 사천 해전 때 이순신을 저격했다는 것을 비롯한 영화상의 활약상은 거의 창작 내지 고증오류이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준사는 한산 해전 이후인 안골포 해전에서 투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순신의 밀명을 받고 와키자카 사헤에의 첩보대를 도와주는 척하며 함께 빠져나갔다가 한산 해전 이후 안골포에서 만나 비로소 조선 수군에 정식으로 항왜로 소속되었다... 고 각색한 것이라면 말이 안 되지는 않는다.
3. 한산해전 승리 이후 이어진 이순신의 부산포 포격은 한산 해전 이후 2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4차 출동 때 이루어졌다. 이때 부산진성 안에서 멀찍이에서 화포를 쏴대는 이순신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도도 다카토라 역은 <명량>과 마찬가지로 김명곤 배우가 깜짝 출연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김명곤은 이순신 3부작 중에서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전편과 동일한 역을 맡은 배우가 된 것이다. 도도는 일본사에서 몇 번이나 주군을 바꾼 인물로, 또한 이순신을 만나 몇 번이고 탈탈 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4. 참고로 부산포에서 전선 100여 척을 침몰시킨 데 반해 조선군의 사망자는 고작 6명이 전부인 '압도적인 승리'였지만, 그 6명 중에는 이순신이 가장 아꼈던 장수였던 녹도 만호 정운도 포함된다. 정운은 한산 해전을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정충보국(貞忠保國)이라는 검명을 새긴 것으로도 유명하며 이순신이 그의 영전에 직접 제증참판정운문(祭贈參判鄭運文)이라는 글귀를 남기기도 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안승훈 배우가 연기했던 정운은 초반에 이순신과 잦은 트러블을 빚지만 실제로는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 시절 처음으로 진지를 순시할 때 정운의 진지가 그야말로 칼 같은 군기를 보여준 덕에 시작부터 충의가 매우 두터운 사이였다. 본작에서는 김재영 배우가 연기해 잠깐이지만 그 느낌을 잘 살려 주었다.
5. 공명 배우가 연기한 전라 우수사 이억기는 전란 당시 30세라는 풋풋한 나이였다. 그는 전주 이씨, 즉 조선 왕실의 먼 친척으로 10대 때 무과에 급제한 인재였다. 이순신이 분전했던 녹둔도 전투에서 상관인 북병사 이일이 이순신의 패전죄를 묻자 이억기는 상부에서 이순신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도 일개 수영의 수군절도사를 맡을 정도의 인재였으나, 원균이 말아먹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명량>에서 이순신의 악몽 속에서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6. 안성기 배우가 맡은 광양 현감 어영담은 이순신의 최측근 중 하나이자 인물평에 깐깐한 이순신이 물길 하나는 끝내주게 잘 찾는다고 고평가한 인물이다. 전란 이전부터 오랫동안 수군의 막료로 활동하며 해로를 익혔으며 왜란기 각종 전투에 참가해 군공을 세우는 등 이순신의 군사 참모로 활약했다. 어영담은 작중 시점에서 2년 후인 1594년에 전염병에 걸려 한산 통제영에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접한 이순신은 애통한 마음을 난중일기에 남기기도 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몬스터 주식회사>의 더빙버전에서 제임스 설리번 역으로 유명한 성우 겸 배우 김진태가 열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7. 박훈 배우가 연기한 옥포 만호 이운룡 역시 이순신과 매우 인연이 깊고 아끼던 장수였다. 이순신이 만호로 임관했던 북방의 녹둔도에서부터 함께 싸웠으며, 왜란 당시에는 원균의 경상 우수영 소속이었지만 이순신의 첫 출전인 옥포 해전에서 선봉장으로 나서 큰 전공을 세웠다. 이후 경상 좌수사, 전후에는 7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으며 이순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충렬사를 지었다. 현재 충렬사는 통영시 명정동에 있으며 사적 236호로 등재되어 있다. 한편 어영담과 이운룡의 사제관계는 영화만의 창작인 것으로 보인다.
8. 박지환 배우가 연기한 군관 나대용은 영화 소개 영상에서 역덕들을 바싹 긴장타게 만들었던 거북선 질주씬(...)의 주인공이다. 다행히 무작정 적에게 돌격하는 게 아니라 사천 해전에서 구선의 용두가 걸린 것을 해결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뛰어간 것에 가까우니 한숨 돌려도 된다. 사천 해전에서 나대용이 왜탄에 맞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게다가 탄환의 쇠독이 전란 종전 후에도 남아 1611년 그의 사망 원인이 되었다. <명량>에서는 배우 장준녕이 연기해 조선군 총사령관인 도원수 권율에게 대드는 패기를 시전하기도 한다.
9.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나대용이 죽고 못 살 만큼 애지중지하며 건조한 거북선은 2층 구조와 3층 구조가 모두 등장한다. 사천 해전 당시 용두가 충각 역할을 하다가 배에 걸리자 한산 해전에서 수납형으로 바뀌는 것도, 거북선에 대해 현재 학계의 엇갈리는 주장을 전부 다 수용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작중에서 거북선은 복카이센(沐海船), 메구라부네(めくらぶね)라는 이름 둘 다 호명되는데, 역사상으로는 메구라부네라는 이름이 더 많이 쓰인 것으로 보이며, 전후 일본에서도 거북선에서 모티브를 따 똑같은 이름의 철갑선을 만들기도 했다. 복카이센은 왜란 종전 후 왜란을 소재로 창작한 일본 군담 속에서 괴물 배로 등장할 때 쓰는 호칭이다. 하여튼 왜군에게는 어지간히 무서운 배였던 모양이다.
10. 윤진영 배우가 연기한 군관 송희립은 3부작의 완결판인 <노량>에서 비중이 대폭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1592년 왜란 발발부터 1598년 노량해전까지 7년 내내 이순신을 곁에서 보좌하며 생사고락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송희립은 이순신의 첫 해상 출전을 성사시킨 인물이기도 한데, 경상도로의 1차 출동 당시 좌수영 장수들이 전라도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머뭇거릴 때 정운과 함께 출병을 주장해 이순신이 기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을 할 당시에도 대궐 문 앞에서 거적을 깔고 울부짖으며 이순신의 무죄를 주장할 만큼 남다른 충성심의 소유자였으며, 노량에서 이순신이 전사했을 때 자신도 총상을 입었으나 독전고를 울리며 싸움을 이어갔고 이순신의 임종과 군사들의 수습까지 도맡았다. <명량>에서는 이해영 배우가 <한산> 이상의 비중을 가지고 충직한 부장의 면모를 열연했으며 전투 시 이순신이 송희립의 상처를 직접 응급치료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11.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부장들로 등장하는 마나베 사마노조, 와타나베 시치에몬, 와키자카 사헤에 역시 모두 실존인물이다. 시치에몬과 사헤에는 한산도 대첩 중 전사했고, 마나베 사마노조는 생존하여 상륙했으나 할복자살한다. 그리고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우리의 와키자카는 13일 동안 무인도에서 캐스트 어웨이를 찍으며(...) 미역만 먹으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이후 한산대첩일이 되면 와키자카의 후손 사람들은 미역만으로 식사하는 풍습까지 생겼다. 한편으로 대단한 점은, 당대 일본 장수들이 승리를 부풀리고 패배를 쉬쉬했던 것과 달리 자칫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이 일에 대해서도 와키자카 자신이 기록을 남겼다는 거다. 한편 와키자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하사받은 조선과 명의 그림이 그려진 황금 부채는 사실 '가메이 고레노리'라는 다른 왜장에게 선물한 것이므로, 극적 전개를 위한 의도적인 고증오류에 해당한다. 아니면 미리 몇 장 더 만들어둔 거려나?
12.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가토 요시아키는 둘 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위시동이었던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소속으로, 작중에서 견원지간으로 묘사되는 인물관계는 전작인 <명량>에서도 부각되지 않고 역사상으로도 자료를 찾기 힘들어 <한산>만의 오리지널 창작으로 보인다. 역사상 접점이 있을 법한 지점은 그나마 세키가하라 전투인데, 왜란 종전 후 일본의 운명을 결정지은 이 전투에서 와키자카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 가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었다. 그런데 와키자카는 원래 동군의 편에 설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전투 전 도쿠가와에게 동군 편에 설 뜻을 미리 밝히고 전투 중 서군을 배신한다.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막부는 20세기 초까지 400년 동안 에도 막부로 일본을 지배했다. 참고로 와키자카(1554)가 가토(1563)보다 무려 9살 위다(???).
13.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이순신이 한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훗날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된 뒤부터 조선 말기까지 삼도수군의 지휘를 통괄하는 조선의 해군본부, 삼도수군통제영이 한산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통영시라는 지명은 실제로 오래 전부터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로 쓰였으며 왜란 후에도 오랫동안 군사도시로 기능했다. 통제영 건물은 일제 때 허물어졌으나 사적 402호로 지정된 이후로 여러 건물이 복원되었다. 오토캠핑장도 있는 그곳 맞다.
14. 손현주 배우가 연기한 원균은 용장인 척하는 졸장이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그를 가리켜 원흉(元凶)이라 썼다. 고증과 연기 모두 제대로다. 설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