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자르기, 장강명
<독서토론 : 노동 읽기 주간>
해고를 말한 이도, 해고를 당한 이도 더 이득을 본 사람은 없다고 말하겠다.
은영은 안 그래도 고단한 직장생활에 스트레스를 더 했으며, 혜미는 임시직이었으나 직장에서 해고당했으니 생계는 나아진 게 없다.
그래도 은영은 생계에 대한 걱정은 없으니 조금 나은 걸까.
혜미는 소정의 퇴직금과 위자료를 받았으나 결국 빚은 그대로다.
저울 추는 어디로도 기울지 않았다.
고용주와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혜미의 행동은 달갑지 않다.
자의든 타의든 청년 실업률이 엄청나다는 기사를 혜미는 읽어보지 않았나 보다.
싹싹하지도 않은 데다 본인의 외모만 믿고 부지런히 움직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따져 보면, 분명히 혜미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혜미는 언젠가 다리를 다쳤다.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긴 채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집과 직장이 너무 멀다.
여기에서 반응이 엇갈린다.
직장을 가까운 곳으로 구해 다니라고 할 사람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 매우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의외로 쉬워 보이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은영은 깜찍한 혜미의 여우짓에 화가 단단히 난다.
그래서 자르라는 사장의 말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해고가 이미 정해진 혜미보다 통보하는 은영이 괴롭고 힘든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더더욱 혜미가 얄밉고 원망스럽다.
그렇지.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를 해야겠다. 이 바닥은 생각보다 좁다 이거야.
처음부터 이럴 심산이었느냐는 질문에 혜미는 은영을 한동안 바라볼 뿐이다.
이 질문을 제외한다면 이 상황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장과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선 근무 태만을 이유로 해고를 통지할 수 있으며 근로자 입장에선 급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한 달 치 위로금을 요구할 수 있다.
고깝게 느낄 이도 있겠지만 혜미가 4대 보험금과 위로 보상금을 요구하는 건 법으로 보호받는 권리를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라.
결국, 해고당하여 불안정한 임시직을 전전해야 하는 건 혜미다.
경력증명서 5통이 있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물론, 사람을 믿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은영의 입장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 계약서 어디에도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능력을 갖추라거나 친화력과 사교성을 반드시 기르라는 항목은 없다.
혜미는 을의 입장에서 분명히 업무를 하였고 출퇴근 시간을 지켰다.
은영은 혜미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윗사람으로서 훈계하는 입장에서만 바라봤음을 인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 계획이 있었냐고?
우리 모두가 미생임을 왜 잊는 걸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여자아이는 가방에 손을 넣어 봉투를 확인했다.
봉투를 땅에 떨어뜨리고 돈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 (이렇게 주지 말고 계좌로 부쳐줬으면 좋을 텐데.)
건물을 나서자마자 은행을 찾아갈 참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독촉을 받고 있었다.
여전히 발목이 아팠다. 인대 수술을 받느라 퇴직금을 다 썼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