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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주기 Apr 29. 2024

그 겨울 텃밭에서

그 겨울 텃밭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늦가을의 어느 토요일, 새벽 4시경에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늦게까지 책을 보느라 지켜선 새벽녘의 벨소리는 묘한 느낌을 준다. 수신인을 확인하니 엄마였다. 벨은 연거푸 세 번을 울렸다. 손가락 하나만 살짝 움직이면 통화가 가능한데, 그 간단한 동작을 할 수가 없었다. ‘웬일이시지?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밀려드는 짐작 가능한 불안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벨소리는 딱 세 번 울린 후 더 이상의 여운은 없었다.  전화를 하여 듣게 될 소식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해가 떠오를 때까지 거실을 서성이며 시선은 핸드폰에 머물러 있었다. 더 이상 독서도 할 수 없었고, 깊은 잠에 빠진 가족들을 깨울 수도 없었다. 깨워서 듣게 될 소식이 두려워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고 그저 시간이 무사히 흐르기를, 핸드폰이 다시 울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딸아이의 손길에 잠이 깼을 때는 오전 열 시가 지나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서 이불도 없는 추운 잠을 자고 말았다. 토요일의 아침은 창턱에 걸려 나른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남편은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굽고 있었다. 아무런 불안의 요소들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평화로운 휴일 아침이 펼쳐져 있었다. ‘꿈이었을까?’ 핸드폰을 확인하니 엄마의 전화번호는 새벽 4시에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커피를 마시자는 남편의 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를 다독여 주던 남편이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새벽에 화장실 가시다가 충전 중인 핸드폰을 발로 차셨단다. 그 충격으로 전화가 걸렸고 바로 끊기는 했지만, 이 새벽에 누가 받기나 할까 생각하셨단다. 엄마의 외로운 그리움이 무심한 둘째 딸에게 오랫동안 머물고 계셨던 것 같아 더 죄송스러웠다.

  “엄마, 별일 없으시죠? 아픈 데는? 식사도 잘 챙겨 드시지요?
  엄마! 미안해 전화 자주 하고 자주 내려갈게요... 흑흑”
  “무슨 일이야? 얘가 왜 울어? 김서방은 별일 없지?”

엄마와 통화를 하다 결국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아버지도 없이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 새벽에 전화가 그렇게 울렸을까, 가슴이 너무 아팠다. 마침 주말이라 아이들과 함안에 계신 엄마를 찾아뵙기로 했다.
  늦가을의 바람은 상쾌했지만 차창을 지나치는 바람은 매서웠다. 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렇게 찬바람에 엄마는 외투라도 따뜻하게 챙겨 입으시는지, 보일러실에 기름은 넉넉한지, 식사는 때에 맞춰 든든하게 잘 드시는지, 살뜰하시던 아버지도 안 계신데 외롭지는 않으신 지 몇 달 동안 전화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맑은 공기에 자꾸만 부끄러워져 차창 밖을 볼 수가 없었다.
  마을회관을 지나 시골집 마당에 들어서니 오빠 차도 보이고 언니네 차도 보이고 동생들 차도 보였다. 새벽에 다섯 통의 전화가 헛발질을 날렸었단다. 오빠는 아침도 먹지 못하고 달려왔고, 언니는 고3 조카를 등교시키고 바로 내려왔고, 동생들도 걱정을 두 눈 가득 담고 찾아왔단다.

  “하이고, 우리 둘째가 제일 냉정한 줄 알았다. 날린 전화는 다섯 통인데 네 통만 돌아오데? 우리 둘째가 마음이 변했나 했더니 네가 그렇게 잠 못 자고 힘들어했을 줄은 짐작도 못했다. 여태 알던 우리 둘째가 요래 소심한 줄은 내 평생 처음 알았네 내가 많이 심했지? 그래도 요래 얼굴 다 보니 참 좋다. 다음에 비상 사이렌 또 울리면 아무도 안 내려올 거지? 호호호....”

  항상 재밌게 사시는 자칭 돌싱인 우리 엄마, 10년이 지난 지금은 베테랑 농사꾼이 되셨다. 여름 햇빛이 다녀간 얼굴은 촌부처럼 까맣게 그을렸고 세월에 유순해진 주름들이 편안하게 얼굴에 앉아있다. 다리 수술 두 번 하시고 고단한 허리는 동네 단골 한의사와 단짝 친구가 되셨다. 두 해가 더 지나면 팔순이 되신다. 아버지가 터 잡아 주신 텃밭에는 올해도 배추들이 넉넉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오빠가 김장은 각자 하자고 한다. 적당한 날 배추를 뽑아 집집마다 나누고 엄마 김장은 한 통씩 갹출하자는 제의를 한다. 엄마가 처음 다리 수술을 하셨을 때 내가 오빠와 같은 제의를 했었는데 엄마보다 큰언니의 섭섭한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동생아, 저 밭에 배추는 그냥 배추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엄마 편하게 밭농사 지으라고만 만드신 게 아니야. 저것은 엄마의 외로움이고 그리움이고 소망이고 희망이고 바로 우리들이다. 올해 김장을 안 하게 되면 지금 당장은 편하시겠지만 온전하지 못한 엄마의 관절들은 밀린 감가상각을 서둘러 시작할 거야. 아버지 가시고 10년 세월을 곱으로 늙어 가실 거야. 힘드셔도 저 밭이라도 가꾸셔야 엄마는 행복하시고 즐거우신 거야, 우리가 내려오면 보따리 보따리 챙겨 주실 게 있고 자식들을 위해서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생각만으로 혼자도 외롭지 않고 쓸쓸하지도 않고 즐겁고 행복할 수 있으신 거야, 저것은 엄마의 생명 같은 거란 생각이 들지 않니? 엄마의 그날까지 함께할 동반자 같은 거 말이야”

 평생 일만 하신 엄마다. 저렇게 허리가 휘도록 하는 농사일이 재밌을까? 땡볕에서 뻘건 고추 따는 일이 즐거우실까? 감물 오지게 드는 땡감을 돌려 깎으며 곶감을 만드는 일이 행복하실까? 유년 시절 내내 엄마를 보며 하던 생각들이다. 사는 것이 일이라서 우리는 사는 일이라 하는 것 같다. 엄마를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일이 즐거움이고 행복이고 삶이다. 즐거운 일, 행복한 일, 기쁜 일, 슬픈 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다 일인 듯하다.
  시골집 늙은 평상에 등 기대고 앉아 있는 김치통보다 깨, 고춧가루, 참기름, 고들빼기, 산초장아찌, 우거지, 누런 호박, 된장, 고추장, 간장들이 대문 앞에 서서 헛기침을 한다. 종합병원인 엄마 등보다 더 굽은 대청마루가 귀밑머리 하얗게 되어도 아직 철들지 않았냐고 오빠에게 묻는다. 먼 산을 보고 담배연기를 날리는 오빠의 4번 5번 등뼈와 주책없는 대청마루의 굽은 등도 자꾸만 삐걱거린다. 올해는 작년 보다 배추가 적단다. 이백포기 조금 넘는데, 한 삼백포기는 되지 싶단다. 엄마의 숫자 개념은 넉넉한 마음보다 항상 적다. 아마 삼백포기는 족히 넘을 것이다.
 부엌에서 돼지수육 삶는 냄새가 진동한다. 갓 버무린 김장김치가 차려지고 몇 주 전에 마지막으로 수능을 친 우리 딸아이도 활짝 웃고 있다. 이제 아이들도 모두 성인이 되었다. 우리가 성인식을 치를 때 대견해하시던 부모님 모습이 기억난다.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된 우리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오 남매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저것을 뭐라고 할까?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깡마른 등에 시래기거리만 남은 엄마의 텃밭을 본다. 옹이 진 손바닥처럼 빠짝 빠짝 마르고 갈라진 엄마의 손이다. 봄에 새싹이 날 땐 어린 우리가 텃밭 가득 뛰어다닐 테고, 파란 배추가 활짝 피어나면 시집 장가보낼 걱정이 한가득이실 테고, 김장 끝난 찬바람 서성이는 오늘 같은 날은 모닥불을 피우고 동네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시래깃국을 끓이고 저녁놀을 바라볼 것이다.
 저녁놀이 시골집을 빨갛게 물들고 있다. 돼지수육에 막걸리를 너무 마셨을까, 아버지도 자꾸 생각나고 점점 줄어드는 엄마 키도 서러워지고, 이제야 한 입 줄까 기다리는 누렁이 신세도 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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