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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주기 Apr 29. 2024

화석

메타세콰이아를 보며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을 핑크빛 가방을 메고 8살 어린 딸이 걸어간다.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돌아서서 주름치마를 팔랑이며 엉덩이춤을 춘다.  
아이는 자라고 초록이 한층 더 짙어지면 아이는 림보 춤을 추며 손을 흔들고, 비 오는 날은 노란 우산을 흔들며 발장단 맞춰 인사를 하고, 잎 떨어지는 가을엔 호주머니 깊게 손을 찌르고 머리 숙여 돌을 차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나간다.
8층 베란다 창가에서 손을 흔드는 나.

  어제만 같은 날들이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더는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을 걷지 않고 나도 더는 베란다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동화 속 같은 날들은 공룡시대 버려진 화석처럼 가슴 한쪽에 깊게 찍혀있는데, 여태 제 할 일 잘하던 아이가 드디어 엄마를 부른다.  고교에 진학하여 첫 시험을 치르면서 많이 힘들었는지 아주 오랜만에 내 품에 안겨 내일 아침에 한 번만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어 달란다. 그러면 힘이 날 것 같단다.  영대교 다리를 건너며 흐르는 양산천을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단다.

  언젠가 아주 옛날에 딸에게 엽서를 보낸 적이 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아침 운동을 하다가 양산천 언덕 벤치에서 편지를 쓰며 "흐르는 양산천을 지켜보며 사랑하는 내 따리에게 엄마가"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무척 좋아하더니 그 일이 아스피린처럼 아이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오늘은 아빠 차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를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한다.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며 손 뽀뽀를  날려주는 딸아이.

   "딸아! 너뿐만 아니라 이렇게 베란다에서 손을 흔드는 엄마도 위안이 된다는 걸, 넌 아직 잘 모르지? "

  메타세콰이아는 3월에 연초록에서 짙은 녹색이었다가 결 고운 갈색으로 물들며 길고 곧게 쭉쭉 자라는 모습이 이국적이다.  열 지어 서서 저들 끼리의 정다운 모습도 대견스럽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면 화사한 봄과 시원스러운 여름과 찬란한 가을을 지나 앙상함 조차 멋스러운 겨울이 지나간다.  빙하기를 지나 아직까지 푸른 저 빛나는 살아 있는 화석, 메타세콰이아ㅡ.
너처럼  자라는 내 마음의 영원한 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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