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된 시대, 새로운 연결을 찾다
요즘 나의 바람이다. 그런데 연결된다는 게 무슨 말이지? 무엇이 무엇과 연결된다는 걸까? 스스로 묻는다. 바람과는 다르게 사실 나는 지독하게 독립적인 사람이다. 친밀이라는 침범 하에 피해 주기도, 피해받기도 싫다. 그런 나에게는 연결보다는 단절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그런데도 눈만 떴다 하면 연결을 찾는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레드 등 온갖 소셜 미디어의 무질서한 와글거림 속으로 몸을 비집는다. 그게 가장 손쉬운 연결이니까. 아니면 무작정 활자를 읽는다. 한때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며 깨달은 건, 내가 몹시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흔들리고 소란한 공간 안에서 뭐 하나 쥘 것 없이 존재하는 것을. 아기 상어를 틀어주지 않으면 우는 세 살 배기 아이처럼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하철 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절과 연결의 오묘한 공존.
'아마 다들 존재하길 두려워하는지도 몰라...'
소름이 오도도 돋았다. 이토록 존재가 두려운, 그럼에도 연결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삶.
몇 년 전 '바닥 신호등'이 처음 생겨났을 때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는지 놀랐다. 초반에는 비판도 많았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의 고개를 들도록 장려하는 게 맞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대안이 이 시대엔 먹히지 않는다. 지금도 방방곡곡 번화가에는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이 때맞춰 불을 켠다. 그렇지, 이게 바로 지혜다. A를 B로 바꾸도록 강요하는 게 아니라, A를 A의 방식대로 두되 그 안에서 대안을 찾는 것.
우리는 한국 역사상 가장 단절되어 살아간다. 1인 가구의 증가폭만 보아도 그렇다. 지난 20년간 4인 가구 비율은 약 18퍼센트 감소한 데에 비해, 1인 가구 비율은 20퍼센트 늘었다.* 물론, 함께 산다는 것이 꼭 연결된다는 말은 아니다. 정상이라 일컬었던 4인 가구의 해체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같이 살아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가정폭력에, 가정불화에... 점점 늘어나는 황혼 이혼율까지.** 요즘 2030은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한댄다. 채 한 명의 아이도 낳지 않는 기묘한 시대. 우리는 이토록 파편 되었다. 우리라는 단어조차 사치일 만큼.
크고 작은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인간으로서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고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심지어 최근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모두 관계 속에서 비롯된다고도 한다.*** 급진적으로 보여도 이게 진실이다.
너와 나는 과연 연결될 수 있을까? 더 이상 이전의 방식은 먹히지 않을 테다. 집단주의 시대의 해체와 개인주의 시대의 서막을 열며, 너와 나 사이에는 연결의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너와 나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너와 나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출처]
* 1인 가구 비율 (국가지표체계, 2024) :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5065
** “참고 살 만큼 살아” 황혼이혼 증가… 재산분할이 쟁점 (백세시대, 배지영 기자, 2024) : https://www.100ssd.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608
*** 열심히 했으니 이 정도는 해도 돼~ 혹시 이것도 인정중독? | YOU QUIZ ON THE BLOCK EP.269 | tvN 241113 방송 ('유퀴즈 온 더 튜브' 유튜브 채널) : https://youtu.be/Pvpm7DY_yug?si=VCvOLv9-l32EjIM_&t=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