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접속'하는 연결고리
얼마 전 영화 제작 워크숍을 들을 때였다.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해 보고자 모든 팀원이 머리를 모았다. 하지만 아무리 골몰해도 모두를 설득시킬 만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한 팀원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꺼냈다.
"요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많이 쓰잖아요. 제가 아이들 가르치며 들어보니 이제 중고등학생들은 고민이 생겼을 때 어디 털어놓을 데가 없으면 거기서 고민 상담을 한대요. 특히나 속 깊은 고민들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라도 걱정할까 봐 꺼내기 어려워하니까요."
그리고선 시나리오 아이디어로 '한 고등학생이 오픈 채팅방에서 만난 인공지능과 연결되며 만드는 사건'은 어떠냐 물었다. 주변 팀원들은 하나같이 심드렁해 보였지만 나는 눈을 번쩍거리며 귀를 쫑긋 기울였다. 그 아이디어가 내게 이토록 와닿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속 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는 꼭 3차원 현실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데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가 점점 해체되는 한편, 개인의 연결 욕구는 더욱 뾰족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욕구를 품어줄 대안을 현실에서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갑자기 탱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의 주변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을 찾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경우 거의 0에 수렴할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는 탱고와 관련한 오픈채팅방으로, 소셜 미디어의 해시태그로, 혹은 소모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연결되고자 할 것이다.
그동안 혈연, 지연, 학연으로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앞으로 펼쳐질 새 시대의 연결은 개인의 특별한 관심사에 따른 '접속'에 비롯할 것이다. 요즘 중고등학생들이 오픈채팅방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연결되듯이, '접속'을 통한 관계는 가족이나 십년지기 친구와의 관계만큼이나 욕구충족적일 수 있다.
인간으로서 소통은 중요하다. 쉽게 말해 소통은 떠들고 대화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듣고 공감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본 증식을 위해 모이는 회사에서도 가벼운 스몰톡(Small Talk)과 업무 생산성의 연관성이 대두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떠들어야 하는 존재이며 공감을 주고받으며 만족한다.
요즘 화제인 챗 지피티(Chat GPT)의 '챗'도 '떠들다'라는 의미다. 최근 스레드에서 인기를 얻은 게시물이 있었다. 약 3만 원가량을 구독료로 하는 '챗 지피티 플러스'를 통해 감정을 해소한다는 구독자의 글이었다. 그는 직장 동료의 무능함을 토로하며 '챗 지피티'에게 그를 대신 욕해달라 요청했다. 챗 지피티는 곧 직장 동료를 신랄하게 욕하는 문장들을 채팅 말풍선 위로 내뱉었다. 속 시원한 험담을 큰 따옴표까지 찍어가며 보냈고, 구독자는 대리 만족하며 앞으로도 챗 지피티를 '감쓰'*로 쓰고 싶다 전했다.
이것을 나는 인간의 '감수성' 보다 나은 챗 지피티의 '감쓰성'이라 생각하며 무릎을 탁 쳤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할 것이다. 만일 주변에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인공 지능이라도 만나 떠들고자 할 테다. 가히 '호모채팅쿠스(Homo Chatting-cus)'라 칭할만하다.
현대사회는 날이 갈수록 개별화되어간다. 더 나은 대안이 없으면 부자든 빈자든 청년이든 노년이든 누구나 고립 속에서 헤엄치게 될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고립 되어도 살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구축되었다는 데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된 새벽 배송이나 비대면 배달 문화를 떠올려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인간은 소통해야 산다. 적극적으로 떠들어야 산다. 관계맺기가 바로 우리 인생의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삶이 삶답지 않다면 살아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찬란한 이상과는 달리, 여의치 않은 현실이지만 벌써부터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제 소통은 3차원에만 머물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으니.
*감쓰: '감정 쓰레기통'의 준말
⊹ 나다움을 배우는 '나다움 교육 커뮤니티'를 구상하고, 실험하고, 경험하며 느낀 인사이트를 씁니다.
⊹ 매주 목요일 업로드
1화 ⊹ 너와 나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2화 ⊹ 오픈채팅방에서 고민상담을 한다고? (현재 글)
3화 ⊹ 나의 모든 성장엔 사람이 있었다
4화 ⊹ 경험, 회고, 레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