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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브바드 Apr 22. 2021

언젠가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

이왕이면 '멋쟁이 할머니'가 되고싶어

막연하기만 했던 상상들에 살 붙이기


언제부터였더라. 지독하게 현실적인 내가 백발노인이 된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던 때가. 아마 유럽으로 여행을 갔던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졸린 눈을 비비고 동네를 산책하던 매일 아침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할머니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색뿐이던가, 요즘 '힙'하다는 청바지, 근데 이제 유행하는 스니커즈나 맥북을 곁들인 차림새라거나 다정하게 손을 꼭 붙잡고 공원을 산책하시던 분들, 이른 아침 카페 테라스에 앉아 그림을 그리시거나 신문을 읽으시던 분들, 자유롭게 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시던 분들까지.


여전히 꽤나 지긋한 노인들의 멋들어진 모습이나, 자유롭게 백팩을 메고 이리저리를 둘러보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한국에서 쉽게 마주하던 할머니나 할아버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 때문이었을까 왜인지 자꾸만 그분들에게 눈이 갔다.


하루는 아침 산책을 마치고 멍하니 카페에 앉아 학생 때부터의 나를 곱씹었다. 신입생과 화석으로 분류되던 시절부터 받침에 ㅅ이 붙는 때부터가 중반이니 ㅂ이 붙어야 후반이니 하는 논쟁으로부터 진절머리 나던 시절과 반 오십이 됐니, n살이 되었으니 남들 다 하는 것들을 해야겠네와 같은 사회적 통념들과 함께 알게 모르게 시작된 나이 집착.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청춘이 흘러가는 것을 한탄하던 이전까지의 내가 떠올랐다. 왜 그렇게 나이에 집착했을까. 나이는 결국 경험치를 쌓는 일인데, 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단단해지는 나'의 내면이 아니라, 숫자에 불과한 '나이 먹는 나'에만 초점을 맞추며 자연스러운 과정들을 부정했는지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뭘까. 자글자글 주름져 지금보다 못생겨진 나? 돈도 커리어도 없이 보잘것 없어진 나? 건강하지 못한 나? 고작 숫자에 갇혀 흘려보낸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더라. 'n 살은 이래야 해'의 틀에 갇혀 안 웃긴 것들에도 깔깔 억지웃음을 쏟던 날들, 눈물 나게 웃긴 것들을 보며 괜히 점잖은 척하던 날들, 도전하고 싶던 것들을 망설이던 날들, 끊어낼 것들을 끊어내지 못하던 날들.


이미 흘러간 과거를 반성하며 처음으로 구체적인 미래를 그렸다. 멋진 할머니가 될 수는 없을까, 멋진 할머니가 된다는 건 어떤 걸까. 막연히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여유? 건강? 여태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어떤 모습으로 남기 위해 달려왔던 걸까.


그래, 레퍼런스가 필요했다.








그냥 유라네 할머니 말고, '막례쓰'의 등장


그러던 중 유튜브의 흥행으로 굳이 뒤적이지 않아도 아주 좋은 레퍼런스로 다가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크리에이터 '박막례'다. 막례 할머니가 반가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막례 할머니, 아니 '막례쓰'는 가정이나 미디어에서 '누군가의 아내/엄마/할머니(someone's wife/mother/grandmother)' 등의 역할에만 집중되었던 '나이 든 여성'에서 벗어나 그 어느 누구의 무엇도 아닌 '박막례 자신(someone)'으로서 삶을 즐기는 방법들을 찾는다. 막례쓰가 유라 PD에게 백날 천날 '염병하네'를 외치면서도 새로운 일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또 금세 즐기는 모습은 우리에게 다소 정적이기만 했던 나이 듦의 새로운 지표를 열어주는 셈이다.


할머니 패션의 신세계를 열어준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도,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대중가요, 그것도 손담비의 '미쳤어'를 흥겹게 부르던 할담비 '지병수'도 결국 우리가 알게 모르게 평면적으로만 인식해왔던 노인들을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해 준 아주 고마운 인물들이다. 


내가 꿈꾸던 노년은 그런 것이었다. 막연한 부와 명예들이 아니었다. 물론 있으면 좋겠으나, 그런 것들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것이 라이프스타일, 패션, 음악, 무엇이든 간에 거침없이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용기, 지치지 않는 열정, 유쾌함, 건강,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 콘텐츠 범람의 시대를 유영하는 우리네 삶이 꽤나 다행인 건, 구체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아주 멋들어진 선배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이 50, 60 되어서도
그런 젊은 마음을 가지고 늙을 수 있다면
너무 멋질 것 같아.
근데 보통 사람들 시선은
‘철딱서니 없어 보여’, ‘나이 생각 안 하냐’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
난 그 선입견을 한 번 깨보고 싶어.
(중략)
사람들이 나이에 걸맞지 않다고 할까
살짝 두려운데,
그래도 내 인생이니까.
(중략)
그래서 나랑 같이 나이 들어가는 여성들에게
어떤 도전, 도전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생각해.
그렇게 심오하진 않아.




한예슬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한예슬 is’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철없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아니라 '내 인생을 나답게 사는 법'을 함께 찾아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우리 철들지 말고, 지금의 나를 지키자고.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는 함께라고.








넌, 어떤 할머니가 될래?


살아 움직이는 레퍼런스들과 함께라니, 조금 어색한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일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주름은 그저 나이테 같은 것들이었다. 사실 누구나 그렇듯 다가오는 노화를 어떻게든 늦추고 싶지만, 더 이상 '외형적 노화'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의 내 모습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더 좋아한다. 예전보다는 살이 붙었지만 건강한 내가 좋고, 꿈꾸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늘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내가 좋다. 조금은 더 단단해졌으니까. 미래에 살을 붙일수록 이상하게 현재의 내게 자신감이 붙었다. 모르는 시간들에 기대를 걸게 되었다. 


너무 구체적으로 미래를 상상해서였을까, 조금은 멀게만 느껴지는 자글자글한 스스로를 떠올리다 문득, 나보다 조금 이른 미래에서 혹은 나의 과거로부터 함께 미래로 달려 나갈 이들은 어떤 모습을 상상할지 궁금해져 팀원들에게 물었다.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신가요?


아래는 러브바드 팀원들이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들이다.


그날 테라스에서 나는 이전까지 스스로를 괴롭히던 숫자에서 한 발짝 떨어져 고민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래서 결국 어떤 노년을 맞이할 것인가 같은 것들 말이다. 그 후 몇 년, 오늘도 나는 움직이는 게 세상 그 무엇보다 싫지만 그럼에도 '튼튼하고 건강한 할머니'가 되기 위해 퇴근 후 매일 최소한의 운동을 한다. 보다 다양하고 '다정하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매일 책을 읽는다. '유쾌'하고 싶어 트렌드를 좇으려 노력한다. 당장 눈앞의 순간들에 쩔쩔매기보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보고 단단한 미래의 나를 만드는 과정들에 집중하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직면한 숙제가 아닐까.


미래의 나를 구체적으로 그리니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나를 구석구석 바라보게 되었고, 지금의 나를 더 보듬어줄 수 있게 되었다. 막례쓰는 뭔가를 망쳐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각자 자신만의 박자가 있다고, 남들 박자는 신경도 쓰지 말라'라고. 조금은 두렵지만 걱정은 말 것.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지금의 나를 사랑해주는 게 아닐까. 어떤 모습의 나도 사랑하는 꾸준함과 포기하지 않고 달려 나가는 열정과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늘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연대의 말들. 이런 것들을 떠올리니 괜히 미래의 내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튼튼하고 멋진 어른이 되어있을지, 내 곁엔 어떤 멋진 사람들이 있을지 같은 것들에 가슴이 찌릿해졌다.




자, 이제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 묻는다. 막연한 단어들 대신 아주 구체적이고 구구절절한, 즐거운 상상들로 가득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나 걸린대도, 자주 수정한대도 아무렴 좋다.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인생은 스스로의 것이니까.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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