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위하여... -
내 손은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
내가 이런저런 일은 많이 시키면서 정성 들여 돌봐주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가끔 다른 사람들의 손과 함께 보게 될 때는 잠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딱히 비교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을 내놓고 보여줘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크게 마음 쓰진 않았다.
어느 날, 그림책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 최승훈 그림/ 김혜원 글/ 이야기꽃->을 봤다.
"사람은 말여, 뭣 보다도 손이 곧 그 사람이여. 사람을 지대루 알려믄 손을 봐야 혀. 손을 보믄 그이가 어트게 살아온 사람인지, 살림이 편안헌지 곤란헌지, 마음이 좋은지 안 좋은지꺼정 다 알 수 있당게. 얼굴은 그짓말을 혀도 손은 그짓말을 못 허는 겨."
속표지 앞 페이지에 나온 이 말부터 시작해서 여러 어르신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말씀과 그분들의 거칠고 주름진 손 그림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평생 농사짓느라 굳은살 박인 손으로 지금도 삽자루 불끈 잡는 할아버지,
자식들 입에 먹을 거 넣어주느라 자신은 못 챙기다가 이제 모두 떠나 혼자 남았지만 '밥사발이나 먹으니 족하다'는 할머니,
팥죽 좋아하는 딸에게 팥죽 쒀 먹이며 영감 흉이나 실컷 해야겠다는 할머니,
연탄 배달차가 비탈길에서 뒤로 미끄러지는 걸 막느라 손가락이 뭉그러진 할아버지,
딸 여섯에 막내로 얻은 아들이 감을 좋아한다고 감나무를 잔뜩 심었다는 할아버지,
동네 야학당에서 글을 배워 애들에게 편지도 쓴다는 할머니,
일찍 혼자돼서 뱃사공 일도 했다는 할머니...
부여 송정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은 작가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쉼 없이 손을 움직여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의 손은 주름지고 울퉁불퉁하며 거칠고 삐뚤어졌다. 그 힘들고 정직했던 노동을 생각하면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싶지만 그보단 가엾어서 가슴이 쓰리다. 이제라도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손이 되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손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림책,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이세 히데코 글, 그림/김정화 옮김/청어람미디어->에 나오는 글이 하나 생각난다.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60가지가 넘는 공정을 하나하나 몸으로 익혀 수작업으로 책을 제본하고 때로는 망가진 책에게 새 생명을 주는 일, '를리외르'란 직업을 가진 나이 많은 아저씨가 하는 말이다. 를리외르 아저씨는 옹이가 박힌 나무 같은 손을 갖고 있다.
를리외르 아저씨의 손은 행복했을까? 건강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를리외르 아저씨의 옹이 박힌 나무 같은 손도 내겐 애잔하다. 그 손도 할 얘기가 많을 거 같다.
그런데 문득, 이젠 손이 들려준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손에게 들려줘야 하는 말과 행동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고마워. 이제 너를 잘 보살필 거야."
혹시라도 나 스스로 내 손을 가엾게 여기지 않도록 내가 미리 살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