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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무 Nov 27. 2021

삐삐에게 보내는 찬사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세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


이것은 양 갈래로 야무지게 땋아 쫙 뻗은 머리로 유명한 ‘삐삐 롱스타킹’의 풀네임이다.


나는 예쁜 외모라고는 할 수는 없는 말괄량이 ‘삐삐’를 좋아한다.  ‘삐삐’의 매력에 빠져있다.


아홉 살 ‘삐삐’는 어느 작은 마을 변두리 ‘뒤죽박죽 별장’에서 혼자 살고 있다. 가끔씩 하늘에 대고 손을 흔들며 “엄마, 내 걱정은 마세요. 난 잘하고 있으니까.”하고 말한다. ‘삐삐’는 자기가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짝이 다른 긴 양말과 자기 발의 두 배가 되는 까만 구두를 신는다. ‘삐삐’는 엄청 힘이 세고, 요리도 잘하고, 늘 재밌는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그럴듯한 이야기를 재잘댄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글씨나 구구단 같은 건 잘 모르지만 결코 기죽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367




그런데 내가 ‘삐삐’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삐삐’는 힘센 사람에겐 더더욱 세지고, 못 된 사람에겐 악당이 되기도 하면서, 혼자 눈물을 훔칠 때도 많은데 그건 어김없이 다른 생명에 대한 동정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삐삐’는 다른 이를 도와야 할 행동이 필요할 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진다. 그 순간에는 머리 회전도 민첩해서 실수하는 법이 없다. 다과회에 모인 부인들이 자기 집 가정부 흉보는 것을 듣고 세상에는 없을 가정부를 창작해내어 쓸데없이 수다스러운 부인들 입을 막아버리는 통쾌함을 주기도 한다.


또 ‘삐삐’는 자기가 가진 엄청난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멋진 어린이다. 친구들에게 돈을 쓰는 것도 늘 재미있는 이벤트와 함께 해서 친구들을 즐겁게 하고, 심지어 자기의 금화를 훔치려 한 도둑들도 멋지게 가르치며 돈에 대한 교훈을 준다. 도둑들이 돈을 훔칠 수 없게 하면서 밤새 악기를 연주하게 만들고 자신과 춤을 주게 만든 후, 금화를 하나 씩 주고 “이건 아저씨들이 떳떳하게 일해서 번 돈이에요.”라고 말한다. 아마도 ‘삐삐’의 금화를 훔치려던 도둑들은 그 후 인생이 달라졌을 거 같다. ‘빗’이란 악기를 부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춤추는 연습도 많이 하며 실력을 쌓고 있을 것이다. 정당하게 일해서 돈을 버는 기쁨을 '삐삐'는 잔소리 없이 가르쳤다.


나처럼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고 그 매력에 빠져서 이 책의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무척 좋아하게 된 사람이 있다. 그래서 ‘린드그렌 팬 클럽’의 작품 같은 책까지 쓰게 되었는데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란 책을 쓴 유은실 작가이다. 유은실 작가가 그 책에서 탄생시킨 ‘비읍’ 이도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비읍’이는 아빠가 일찍 딴 세상으로 떠나 치과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삐삐’를 알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들을 탐독한다. 적은 용돈으로 책을 사기 위해 헌책방의 단골이 되기도 하고, 스웨덴으로 가서 직접 작가를 만나려는 꿈을 꾸며 저축도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엄마와 갈등하면서도 ‘린드그렌’의 작품을 읽은 아이답게 엄마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탁월하다.


‘삐삐’는 친구인 ‘토미’와 ‘아니카’에게 말한다. ‘시간이 흐르고 우린 나이를 먹지. 올 가을이면 난 딱 열 살이 돼.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맞게 되는 셈이야.’


딱 좋은 시절이 열 살이라니! *^^*


삐삐 시리즈를 영화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 글자로 이 말을 읽으면 심각한 분위기로 느껴질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그냥 어른을 흉내 내어 지껄이는 말 정도로 여길는지도 모르겠다. ‘삐삐’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명랑하고 통통 튀는 분위기의 삐삐 목소리가 연상되어 ‘하하하... ’ 웃을 테고.


그런데 내 생각에는 삐삐는 단순히 말괄량이이며 힘세고 부자인 어린이가 아닌 거 같다. 어른들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잘 아는 ‘인생 천재’다.


만약 ‘삐삐’가 열아홉 살이었다면 스무 살을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 말했을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쉰아홉 살이었다면 예순 살을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고도 했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미래 거의 현재이기도 한 시기를 가장 좋은 시기라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나간 시절은 다시 올 수 없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알 수 없다. 지금, 이곳을 살고 있는 순간이 가장 좋은 게 아니라면 슬프고 아플 뿐이다. 설령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중이라 해도 바로 코앞으로 다간 온 미래가 가장 좋은 시기임을 믿는 다면 힘을 내고 행복할 수 있다.


‘삐삐’는 완두콩 한 알을 앞에 놓고, 그것이 리오에서 만난 늙은 추장이 준 ‘어른이 되기 싫은 사람이 먹는 약’이라면서 ‘아니카’, ‘토미’와 주문을 이렇게 외웠다.


“사랑스런 칠릴러그야 난 끄기 싫어.”


‘토미’가 ‘끄기 싫어’가 아니라 ‘크기 싫어’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랬다가는 날마다 악몽처럼 몇십 센티미터씩 자랄 거라고 한다. 푸하하하........ 그래서 세 어린이는 ‘삐삐’가 말하는 대로 주문을 외웠고, 1945년에 아홉 살이었던 그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말괄량이며 개구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모지스'는 장수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나잇값을 안 하면 된다."라고 대답했다. 나잇값을 못하는 게 아니라 나잇값을 안 한다는 것. 언제나 나이 탓을 하며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보다 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멋지다.

그래서 나도 '삐삐'가 가르쳐준 주문을 외워본다.


"사랑스런 칠럴러그야 난 느끼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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