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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무 Dec 02. 2021

나잇값 안하며 살고 싶다

-팬데믹 일기, 2021년을 보내며... -

    달력에 하얀 눈 내린 자작나무 숲 그림이 아름답다. 그림은 2021년 마지막 달 12월임을 일깨운다. 몇 년 전 여름,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 반해 겨울에 다시 가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겨울 자작나무 숲 그림에 마음을 뺏기고 있다.     


 임정향 PD로부터 나의 팬데믹 얘기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2020년과 2021년을 떠올려봤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참 다양했다. 여행은 물론 서로 만나는 것도 어려웠고, 큰 행사들도 막힐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생계가 어려워진 분들, 택배나 배달 업무로 과로에 시달린 사람들, 중환자실에서 버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렀는데도 정상적인 장례식을 할 수 없었던 상황, 백신이 희망이 되는가 했더니 후유증으로 아프거나 사망한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변종 바이러스 발생으로 놀라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오늘 뉴스에선 코로나 확진자가 5,000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50명에 가까웠단 보도를 하고 있다. 한동안은 민감하게 코로나 뉴스를 확인하다가 또 한동안은 외면하기도 했는데, 오미크론이란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 소식까지 들리니 안타깝고 싸한 슬픈 기운이 내 몸을 휘감는다. 또 얼마나 견뎌야 하는 걸까? 한꺼번에 2020년과 2021년이 어디론가 훅 사라진 느낌이다.


 그런데- 가만 되짚어 보니, 그 와중에도 내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2020년 1월 말, 갑작스럽게 취업이 되어 2월부터 출근을 했다. 어쩌면 그때만 해도 수도권엔 확진자가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거 같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사회적 기업인 ‘(사) 행복한아침독서’에서 새로 만든 그림책연구소이다. 60을 코앞에 두고 생각지도 못했던 거지만, 30대 후반부터 관심을 둔 그림책과 관련된 일이라 아주 낯설진 않았다. 그래도 그림책에 소원했던 몇 년 동안에 예상보다 훨씬 큰 변화가 있기도 해서 조금 긴장이 되고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컴퓨터로 작업해야 하는 일도 몇 가지 익혀야 했고, 새로운 형태의 SNS에도 적응해야 했다. 회사가 멀지 않아 출퇴근은 힘들진 않았지만,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 날이 많아 점심시간이 조금 불편했다.

 3월 말 무렵 50+캠퍼스 재단 추천으로 MBC 라디오 1분 캠페인 <다시 청춘> 열한 번째 주자가 되었다. 상암동 MBC 라디오 방송국에 가서 내 얘기를 하며 50+ 신중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음했다. 화면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덜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하루 두 번씩 일주일 정도 방송됐던 거 같다. 요즘 나는 운전하며 차 안에서 라디오를 잘 듣는 거 외엔 거의 라디오를 듣지 않는데, 그걸 들었다는 분이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회사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엔 회사에서 운영하는 책방에서 그림책 동아리와 인문학 동아리를 만들어 참여하는 모임이 늘었다.      

 2020년 10월 10일엔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때는 손님들 초대와 식사도 가능했었다. 아이들은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기 위해 진작에 혼인신고도 해놓고 마일리지로 예약했지만,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해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던 친구 모임은 자꾸 미뤄지고, 동아리 모임은 취소되거나 화상회의로 대체되었다. 잠시 방역지침이 완화되거나 확진자 수가 줄 땐 잠깐씩 만나기도 했지만, 여행은 여전히 꺼려졌다.

 봉사로 하던 아람미술관 도슨트 활동은 2020년 2월에 새로운 전시 <프렌치 모던 전>에 딱 한 번 한 후 이젠 아예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결혼 이후에 참 바쁘게 살았다. 한동안은 시어머니와 시동생, 결혼 안 한 시누이 둘을 포함해 여덟 명 대가족 집안 일만으로도 벅찼다. 시동생과 시누이들이 분가한 후엔 도서관과 학원 수업을 하고 이런저런 호기심을 쫓으며 아이들을 키우느라 늘 바빴다.

그런데 요즘  나는 내 인생 최고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딸의 결혼에 이어 어머니의 영면, 아들의 결혼으로 식구가 단촐해 졌다.  회사일이 새로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시간과 마음이 한가롭다.

2021년, 방역지침이 강화되면서 대외활동이 중단되는 게 많아져 시간이 더 많아졌다. 마음도 여유가 생기다 보니 예전엔 망설였던 일을 해봤다.


몇 편 써놓았던 동화 중 하나를 손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는 잡지사 공모전에 처음으로 넣어 본 것이다. 첫 도전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우수상까지 받았다.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용기를 줬다. 그래서 ‘다음카카오’의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작가로 등록하고 스무 편 정도의 글을 올려놓았다.

 회사 일을 겸해서 여러 기관이나 지자체에서 하는 지원 사업에도 지원해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보고서 쓰기, 정산하기 등에 에너지를 쓰기도 한다.     

 2020년과 2021년 두 해 동안 겪은 내 일상 중 또 기억나는 것은 자전거를 산 것이다. 나의 자전거! 초등학교 때 동생과 함께 쓰던 자전거 이후 처음이다. 자전거를 출퇴근 때 이용하기도 하고, 일산 호수공원을 돌아볼 때도 탄다. 날씨 때문에 자전거를 생각만큼 많이 애용하지는 못하지만, 자전거를 탈 때 나를 스쳐 가는 바람을 느끼며, 주변 풍경에서 계절을 느끼며 나는 행복한 기분에 취하곤 한다.     

 코로나 19 같은 팬데믹 현상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인간들이 초래한 이런 상황에 대한 반성과 행동의 변화가 절실한데 그와 더불어 개인적인 삶은 어떻게 견디며 가꿀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늘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이 아직도 불편하지만, 나는 어려움 중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평화롭게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약속된 미래는 없다. 언젠가는 직장생활도 끝날 것이고, 건강도 잃게 되겠지. 그렇지만 나는 나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시간을 소비하진 않을 생각이다. 미국의 국민 화가 모지스 할머니처럼 나잇값을 안 하며 살고 싶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달력 그림에 다시 눈길이 간다.

저 겨울 자작나무 숲으로 곧 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암,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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