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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무 Jun 30. 2022

유년의 기억 6

-초등 1학년~ 2학년-

   

숭신 국민학교로 전학한 후, 예전에 살던 궁안에서 두 번째 집 2층에 살던 구둣방집 딸이 나를 교실로 찾아왔다.

그 언니는 아마도 5, 6학년은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진장 기뻐하는 표정으로 내 등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반가워했다.

난 좀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아래채에 살던 ‘인호’와 동갑이지만 나보다 먼저 입학한 ‘성철’이는 생각났지만, 그 언니에 대해선 별로 기억나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그 언니는 과장된 행동까지 보이며 나한테 왜 자기를 안 찾아왔냐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난 눈물이 찔끔 났다.

그렇지만 그건 반갑거나 고마워서가 아니라 내 등을 때리면서 반가워하는 탓이었다.

등짝이 좀 아팠다.    

 

그 해 말쯤 나는 그 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크리스마스 무렵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하얀 종이봉투에 든 꾸러미를 하나씩 선물로 줬다.

그 언니가 친절하게도 내 것까지 받아 주겠다며 나를 선생님 앞으로 못 나가게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아이들에겐 모두 있는 마른오징어 한 마리가 내 봉투엔 없었다.(그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른오징어를 줬다는 게 참... ^^)     

당연히 그 언니가 의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언니는 아무래도 내가 감당 못할 정도로 크고 셌던 거 같다.

교회도 가고 싶지 않았고.

그 후 그 언니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그 언니의 아버지인 구둣방 아저씨는 아직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리가 새로 이사했던 낙산 초입에 큰 대로변 바위벽에 붙어 있는 가게에서 나무틀에 가죽을 잘라 씌우고 열심히, 꼼꼼하게, 정성껏 구두를 깁던 모습.     

난 중학교 입학하던 해에 그 가게에서 구두를 맞춰 신었다.

얼마나 튼튼하게 잘 만들었는지 3년 내내 신고도 말짱해서 새 신을 신고 싶었던 내 맘은 오히려 튼튼한 신발을 원망했었다.     



1학년 때 우리 4반에 무척 잘 생기고 키도 큰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姓이 '도 '씨였던 거 같다.     

그 애가 어느 날, 누군가의 공책을 훔쳤다. 어떻게 문제가 해결됐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한참 후, 그 애의 姓이 바뀐 일이 있고 그 앤 전학을 갔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들이 그 애 주변에서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나 보다.


나를 무척이나 이뻐했던 유현상 선생님은 내가 2학년이 될 때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고 그 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가끔 이름도 떠올려 보고 모습도 떠올려 봤다.  

'뽀빠이'가 좋아했던 '올리브'나 '데이비드 스몰'이 그린 그림책 <도서관>에 나오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이미지가 유현상 선생님과 닮았다. 빼빼 마르고 키가 큰 모습.    


      

2학년 땐 7반이 되었다.

학교 정문 바로 오른쪽 옆에 있는 2층 건물의 맨 끝 교실.

최금자 선생님은 작달막하고 좀 뚱뚱하고, 화장을 짙게 하고 다녔다.

목소리는 톤이 좀 높으면서 콧소리도 났다. 여러모로 1학년 때 선생님과 무척 달랐다.     

받아쓰기를 60점 받고 많이 혼났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학교에 오셔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셨다.

선생님은 내가 1등을 했다며 마구 칭찬을 늘어놓았다.

우리 아버지는 무척 흐뭇한 얼굴로 나를 보셨고, 난 쑥스러웠다.

그날, 아버지가 분명히 선생님께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이 그 후 선생님이 날 대하는 태도가 훨씬 상냥해진 것과 무관치 않음을 어린 나는 눈치챘다.


어느 날, 장학사가 학교에 오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청소 시간에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교실 바닥을 왁스로 문지르고 걸레질을 하는데 내 짝이었던 '권필자'가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난 너처럼 이상한 성은 처음 봐. 어떻게 배 씨가 다 있을까?"

나도 이상한 게 있다는 듯이 말했다.

"난 너 이름이 좀 이상해. 꼭 필통 같잖아."     

으하하하...     

우린 둘 다 아무렇지도 않게 진심으로 말하고 들어주었다. 그때 나와 ‘권필자’는 어떤 표정, 어떤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었을까?     


그 앤 집이 멀어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왔다. 가끔 동전을 잃어버려서 버스를 못 타고 울기도 했다.

내가 집에 가서 엄마한테 얘기하고 차비를 주고,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      

‘권필자’는 나를 ‘백콩숙’이라고 불렀다. 배홍숙이란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웠을까? 그 기억이 생각나서 두 번째 블로그를 만들 때 ‘친구 콩숙’이란 아이디를 만들었다. 콩숙! 왠지 야무지고 귀여운 이미지가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그 무렵 가끔 용돈으로 동전 몇 개씩을 얻곤 했었나 보다.

어느 날, 나는 빨간 책가방 앞쪽 주머니에 지퍼를 열고 10원 동전 하나와 5원 동전 하나를 넣고 학교로 갔다. 

늘 그랬던 것처럼 문방구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나도 뭔가를 하나 산 후 교실로 돌아가 물건을 꺼내는데, 10원 동전이 그대로 있는 거였다.

그 물건은 10원인데.     


난 학교를 마치고 문방구에 다시 갔다.

아줌마에게 10월을 내밀며 수줍게 고백했다.

"있잖아요. 아까 아침에 내가 모르고 5원을 냈나 봐요."

아줌마는 나를 칭찬하며 5원을 거슬러 주고 과자도 줬다.

그. 런. 데.

세상에나. 집에 가서 보니 5원 동전이 또 하나 보였다.

아침에 아예 돈도 내지도 않고 물건을 가져간 거였다.     

‘어쩌지?’

또 고백할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또 그 문방구에 갔다.     

복잡한 문방구에서 이번엔 5원짜리 물건 하나를 집어 들고 5원 동전을 두 개 내고 ‘휴~’ 하며 학교로 갔다.

그 후에도 난 늘 그 문방구만 갔다.

분명 그 옆에 더 크고 물건이 더 많은 문방구가 있었지만...   

  

수년 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문구점을 봤다.

문구 유통점이 되어 있긴 했지만. 너무 신기한 기분이 들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옆집 만물상 아저씨 말로는 며느리가 대를 이었다고 한다. 문구점에 손님이 많아 보여 그 아주머니 안부를 묻지는 못했다.     

그 아줌마는 어찌 되셨을까?

쪽을 진 머리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아줌마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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