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과 따뜻함을 지적인 감성으로 엮어내다
‘불타는 추위’라니,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제목이다. 하지만 Megadeth의 Rust In Peace(1990)는 질서와 무질서를 엮어냈으며, 오늘 이야기할 밴드 Omnium Gatherum은 전작 Grey Heavens(2016)에서 밝음과 어두움을 조화시키는 묘수를 들려주었다. 상반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들려주는 것이 가능함을 알고 있으니, 추위가 불타지 못할 건 또 뭔가.
그리고 사실 ‘The Burning Cold’는 매우 적절한 제목이다. 이 앨범은 따뜻함과 차가움을 훌륭히 엮어낸 음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핀란드에서 결성, 2003년 데뷔한 Omnium Gatherum은 6인조 록 밴드로, 이들의 음악은 흔히 멜로딕 데스 메탈(Melodic Death Metal)로 분류된다. 멜로딕 데스 메탈의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장르 이름처럼 ‘선율미를 강조한 데스 메탈’로 볼 수도 있으나, 이러한 정의는 현대에는 좀 맞지 않는다.
왜냐면 요즘에는 데스 메탈의 으르렁거리는 브루털(brutal) 창법을 사용하지만, 그 외의 선율이나 작법 등의 면에서 기존의 데스 메탈과는 거리가 먼 밴드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밴드들 또한 멜로딕 데스 메탈로 분류되고, 장르의 주류가 되면서 ‘멜로딕 데스 메탈은 선율미를 강조한 데스 메탈이다’라는 말은 상당히 협소한 정의가 되었다.
Omnium Gatherum의 음악 또한 멜로딕 데스 메탈로 분류되고 브루털 창법을 사용하지만, 그 스타일은 기존의 데스 메탈과는 매우 다르다. 데스 메탈은 ‘죽음의 메탈’이라는 이름답게 극한의 과격함과 괴기스러움을 들려주는 음악이지만 Omnium Gatherum의 음악은 과격함이나 괴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들의 음악은 이쪽 장르 전반을 통틀어 보더라도 독보적일 정도로 과격함이 거세되어있다. 브루털 보컬에 어울릴 정도의 최소한의 공격성만을 갖추고 있다.
과격함 대신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특유의 서정성이다. 앞서 이들이 핀란드 출신이라는 말을 했는데, 핀란드 스타일의 차갑고 고독한 서정성이 Omnium Gatherum의 음악의 밑바탕을 이룬다. 다른 핀란드 출신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들과 이들이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이미 말했다시피 공격성을 최소한으로 줄였다는 점이 있겠다.
그러나 내가 Omnium Gatherum을 듣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이자 이들의 가장 강한 특색은 유니크한 지(知)적인 감성과 구성이다. 이들의 깊고 우울한 멜로디는 확실히 ‘현대적’인 감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통속적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인 느낌이 강하다.
정교하고 기교적인 연주, 웅장한 사운드, 변화무쌍하면서도 극적인 곡 구성은 확실히 ‘지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악상(樂想)을 섬세하게 전개하고 청자에게 전달하는 Omnium Gatherum의 능력은 요즘 밴드 중에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사실 좋은 음악의 기준이 그것 아니겠는가. 악상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청자에게 전달하느냐.
이들의 전작, 7집이자 2016년 작 Grey Heavens는 앨범 제목과 커버처럼, 무채색이지만 명암(明暗)의 조화와 대비가 돋보이는 음악을 담고 있었다.
반면 이들의 최신작인 8집이자 2018년 작 The Burning Cold는 확실히 Grey Heavens에 비해 컬러풀한 심상을 담고 있다. Omnium Gatherum은 이 앨범에서 명암의 조화와 대비 대신, 앨범 제목처럼 ‘따뜻함’과 ‘차가움’을 첨예하게 엮어서 들려주고 있다.
01 The Burning
02 Gods Go First
03 Refining Fire
04 Rest In Your Heart
05 Over The Battlefield
06 The Fearless Entity
07 Be The Sky
08 Driven By Conflict
09 The Frontline
10 Planet Scale
11 Cold
우선 이들의 연주력은 전혀 흠잡을 구석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최정상급 밴드였으니까.
본작은 사실 Omnium Gatherum으로서는 상당히 과감한 시도를 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전작들보다 더욱 감성적인 멜로디를 강조하고 있다. 곡 전개는 예전만큼 변화무쌍하거나 극적이진 않고, 기교적인 연주도 사실 본작에서는 절제하고 있는 편에 속한다. 그러나 그 점이 보다 듣기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여전히 사색적이고, 서정적이다.
본작은 이들로서는 비교적 단순하고 직선적인 편에 속하는 음악을 담고 있다. 복잡하고 섬세한 구성보다는, 확실하게 마음에 와닿는 감성을 강조했다고나 할까.
앞서 핀란드 스타일은 ‘차가운 서정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했다. 고독하고 우울한 감성. Omnium Gatherum의 스타일 또한 기본적으로 그렇지만, The Burning Cold에서 이들의 감성은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Grey Heavens에서 밝음과 어두움을 조화시켰듯, 이들은 본작에서 필요할 때에는 따뜻하다. 그리고 차가움과 뜨거움을 마치 완급을 조절하듯 자유롭게 넘나든다.
따뜻함과 차가움을 넘나들며, 키보드의 편안하면서도 현대적인 사운드가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본작은 80~90년대의 신스팝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물론 기반은 멜로딕 데스 메탈이지만 말이다.
The Burning Cold에서 가장 먼저 싱글로 나온 곡은 두 번째 곡이자 (첫 번째 곡인 The Burning이 짧은 인트로 형식의 연주곡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첫 번째 곡인 Gods Go First이다. 사실 이 곡은 앨범 전체에서 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곡인데, 서정적인 감성보다는 흥겨운 리듬과 기교적인 연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미드 템포의 곡인 Rest In Your Heart는 본작의 스타일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전작들까지 변화무쌍한 연주와 곡 구성을 들려준 Omnium Gatherum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순한 연주와 구성이지만, 그 단순한 연주와 구성에서 느껴지는 짙은 감성은 이 곡을 킬링 트랙 중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Be The Sky도 비슷한 느낌의 곡이다. 전작 Grey Heavens의 싱글 곡이었던 Skyline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싱코페이션 리듬의 리프(riff. 반복되는 악절)로 시작한다.
그 외에는 Over The Battlefield, The Frontline 등의 곡을 추천한다.
마지막 곡인 Cold는 곡의 주제 면에서 첫 번째 곡인 The Burning과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룬다. 두 곡의 제목이 합쳐지면 본작의 타이틀인 The Burning Cold가 되듯, 이 앨범을 완결짓는 데 완벽한 주제와 구성을 띠고 있다.
본작에서 흠잡을 점을 꼽자면 곡들이 대체로 비슷비슷하게 들린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내가 Omnium Gatherum식 감성에 이미 상당히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단점은 다른 청자들이 확인해 주었으면 좋겠다.
The Burning Cold는 Omnium Gatherum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을 들려주는 음반이다. 이들이 본작에서 시도한 변화가 다음 작품에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들은 변화를 시도했다.
Omnium Gatherum의 작품들은 항상 호평을 받아왔으나, 변화 없이 생존할 수 있는(음악적으로든, 상업적으로든) 뮤지션은 많지 않다. 난 이들의 변화를 호평하고, 다음 앨범 또한 항상 그래왔듯이 수작이기를 바란다.
지금도 나는 이들의 지적이고 사색적인 감성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