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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Sep 26. 2023

사는 즐거움

호기심이 생겨 시작한 취미가 모두 일이 되었다. 공연을 보고 멋지다 생각해 시작한 연기는 꿈이 되었고, 어느덧 잘하지 못하면 안 되는 직업이 되었다. 독서가 즐거워 쓰기 시작한 나의 독후감은 일기로 변했고, 쌓여있던 일기는 책이 되어 작가 소리를 듣게 만들었다. 

촬영이 없는 날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카페와 와인바 아르바이트 마저 나를 사장으로 만들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을 하나씩 배울 때만 해도 나이가 들면 낭만 있는 가게 하나 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직업이 되고 나니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 부담이 될 때가 있다. 

이게 다 어느 한 곳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하면 끝을 보려고 하는 욕심과 고집 때문에 생긴 일이라 누굴 탓할 수도 없지만 벌려놓은 일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면 해가 뜨는 아침이고 정신을 차리면 깜깜한 새벽이다. 

주어진 것만 하면 그리 바쁘지는 않을 것이다. 촬영장에서 대사를 틀리지 않고, 원고 마감 날에 맞춰 적당한 글을 건네고, 손님의 주문에 틀리지 않은 메뉴를 내놓기만 한다면 별 걱정 없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는 일 모두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이다. 더 좋은 연기를 요하는 감독과 시청자가 있고, 공감하기를 원하는 독자가 있고, 후회 없이 계산하고 싶은 손님이 있다. 나는 언제나 그 앞에 서서 그들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고 그래야만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일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충분히 연습하고 준비했는가, 예상을 벗어난 상황이 발생해도 대처할 수 있을 만큼 능숙한가, 언제든 고칠 수 있게 다양한 수를 마련했는가,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인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태도를 지녔는가 등의 사항에서 항상 고민하고 끊임없이 연구해 나가야 하는 것이 직업이라는 사실에 단순 취미로 존재할 때가 그립기도 하다. 

이제 나에게 유일하게 취미로 남아있는 것은 주짓수 하나다. 이미 너무 많은 일을 펼쳐놓은 탓에 더 이상 직업을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늦은 나이에 시작하고 딱히 재능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취미로만 즐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든 게 바로 주짓수다. 아마 십수 년 전에 시작했다면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즐거움을 주고 있는 이 운동은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시간만 되면 이십 분, 삼십 분을 하더라도 체육관에 가게 만든다. 

운동 좀 했다는 사람도 체육관에 오면 고개를 조아리게 만든다더니 체육관엔 강자가 수도 없이 있고 그 위에 강자가 그리고 또 그 위에 강자가 있어 끝이 보이지 않는 주짓수는 마치 피라미드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나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그들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니 이게 붙잡을 수 있는 일인가 싶다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취미생활임을 깨닫는다. 

이렇게 높은 벽이 층층이 쌓여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빌 언덕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체육관에 등록한 단 하루만으로 충분했고 그 뒤로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되었다. 물론 가끔 생활체육대회에 나가기도 하지만 큰 욕심 없이 좋은 자극을 받고 다시 열심히 살기 위한 하나의 발판 개념이라 볼 수 있다. 

확실한 취미로 자리 잡은 주짓수는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세상과 단절된 채 오롯이 체육관 안에 있는 사람들과 기운을 주고받으며 땀을 흘린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개운해진다.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 것 같기도 하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한 것 같기도 하다. 

배워도 여전히 써먹지 못하는 기술과, 사소한 실수가 상대에게 커다란 기회를 주기도 한다는 것, 반대로 나도 작은 기회를 틈 타 역전 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지든 이기든 잘 배웠다고 인사하는 마무리가 세상과 많이 맞닿아있다. 겸손하되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배우고 마지막엔 항상 예의를 갖춘다. 운동이 끝나면 복습과 예습을 거치며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이 누구나에게 필요한 훌륭한 자세라 느껴진다. 

주짓수는 연기, 글쓰기, 장사, 육아라는 우선순위에서는 항상 밀려 있지만 어쩌면 지금의 나는 주짓수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씩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꿈꾼다. 그것들이 실제로 적용된다면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지더라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눈 후 웃는 얼굴로 다음 시합을 기다리는 도전자의 자세로 매일매일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게 바로 사는 즐거움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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