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이룬 것도 없는데 시간은 역시나 빠르게 흐른다. 매달 말일이면 운영하는 카페의 정산과 동시에 가계부를 쓴다. 가정이 생긴 지 꽤 됐는데도 혼자 살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늘어난 지출이 여전히 버겁다. 지독하게 아끼기보다는 나가서 한 푼 더 벌자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라 일을 더 늘리고 있지만 매달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반복되는 일상이 언제쯤 극복될까 하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줄어드는 통장의 숫자에 맞춰 밥벌이할 능력을 부지런히 키워 온 덕인지 꾸역꾸역 살아가게 되는 인생이 마냥 멈춰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위기가 다가올수록 바쁘게 움직이고,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예상치 못한 구원의 손길이 다가오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5월은 가정의 달로 행사가 많았다. 이제 한쪽 부모만 모시는 게 아니라 양가 부모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양 쪽을 두루 살펴야 하며, 노는 날에 불과했던 어린이날은 사랑하는 딸에게 즐거운 날이 되어야 한다. 내가 모시던 선생뿐 아니라 아이의 선생에게도 감사를 전해야 하는 아버지의 인생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살아가기에 축하와 슬픔을 전하는 일도 배가 되었다.
유독 지출이 많았던 5월이었지만 근심만 늘어난 건 아니다. 아내와 단 둘이 처음 여행을 떠난 3박 4일이 있었고 고마운 사람에게 행복하라고 성의를 표시한 날이 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내와 맛집을 여러 곳 찾아다니기도 했고, 퇴근 후엔 가족과 함께 저녁을 차려 먹는 날이 많았다. 아내와 바통 터치를 해가며 운동을 다녀오고 아이를 재우고, 아이가 잠든 밤에는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날도 많았다.
어쩌면 바쁘게만 살았던 결혼생활에 그간 갖지 못했던 소박한 여유를 즐기는 진정한 가정의 달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 하원 후에는 다 같이 옥상에 올라가 뛰어놀고,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날도 있었다.
6월엔 5월보다 아껴보자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으로는 미안했다. 그토록 자유롭고 밝던 아내가 어린 나이에 시집와 아이를 낳고, 최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를 만난 탓에 얼마나 그 삶이 부담되고 힘겨울지 생각해 봤다. 본인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도 마음대로 못 사면서 나가서 일한다고 남편의 옷을 잔뜩 주문해 입혀보더니 이번 여름은 옷 걱정 없겠다고 활짝 웃는다.
통장만 보면 불행한 삶 같겠지만, 지나온 시간을 함께 바라보면 어두운 터널을 여러 차례 무사히 지나왔다. 지출을 늘릴 수 있었던 건 수익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건 돈뿐 아니라 시간도 벌었다는 뜻이다. 하루 한 끼, 하루 한 시간의 짧은 여유가 주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서로 양보하고 절제하며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6월도 바쁜 달이 될 예정이다. 우리는 조금 더 노력해야 하고 오늘도 고생했다는 말을 자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5월의 어느 날, 우연히 찾은 카페의 LP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글을 쓰고 아내는 공칠이와 놀던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나치게 고요했지만 입가엔 미소를 머금었고, 한 일이라곤 커피를 마신 것뿐이지만 여행을 마친 기분이었다.
다음에 또 가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건 기쁜 일이다. 함께 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미래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살아갈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는 말이다.